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부두의 피난민들
▲흥남부두의 피난민들
흥남부두 외곽지대에 숨어있던 북한의 피난민 10만여 명은 육로로의 피난길이 끊겼다. 미 해병은 2주간 인민군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후퇴하는 미군을 결사적으로 따라갔다.

피난민 속에 적군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에 피난민들을 부대 후미에서부터 100m 거리를 유지하게 한다. 유엔군은 미 10군단과 국군 3군단의 10만 3천 병력과 수많은 장비와 전투 물자를 수송해야 했다. 하지만 피난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장비와 물자를 버리고 계획에 없던 1950년 12월 24일, 10만 명의 민족 대이동을 실시했다. 아군의 북한 진격 2달 만에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다. 중공군이 흥남부두를 탈취하는 2시간, 서부에 미 8군은 3.8선에서 후퇴한다.

1950년 12월 23일 미 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이 의정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한국의 가장 어려운 낙동강 전선을 ‘지키지 못하면 죽어라’는 신념으로 지켜낸 영웅이다. 후임으로 리지웨이 장군이 취임했다. 이 무렵 유엔군의 사기가 급격히 저하된다.

한국을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는 패배주의가 군에 가득했다. 이미 100일간의 공산 치하를 경험한 서울 시민은 대부분 피난을 했다. 인적이 끊어진 서울은 죽은 도시가 되었다.

유엔 사령부는 156km를 후퇴하여 금강 유역에 진지를 구축했다. 추격하던 중공군은 보급품이 떨어져서 진격을 멈추었다.

리지웨이는 한숨 돌리고 전선을 재정비한다. 이제부터 리지웨이의 전쟁이다. 리지웨이는 2차 대전에서 전투 중엔 장군이 사병만도 못하다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는 사병 전투복에다 권총과 수류탄을 꼭 소지하고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지웨이는 유엔군을 공격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무제한의 화력을 사용한다. 병력우세의 중공군은 인해전술로 진격해 오고 리지웨이는 기동력과 화력으로 제압한다. 막강한 공군력으로 적의 보급로와 보급기지를 끊는 작전으로 적을 묶어놓는다. 리지웨이는 유인작전으로 후퇴하는 척하다가 다시 공격한다. 적은 병참선이 끊겨서 꼼짝없이 다시 후퇴한다.

1951년 2월 13일 지평리 전투가 한국을 또다시 구해낸다. 미 23연대와 배속부대, 프랑스대대가 중공군 39군 3개 사단 병력을 3일간이나 백병전으로 막아내고 물리친 전투이다. 프랑스군 대대장 몽클라르 중령은 원래 2차 대전 때 프랑스군의 군단장을 지낸 중장 출신이지만 대대만 파병하는 작전에 따라 중령으로 자진 강등하여 전투 선봉에서 10배에 달하는 중공군을 막아냈다.

그는 전쟁터인 한국으로 떠나면서 임신한 아내에게 나는 군인으로서 한국인에게 자유를 찾아주는 것이 마땅한 소임이기에 뱃속의 아이가 나중에 나의 결정에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1951년 3월 14일 다시 서울이 수복되었다. 150만의 시민 중 20만의 시민이 죽은 듯 생존해 가고 있었다. 1951년 4월 10일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한다. 정치적인 협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외교 정세를 무시하고 승리만을 추구하는 맥아더를 더 이상 신임할 수가 없었다.

1951년 4월 중공군이 전 전선에서 총공세를 한다. 벌써 5번째 공격이다. 중공군 70개 사단 75만 명이 4, 5월에 치열한 공격을 해왔다. 이번엔 화력과 보급이 충분하다. 유엔군도 전투부대 참전국이 속속 들어왔다. 아군도 병력에서 뒤지지 않는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인도를 영연방이라고 한다. 전투 지원부대 16개국에 의료 지원부대 5개국이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러 왔다. 이제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6.25사변에서 자유민주와 공산주의의 전쟁터가 되었다.

특히 프랑스대대의 대니는 제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 시의회 의원이다. 그는 드골 장군에게 한국의 자유를 위해서 참전을 요청했다. 드골이 같은 마음이라고 동의했다. 민주와 공산 진영 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

중공은 인해전술로, 유엔군은 화력으로 전면전을 개시한다. 치열한 중공군의 공격을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하여 막아낸다. 용문산전투는 제2의 살수대첩으로 중공군 5만 명을 화천강에 수장시킨다. 그러나 서부전선 장단에서 영국여단 2분의 1이 전멸하였다. 또다시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문산이 뚫리면 다시 서울이 무너진다.

이승만은 우리 해병들이 서울의 관문을 막아주기를 주문했다.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이 영국 글로스더 대대의 뒤를 이어 집요하게 파고드는 유령 같은 중공군을 밤낮으로 막아냈다. 리지웨이가 유엔사령관으로 취임하고 밴 플리트가 미 8군 사령관으로 취임한다. 밴 장군은 방어보다 공격을 선호하는 전형적인 장군이다. 밴 장군은 임진강과 철원을 공격선으로 지정하고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자유 수호선이라는 링컨라인이다. 이 전선은 결국 밴 플리트의 전적으로 회복한다.

이범희 목사
▲이범희 목사
미 극동사령관 버크 장군은 일본해군 경비부대에 미 특수부대기를 달고 지뢰 제거를 명령한다. 일본군 장교는 ‘내가 2차 대전 때 간신히 살았는데 여기서 죽는구나’ 한다.

소련은 1951년 미그기를 참전시킨다. 미 전투기와 공중전을 하고 미 폭격기를 공격한다. 이제 국제전이다. 또 다른 전쟁이다.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