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봄 이승만의 초청으로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한 서재필
▲1926년 봄 이승만의 초청으로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한 서재필
우남이 서재필로부터 신앙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서재필로부터 배운 서양의 역사와 정치사상을 통해 그는 얼마든지 자유와 평등, 박애정신 등 민주주의 개념과 기독교 정신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 할 정도로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모든 말씀을 미루어 볼 때 우남이 민주주의를 위하여 서양 학문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한 것이나, 이미 서재필이 수학한 조지 워싱턴 대학을 찾아가 입학한 것, 그리고 서재필의 재혼에 주례를 하신 햄린이 우남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서재필이 우남에게 스승으로서 애정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학문과 민주의식, 국가의 독립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기독교 사상을 전해 준 것 등은 모두 배재에서의 서재필의 가르침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재필은 우남과 거의 한평생을 같이하고 있다. 우남이 서재필을 존경하고 따른 것처럼 서재필 또한 제자 우남을 최고의 존경심과 신뢰를 갖고 대하였던 것이다. 배재학당에서 사제 간으로 만난 이후로 우남은 미국에서 자신의 진로를 놓고 어려움이 있을 때, 또한 독립운동을 하면서 대통령이 된 이후로도 계속해서 스승인 서재필과 자신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서재필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제자인 우남을 독립운동가 혹은 정치가로서 당대 최고의 인물임을 여러 사람에게 주지하게 하였고, 우남을 당대 최고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애쓴 흔적들을 서재필이 남긴 문헌들을 통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서재필이 우남의 진정한 스승이요, 멘토였던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898년 8월 17일 아펜젤러가 서재필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가 전해지고 있다. 이 편지는 아펜젤러가 독립신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이다. 이 편지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서재필 박사에게

나는 지금 다음과 같은 편지를 윤치호 씨에게 썼습니다.

[나와 서재필 박사 간에 맺은 협정조항에는 〈독립신문〉의 영문판 및 한글판 경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박사의 부재 기간 동안 내게 위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독립신문사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볼 때, 어떻게 해서든지 신문에 해를 미치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주어진 권한을 양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귀하께서, 내게 부여된 독립신문에 관한 모든 권한을 맡아 주신다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위에 언급한 그 부분에 부여받은 권한을 양도할 것이고, 그 효력은 즉시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두 신문의 지속적인 발행을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런 일들에 대한 내 방침에 동의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사람들은 신문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윤치호 씨와 나는 서로 상의하면서 계속 일할 것입니다. 즉시 답장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맺습니다.

아펜젤러”1) <계속>

[미주]
1) 김석영,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 P. 169.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