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웰본 선교사는 1900년 내한하여 황해도 배천, 강원 원주와 경북 안동, 영주, 문경, 상주, 봉화, 대구 등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누비며 오지에 복음을 전한 개척 선교사다. 순회 전도 시에는 평균 1천 리 길을 여행하며 ‘길 위의 전도자’로 불렸던 웰본 선교사는 일각에서 1903년 원산 부흥운동에 앞서 배천에서 부흥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서 웰본의 한국 선교 기록을 통해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양반과 평민 등 계층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파했던 선교사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려 한다. <편집자 주>

Ⅱ. 아서 웰본 선교사 일기

-1900년 9월 17일~29일, 한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한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작성한 아서 웰본의 일기장
▲한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작성한 아서 웰본의 일기장 ⓒ『아서 한국에 가다』

9월 17일

우리는 9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일행 중 한 명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한 시간이 지연되었다. 나는 그날 아침 내내 매우 바빴고 출항할 즈음에는 매우 피곤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다 괜찮았는데, 렉 씨의 의자가 부러져서 교환하기 위해 시내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배웅하러 내려왔고, 스미스(Smith) 씨와 맥켄지(MacKenzie) 박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다음은 처음으로 내한하는 한국 선교부 소속 우리 일행이다:

프란세스 렉(Frances B. Leck)12)
조지 렉(George Leck,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13)
엘리자 밀러 하웰(Eliza Miller Howell, 뉴욕주 롱아일랜드)
벨마 스눅(Velma Lee Snook, 아이오와주 페어필드, 팔슨스 대학)14)
찰스 샤프(Charles E. Sharp, 사우스다토다주 캔톤, 피에르 대학)15)
찰스 번하이셀(Charles F. Bernheisel,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하노버 대학, 매코믹 신학)16)
또한 다음 선교사들도 함께 탔다:
존 코빙턴 목사(Rev. John Covington, 사이암 방콕)
로버트 스튜어트 박사와 부인(Dr. and Mrs. Robert Stewart, 인도)
아담스 부인(Mrs. Adams)과 세 자녀(한국)17)

15일 첫날에는 선상에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 식사 때까지 괜찮았다. 이때 멀미가 나서 저녁을 거의 남기고 내 방으로 가서 고생스럽게 밤을 보냈다.

16일 둘째 날에는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저녁을 먹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좋은 밤을 지냈다.

오늘(17일) 아침에는 기분이 상쾌하다. 도선사를 통하여 럿츠(Lutz) 양에게 쪽지와 내 사진을 동봉하여 보냈다. 배 안은 모든 것이 매우 편안하다. 오늘 아침에 셔플보드 게임을 했는데 내가 이겼다. 오늘은 참 즐거웠다. 공기가 따뜻하고 바다는 잔잔하다. 오후에는 대형 캔버스 수영장이 갑판에 세워졌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했다.

18일 – 또 하룻밤을 잘 잤다. 아침 식사도 즐거웠고, 항해는 순조롭고 즐겁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기관사가 음악회를 열어주었다.

19일 – 어제 운동을 열심히 한 탓으로 근육이 땅겨서 천천히 움직였다. 저녁에는 아래 식당에서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스눅 양이 바이올린을 켰고, 아담스 부인이 피아노를 쳤으며, 힐스(Hills) 씨가 플루트를 불었다.

20일 – 어제도 괜찮게 잔 편이다. 바다가 좀 거칠어졌다. 우리 선실까지 물결이 부딪쳐 올라왔고, 옆방에는 꽤 많이 들어왔다. 속이 좀 불편하였지만 오후에 게임을 하면서 멀미가 가라앉았다. 우리는 수수께끼 게임을 하였고, 다른 일행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21일 – 조금 덥지만 날씨가 좀 좋아졌다. 잠을 설쳤다. 현창을 닫아야 했다. 오전 11시경에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 때문에 한 시간을 지체한 후 육지에 내려서 우유연구소(Milk Institute)를 방문하였다. 데이먼(Damon) 씨가 소장이다. 거기서 마차를 타고 박물관으로 갔다. 공원을 따라 유쾌한 마차여행을 하였다. 유명한 공공건물들과 공원, 학교들을 둘러보았다. 러셀(Russell) 씨와 터너(Turner) 씨가 우리를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22일 – 도시를 거닐면서 아침을 보냈다. 어제 구경했던 것들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서 증기선이 떠났다.

29일 – 호놀룰루를 떠난 지 엿새째이다. 날씨는 매주 좋았고, 바다는 잔잔했다. 식사를 한 끼도 거르지 않았다. 시간은 즐겁게 빨리 지나갔다. 우리는 셔플보드, 고리 던지기, 불보드(bullboard) 시합을 하였다. 단식 게임에서 내가 우승하였다. 우리 일행 중 상을 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하웰(Howell) 양과 소리 내어 책 읽기를 하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작은 목사』(The Little Minister)를 읽었고 앞으로 세 권을 더 읽기로 하였다. 오늘은 항해 중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 감자 경주, 달걀 경주, 돼지 그리기, 실과 바늘 경주, 과자 따먹기, 원숭이 매달기, 닭싸움 등을 하였는데, 우리 일행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다만 스눅 양이 경주를 하다가 조금 다쳤을 뿐이다.

참고: 아서의 일기는 여기서 중단된다.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각 선교사의 지부와 임무가 기록되어 있다. 손글씨는 웰본 선교사의 부인 새디(사라)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나눈 내용. ⓒ『아서 한국에 가다』

Ⅲ. 한국을 위한 매일 기도

1900년 11월
한국을 위한 매일 기도

인구 10,528,937

“한국에는 10,000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있다. 개신교는 거의 전적으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인 전도 노력에 의해 확산되고 있다.”

한국 선교부(설립 1884).

1900년 11월 1일 – 서울 – 1884[설립]: – H. G. 언더우드 목사(1884), 성서 번역 및 문서 사역과 더불어 전도 사역의 일부를 맡고 있으며, 9개의 자립 교회(교인 수 642)를 돌보고 있다. 언더우드 부인, 의사(1887), 서대문교회와 정동교회 사역을 돕고, 의료 사역과 순방을 한다.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각 선교사의 지부와 임무가 기록되어 있다. 손글씨는 웰본 선교사의 부인 새디(사라)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나눈 내용. ⓒ『아서 한국에 가다』

2일 – 서울 – D. L. 기포드 목사(1888), 연못골교회 담당 및 전도 사역. 기포드 부인은 남편과 함께 사역하며 주로 여성들을 섬긴다.

3일 – 서울 – S. F. 무어 목사(1892), 8개 교회와 9개 설교 장소 등 여러 지부를 감독하며, 백정 사역과 번역 사역을 한다. 무어 부인은 여성들을 섬긴다.

4일 – 주일 – 서울 – F. S. 밀러 목사와 부인(1892), 밀러 씨는 11개의 교회를 돌보며 수련반을 지도하고 주일예배를 인도하며 문서 사역을 한다.

5일 – 서울 – C. C. 빈튼 박사와 부인(1891), 빈튼 박사는 왈든(Walden) 진료소18)에서 의료 사역을 하면서 의료 순방과 교회 사역을 하고 선교부 회계이다. 그들은 안식년을 맞아 고향에 있다.

6일 – 서울 – O. R. 에비슨 박사와 부인(1894), 에비슨 박사는 정부 병원을 맡고 있다. 9,018명 이상의 입원 환자와 228명의 외래 환자.

7일 – 서울 – S. A. 도티 양(1889), 연못골 여학교를 맡고 있다, 학생 40명.

8일 – 서울 – 엘렌 스트롱 양(1892), 건강 휴양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성 사역과 시골 사역을 한다.

9일 – 서울 – K. C. 웜볼드 양(1896), 서대문교회 여성 모임을 돕고 도시 서쪽의 성 밖에서 열리는 저녁 모임을 돕는다.

10일 – 서울 – 조지아나 화이팅 박사(1895), 의료 전도 순방 사역을 하며 정부 병원에서 돕고 지부 밖에 사는 여성들을 섬긴다.

11일 – 주일 – 서울 – 에바 필드 박사(1897), 병원에서 의료 사역을 하며 여성진료소에서 환자들을 위한 평일 예배를 인도한다.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각 선교사의 지부와 임무가 기록되어 있다. 손글씨는 웰본 선교사의 부인 새디(사라)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나눈 내용. ⓒ『아서 한국에 가다』

12일 – 서울 – 에스더 쉴즈 양(1897), 병원에서 사역하면서 여성과 어린이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모임을 가지며 순방한다.

13일 – 부산 – 1891[설립] – 찰스 얼빈 박사(1893), 병원 사역과 의료 순방 - 작년에 8,124명의 내과 및 외과 사례와 683명의 방문이 보고되었다. 얼빈 부인은 소녀들을 위한 야간학교와 학교 여학생들이 참석하는 여성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다.

14일 – 부산 – 마리아 체이스 양(1896), 각 동네에서 호별 방문을 하며 병자들을 돌보고, 영도(Deer Island)에서 주일학교를 인도하고 순방한다.

15일 – 부산 – 시릴 로스 목사(1897)와 부인(의사), 어느 정도 언어를 습득하여 선교지부와 이 나라에서 활동적인 사역을 시작한다.

16일 – 원산 – 1892[설립] – J. S. 게일 목사(1892), 문서 사역, 성경 번역. 교회 담당. 게일부인(1885)은 여성 전도사역을 하며 전도부인을 감독한다.

17일 – 평양 – 1894[설립] – S. A. 마펫 목사(1889), 평양교회를 담임하면서 평안남도 북부 지구를 담당하고 있으며, 순회 전도와 문서 사역, 동기 신학반, 조사들 감독, 평안북도의 수련반을 부분적으로 맡고 있다. 마펫 부인, 의사(1897), 여성 전도 사역, 순회 전도 및 의료 사역.

18일 – 주일 – 평양 – W. M. 베어드 목사(1890), 평안남도 동서 지구 사역 담당, 순회 전도와 문서 사역, 동기 신학반, 소년학교 담당. 베어드 부인은 여성 사역과 여성수련반, 문서 사역, 조사 감독을 한다. 베어드 씨 부부는 안식년을 맞아 고향에 있다.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각 선교사의 지부와 임무가 기록되어 있다. 손글씨는 웰본 선교사의 부인 새디(사라)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나눈 내용. ⓒ『아서 한국에 가다』

19일 – 평양 – 그레이엄 리 목사(1892), 예배당 담당, 세 군데 지구 사역과 한국인 조사들 감독, 동기 신학반. 리 부인(1893), 여성 전도 사역, 여성 수련반 일부 담당, 한국인 조사들 감독.

20일 – 평양 – 헌터 웰즈 박사(1895), 평안병원 담당, 순방. 웰즈 부인(1896), 소녀 주간학교, 여성 전도 사역.

21일 – 평양 – 노르만 휘터모어 목사(1896), 평안북도 전도 사역 담당, 조사 수련반, 두 명의 조사들이 하는 사역 감독.

22일 – 평양 – 윌리엄 헌트 목사(1897), 황해도 순방, 평안남도 남부 지역 사역 담당. 헌트 부인(1898), 여성 전도 사역.

23일 – 평양 – 리차드 사이드보담 목사와 부인(1899), 언어 공부를 하며 새 선교지부의 사역을 배우고 있다.

24일 – 평양 – 알프레드 샤록스 박사와 부인(1899), 첫해를 언어 공부에 전념할 것이다.

25일 – 평양 – W. L. 스왈른 목사(1891), 순회 전도, 동기 신학반, 문서 사역. 스왈른 부인(1892), 여학교 감독, 여성 사역.

26일 – 평양 – 마가렛 베스트 양(1897), 도시 여학교를 맡고 있으며 순방을 한다.

27일 – 대구 – 1898[설립] – J. E. 아담스 목사(1896), 복음 전도 사역, 문서 판매, 촉망되는 새로운 지역 순방. 아담스 부인, 사랑방과 집에서 여성 사역. 그녀는 이제 한국에 있다.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1900년 11월 장로교 한국선교부 기도 연감. 각 선교사의 지부와 임무가 기록되어 있다. 손글씨는 웰본 선교사의 부인 새디(사라)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나눈 내용. ⓒ『아서 한국에 가다』

28일 – 대구 – W. O. 존슨 박사(1897), 도시 의료 사역, 시골 순방. 존슨 부인, 여성 사역.

29일 – 대구 – 헨리 브루언 목사(1899)와 사라 누스 양(1899), 이 해에는 주로 언어 공부에 전념할 것이다.

30일 – 한국 조사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자라도록.

1900년 한국 선교 통계

선교지부 ······················ 4 조직 교회 ·············· 24
외지 선교지부 ········· 205 세례교인 ··········· 2,079
임명받은 선교사 ······· 15 작년에 추가 ····· 1,153
의료 선교사(남) ·········· 6 학교 수 ················· 26
의료 선교사(여) ··········· 5 학생 수 ··············· 309
기혼여선교사(의사 3) ··· 1 주일학생 수 ··· 4,302
미혼여선교사(의사 2) ··· 9 병원 및 진료소 ···· 4
한국인 조사 ················ 28 진료환자 ······ 22,372 <계속>

[미주]
12) 조지 렉의 부인, 1902년 3월 유복자 출산 후 12월 1일 사직하고 귀국.
13) 1900년 10월 18일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에서 1년간 체재. 1901년 11월 2일 조사 양전백과 강계 지방으로 전도여행. 1901년 12월 15일 선천으로 귀환 도중 천연두에 걸려 소천.
14) 鮮于理, 1866년 1월 29일~1960년 3월 20일 미국 아이오와주 페어필드 출생. 1900년 10월 18일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선교부에 부임. 1903년 숭의여학교 제2대 교장으로 취임. 1936년 1월 21일 신사참배 거부로 교직권 박탈.
15) 史佑業, 1870~1952년, 1900년 10월 18일 부인과 함께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선교부에서 전도사업, 1907년 황해도 재령 선교부로 이전 재령성경학교 설립에 크게 기여, 1912~1913년 황해노회장 역임.
16) 片夏薛, 1874~1958년, 1900년 10월 18일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에서 선교활동. 1903년 평양 장로교회신학교에서 도덕학 강의, 1905년 산정현교회 초대 목사로 시무, 1930~1931년 평양 외국인학교 교장으로 봉직,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송환 귀국.
17) Mrs. Adams는 Adams, James Edward(安義窩, 1867~1929)의 부인 Nellie Dick이다. 당시 3자녀는 첫째 Adams Edward(安斗華, 1895~1965), 둘째 Adams Benjamin(安邊嚴), 셋째 Adams George J.(安斗照) 세 형제이다.
18) 1891년 4월 3일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한 빈턴(賓頓) 선교사는 국립병원 제중원의 의사로 활동 원장에 취임, 1893년 11월 사직을 하고 개인진료소에서 치료 복음전도를 했다. 이 개인진료수를 왈든 진료소라 부른 듯하다.

글=프리실라 웰본 에비
엮은이=김현수 박사
미주 추가=리진만 우간다·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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