‘배재(培材)’는 곧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준말이다. 즉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육한다는 의미로, 고종은 친히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아펜젤러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신교육을 실시할 때 어떤 학제를 택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문학(漢文學)을 10년 혹은 15년씩 이미… 배재학당이 처음 세워지고 3년째 되던 해, 아직 학당 규칙이 발표되기도 전(前)인 1889년 당시 활동하던 교사진과 학제,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당시의 … 배재학당 서관은 크게 늘어난 신입생 수를 감당하기 위해 1923년 3월에 배재학당 본당과 옛 삼문출판사 건물을 사이에 두고 배재학당 동관과 마주 보는 … 이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 요시자와 토모타로의 설계로 1887년에 건립되었다. 단층으로 이뤄진 건물 안에는 강당, 교실, 사무실, 도서실이 배치되었고, … 한편 기껏해야 50명 내외에 머물렀던 배재학당의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을 때는 1895년 이후의 일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던 육영공원(育英… 이 무렵 배재학당의 학생 수가 차츰 늘어나자 아펜젤러는 벽돌로 1887년에 학교 건물을 신축하였는데, 이것이 배재학당 본당 건물이다. 대부분의 자료… 고종께서는 이 소식을 들으시고 호의를 가지시며 친히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교명(校名)을 지으셔서 하사(下賜)하는 동시에 그때의 명필(名筆)인 … 1885년 8월 3일. 이날은 27세의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최초의 신식학교로 기록된 배재학당의 문을 연 날이다. 그가 조선에 도착한 것은 그 해 6월 20일… 조선에 있는 선교사들도 각 교파의 연합대학을 세운다는 뜻에는 이의가 없었으나, 대학을 세울 처소(處所)에 대해서는 결정하기가 곤란했다. 장로교 … 배재학당은 본래 대학교 건물로 건축되었다. 1885년 8월에 설립되어 1887년 11월 본당이 준공되었다. 그리고 1916년 4월에는 동관(東館)이 준공되고, 1923년 3… 아펜젤러의 이러한 새로운 교육은 조선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전기를 쓴 그리피스는 이러한 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아펜젤러가 주축이… 1897년 배재를 입학하여 아펜젤러에게서 직접 교육을 받은 윤성렬 목사는 배재학당의 당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펜젤러 당장(堂長)은 1886년 … 「기도의 신학」이란 저서의 제목은 총신대학 학장으로 계셨던 김희보 목사님의 조언을 심사숙고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도의 신학」이란 … 아펜젤러가 학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바로 ‘이 학교를 조선 복음화(福音化)의 원동력(原動力)’으로 삼자는 데 있었다. 그의 교육 목표는 단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학교의 규칙(規則)은 다음과 같다. 이 학칙은 당시 조선 정부에서도 갖지 못했던 학칙을 아펜젤러가 처음으로 만들어 … 5. 주기도문의 맨 마지막이고 송영의 끝부분에 붙은 ‘아멘’이란 어휘는?(마 6:13) 주기도문 송영의 괄호 안에 든 간구에서, 마지막에 기록된 ‘아멘’… 아펜젤러는 구입한 한옥의 두 방을 헐고 합쳐서 교실로 사용하면서 이겸라, 고영필 두 청년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그들에게서 조선어를 배우기 시작했… 넷째로 그는 출판가로서 삼문출판소를 세워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서적을 출판하고, 종로에 서점을 세워 서적을 판매했다. “1894년 3월 청일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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