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미국 에모리대학 유학 시절 윤치호
▲미국 에모리대학 유학 시절 윤치호
윤치호는 한국의 첫 번째 남감리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그는 상해 중서서원(中西書院)1)의 학생으로 있던 1887년 4월 3일, 20세의 나이로 세례를 받았다. 이보다 5년 전인 1882년 가을, 윤치호는 13명의 젊은 학생과 함께 특별한 훈련을 위해 일본에 파견되었다. 거기서 그는 빠르게 발전하였고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883년 5월 최초의 주한미국 공사 푸트 장군은 일본을 거쳐 서울에 올 때 윤치호를 자신의 통역관으로 정하고 동행하였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 직후 푸트 장군이 외교직을 사임하자 윤치호는 상해로 가서 중서서원의 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1888년 그는 교장인 알렌의 권고로 미국에 가서 내쉬빌의 밴더빌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조지아의 에모리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1893년 조지아에서 공부를 마칠 무렵 윤치호는 에모리대학의 켄들러 총장에게 그가 유학 중에 모은 200달러를 기증하면서 그 돈으로 한국에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는 데 써 달라고 하였다. 1894년 3월 그는 중국 여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후에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고 선교사업을 통해 많은 결실을 맺은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2)

1897년에서 1898년 겨울까지 윤치호는 배재에서 과학개론과 서구 천문학을 가르쳤다. 당시에 천문학이란 학생들에게 환상적인 과목이었다. 윤치호의 천문학 강의는 당시 조선에서는 가장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서구 천문학 강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재필의 가르침에 의해 학생들의 눈과 관심이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전 세계로 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윤치호라는 인물에 의해 그들의 눈과 귀와 관심은 지구라는 곳에서 지구 밖 우주로 향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학생들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배재는 당시 어떤 교육 기관도 할 수 없는 학제와 학풍, 교과목, 교수진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펜젤러는 윤치호가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원했으나, 당시 서재필의 추방으로 인해 독립협회의 운영과 독립신문을 계속해서 발행하고 만민공동회의 참여를 위하여 배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서 감당할 수 없었다.3)

이처럼 새롭고 혁신적인 과목들을 가르치고 윤치호, 서재필과 같은 유명 강사의 초빙은 당시 다른 어떤 학교도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창설자인 아펜젤러의 진취성과 개방성, 그의 자유에 대한 애정의 결과라고 보인다. 그는 비록 선교사였지만, 어떤 특정한 사고나 틀에 매이지 않았던 대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펜젤러가 초기의 독립협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일도 결국은 이러한 개방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부 동료 선교사들은 아펜젤러의 이와 같은 진취적 자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다.4)

윤치호는 기독교 교육을 통해 국민을 계몽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그것을 위해 정부에서 교육을 관장하는 관직을 소원하기도 하였다. 그는 32세에 학부대신에 임명되었고, 그 이후 제일 남감리교회를 조직하였다. 또 독립협회와 YMCA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으며, 1930년 자신의 모교인 에모리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L.L.D)를 받았고, 조선체육회 회장, 이화여전 이사,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5) <계속>

[미주]
1) 중서서원(中西書院, Anglo-China College)은 1881년 미국 남감리회 소속의 알렌(林樂知, Young J. Allen,1836-1907) 선교사가 상해에 건립한 학교이다.
2) 사우어(C.A.Sauer) 엮음, (자료연구회 옮김), 『은자의 나라 문에서』, p. 50.
3) 송길섭(김학찬 교장), 『배재 100년사 1885-1895』, (서울, 학교법인배재학당, 1889), 69.
4) 스크랜턴과의 약간의 마찰은 이와 같은 그들의 성격 차 때문이었다.
5) 김을한, 「좌옹 윤치호 연보」, 좌옹 윤치호 문화 사업회, 『윤치호의 생애와 사상』, p. 162-167.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