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아펜젤러와 윤치호
▲왼쪽부터 아펜젤러와 윤치호
윤치호는 귀국 후 기독교 교육활동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내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는 것이 바로 그 사명이다’라고 자신의 활로에 대한 포부를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한국의 빈곤과 낙후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책을 기독교 교육과 전도에서 찾았다.1) 다시 말해 기독교와 훌륭한 정부, 그리고 개화국민이 미국 사회를 문명사회로 만들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윤치호는 낙후된 지금의 조선을 개조하기 위해서는 국민계몽이 필요하며, 이것을 위해서는 선교와 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기독교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2)

이처럼 윤치호와 서재필이 서양의 문명, 부강의 원천이 기독교에 있으므로 조선의 개화도 기독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다녔기 때문에 「협성회」와 「독립협회」를 통해 이들과 빈번한 접촉을 가졌던 우남은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3)

아펜젤러는 윤치호와 배재학당을 통하여 사귐을 갖고 있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편지는 아펜젤러가 정동교회를 지으며 윤치호에게 헌금을 요청하는 편지이다.

“친애하는 윤치호 씨에게

1. 나는 지난 주일에 당신이 우리 교회에 소속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시했다고 광고했으며, 또한 부인이 교회에 보낸 편지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정식으로 감리교인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교회에 오시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조선에 남감리교회가 사업을 개시하게 되면 언제나 귀하가 과거에 선택한 교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정동에 새 교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실 터인데 당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교회 이름을 한문과 영문으로 써 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어제 교회 기공식을 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요. 수일 내로 기초를 놓고 계속 공사를 해서, 우리가 예상하기로 다음 주에 서울에 오게 될 발트 감독이 떠나기 전에 머릿돌을 놓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4. 아직까지 기부금 내역서가 당신에게 전해지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150달러, 그리고 부인께서 50달러를 기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까지 우리는 한국인에게 1134.53엔을, 그리고 외국인에게 1,069.11엔을 기부받았습니다.

안녕하시기를 빕니다. 저의 아내는 이질에 걸려 1주일 동안 누워 있다가 오늘에야 겨우 일어났습니다.

아펜젤러로부터”4)  <계속>

[미주]
1) 尹致昊, 『국역 윤치호 일기』, 박정신 역,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p. 10.
2) 柳永烈,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서울: 한길사, 1985), p. 87-88.
3) 高珽烋, 『開化期 李承晩의思想形成과 活動, 1875-1904』, p. 47.
4) 김석영,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 p. 168.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