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웰본 선교사는 1900년 내한하여 황해도 배천, 강원 원주와 경북 안동, 영주, 문경, 상주, 봉화, 대구 등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누비며 오지에 복음을 전한 개척 선교사다. 순회 전도 시에는 평균 1천 리 길을 여행하며 ‘길 위의 전도자’로 불렸던 웰본 선교사는 일각에서 1903년 원산 부흥운동에 앞서 배천에서 부흥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서 웰본의 한국 선교 기록을 통해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양반과 평민 등 계층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파했던 선교사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려 한다. <편집자 주>

아서 웰본과 새디 웰본
▲왼쪽부터 아서 웰본과 새디 웰본
Ⅸ. 아서 웰본 선교사의 연례보고서

1902년 6월 30일25)

연례회의 직후 무어 씨가 미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저의 한 해 사역은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달랐습니다. 사역을 감독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언어공부 시간을 줄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무어 씨에게 맡겨진 사역과 그가 돌아간 후 저에게로 이관된 사역이 도시 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한지 아마 1년이 지났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배천 지역의 기근, 강원도 지구의 거짓 형제들의 사역, 도시 교회의 특수 문제들, 그리고 정규 사역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모든 질문이 한 해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반성하고 사역이 더 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의 포도원에서 그분과 함께 일하도록 허락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례회의 이후로 6주간의 시간은 배천 지구에, 3주간은 강원도 북부 지역과 경기도 북부 지역을 순회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중앙교회와 언어공부에 할당되었습니다.

배천 지역에서의 우리 사역은 무어 씨의 귀국과 계속되는 흉년,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교인들의 고통으로 인해 많은 방해를 받았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사를 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별로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현재 192명의 세례받은 성인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모임은 24개 도시와 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이들 중 10그룹은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그룹들은 개인 집에서 만납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아기들과 학습 교인들의 정확한 명단과 교회 헌금의 액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지역에서 10명의 성인은 무어 씨가 귀국하기 바로 전에 세례를 받았고 다수의 교인들이 학습을 받았습니다. 지난 3월 세 개의 마을에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300엔 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때 모든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로부터 받는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분배가 공평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제를 일으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지역은 임시 숙소가 마련되기 전에는 제대로 관리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곳을 다녀오려면 왕복 300마일을 여행해야 합니다. 두 달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지만 현재의 숙박 시설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자를 수급하고 짧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1주일간 서울을 다녀와야 합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사역지에 휴게가옥이 제공된다면 비용과 불필요한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경기도 북부 지역에는 세례 교인이 44명인 네 그룹이 있습니다. 올해 이 지구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 없지만 5개 마을에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고 12명이 학습 교인 명단에 추가되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믿는 가정이 하나만 있는 마을이 몇 개 더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모두 백정 계층에 속합니다. 5월의 일부는 이 쾌적한 지역에서 보냈습니다. 상쾌한 공기와 풍경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의 사역은 올해 우리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고무적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최근에 맡게 된 사역지인 강원도 북부 지구는 매우 나쁜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징계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단순히 오래된 빚을 받아 내거나 돈을 갈취하고 행상 조합과 시민 당국에 대항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 지역에 하나의 교회만 가지고 있을 뿐이며 세례를 받은 성실한 교인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50명 이상입니다. 이들은 모두 여러 마을에 살고 있는 남성들로서 가장들입니다. 그래서 이 나쁜 일은 우리가 보고한 신자들의 수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악한 일을 근절하기 위해 이 지역에 교회를 가진 다른 교단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잘 처리되고 있어서 다음 해에는 좋은 소식을 보고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내년에는 조사가 이 지역에서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두 마을에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고, 네 명이 학습교인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아서가 소지했던 성경
▲아서가 소지했던 성경. 1908년 영국성서공회에서 간행된 성경책이다. ⓒ『아서 한국에 가다』
서울에서의 우리 사역은 한 해 동안 상당한 격변을 겪었습니다. 경민서골(Keong-min-syo-Kol) 사역의 기초는 언급한 이름으로 알려진 건물에서 시작된 이래로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교회에 분열이 형성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우리에게 앞으로 그곳에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라고 요청했습니다. 교회 건물 매입의 매우 의심스러운 성격과 반대파의 명백한 나쁜 정신을 고려하여 서울 공의회에서는 철수를 결정하고 당분간 병원 구내에 있는 건물을 수리하여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건물이 설치되었고 2월 23일에 첫 번째 모임을 그곳에서 가졌습니다. 전도위원회는 매주 일요일 2시에 이 중앙교회에서 연합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모임은 참석률이 높고 서울에서의 모든 사역을 통일하는 데 도움이 되며 지방에서 온 방문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 일요일 오후 모임이 시작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삶을 살도록 이끌기 위해 저녁에 연합예배를 드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녁예배는 4월 21일에 시작되어 6월 1일까지 매일 밤 계속되었습니다. 밀러 씨, 게일 씨, 에비슨 박사님이 주강사였습니다. 한국인 형제들 중에서도 몇 사람이 설교를 하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거리를 고려해 볼 때 출석률이 매우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때가 참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주간 동안 매일 밤 도시 곳곳에서 구역 모임(cottage meeting)이 계속 열렸고, 현지인 설교자를 지원하기 위해 연보가 모아졌으며, 우리 시내 교회들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더 가깝게 결속되었습니다.

경민서골파는 치리를 당했고 학습교인들은 제명되었습니다. 그들은 약 3개월 동안 옛 건물에서 계속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몇 사람이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징계 하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우리가 바라는 만큼 교회가 눈에 보이는 성장은 하지 못했으나 우리는 머지않아 결실을 맺게 될, 보이지 않는 성장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2명뿐이고 학습교인은 1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추천과 이적으로 9명의 세례교인과 2명의 학습교인이 명단에 추가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모인 연보는 일본 은화로 80달러였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제출합니다.

아서 웰본

Ⅹ. 아서 웰본 선교사 편지
뉴욕 해외선교부의 엘린우드 박사에게 쓴 편지

1902년 9월 3일, 서울26)

친애하는 엘린우드 박사님,

여름은 이제 거의 다 지나가고 저희는 가을 사역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연례회의가 순회 여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 중 한 달을 차지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한 해는 너무 짧습니다.

더위와 비 때문에 지방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저희는 9월 말과 10월 초처럼 날씨가 좋은 시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연례회의 시간에 대한 문제는 선교부에서 완전히 합의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날짜가 변경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웰본 부인과 저는 지난 해27) 세 번째 여행을 경기도 북부와 원산 가는 길을 따라 여기서 약간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다녀왔습니다. 저희는 5월 14일에 이곳을 떠나 겨우 3주 동안 여행을 했습니다. 날씨가 좋았습니다. 이 여행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무어 씨의 조사가 동행하여 설교와 강의를 해주었고 후보자 시험을 도와주었습니다. 이 지역의 사역 대부분은 백정 계층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 계층은 숫자가 적고 하찮게 여겨지기 때문에 사역은 작고 더디게 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만나면 무척 기뻐하고 간절히 배우고 싶어 하기에 그 열정이 숫자의 부족을 채우고도 남습니다. 저희는 이 지역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 지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강원도 사역은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1년 전에 무어 씨와 제가 그곳에 갔을 때 교회의 이름으로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방문이 그것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계속된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문제가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특히 원산의 캐나다 형제들과 남감리교 선교사들 사이에 사역지를 조율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약간의 마찰이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렇습니다. 이달 중순에 열리는 공의회 모임이 아마도 선교구역과 관련된 어려움 중 일부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사역을 잘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러한 마찰에 대해 알게 되니 마음이 다소 언짢았습니다. 제가 그곳에 다녀온 이후로 조사가 그 지역에서 두 달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곳 사역이 더 나은 기반을 가지게 될 때까지 면밀히 지켜볼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도시 교회와 관련해서 편지를 쓴 이래로 우리가 옛 교회에 남겨둔 그 한 무리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다시 받아들여 줄 것을 원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 건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무리의 몇몇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이교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6월 말부터 건물이 방치된 상태입니다.

아서의 설교 개요
▲아서의 설교 개요. 간단한 설교 개요만 작성하는 것이 아서의 관례였다. 개요의 대부분은 이 메모와 같이 잘라낸 봉투 뒷면에 쓰여 있었고, 주로 그의 성경에서 발견됐다. ⓒ『아서 한국에 가다』
연합 모임은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곧 사역의 모든 분야에서 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웰본 부인과 저는 한 해 동안 건강히 잘 지냈으며 저희 앞에 놓인 사역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고서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배천 휴게가옥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빈튼 박사님으로부터 누군가가 그 목적을 위해 특별 기부를 하지 않는 한 선교부가 그러한 요청을 승인한 적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왜 그것이 승인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선교부로부터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위에 언급한 이유라면 뭔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본 것이며, 저는 그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지역을 왕복하는 데는 1주일이 걸리며 금화 15불가량의 비용이 듭니다.

시간 낭비와 여행의 노고 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희는 항상 서둘러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사역이 너무나 시급해서 대개 음식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국 밥, 달걀, 김치로 기력을 충당시키면서 지친 상태로 집에 도착합니다. 추운 날씨에 연기 나는 작은 집에 갇혀 있는 것은 외국인이 견디기에 힘든 것입니다. 웰본 부인의 눈과 목은 지난봄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녀가 전도 여행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봄이나 가을처럼 문을 열어 놓을 수 있고 시간의 일부를 바깥에서 보낼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는 선교부가 사역을 위해 필요한 이 작은 금액을 허락하리라고 믿습니다.

펜(Fenn)28) 씨의 친절한 편지를 지난달에 받았습니다. 중국에 있는 동료 선교사들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저희 둘이 깊은 경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아서 웰본 <계속>

[미주]
25)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선교 편지와 보고서 1833~1911”, 마이크로필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Graphic Microfilm Corp., 1953~1965, Reel #285, Vol. 244.
26)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선교 편지와 보고서 1833~1911”, 마이크로필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Graphic Microfilm Corp., 1953~1965, Reel #280, Vol. 232, #83.
27) 1년 선교 사역 기간은 7월 1일에 시작되어 다음 해 6월 30일에 끝났다.
28) Fenwick Malcolm C.(펜윅 말콤, 片爲益, 캐나다, 1863~1935. 12. 6). 펜윅은 1889월 9일 독립선교사로 내한, 1901년 충남 공주의 엘라딩기념선교회를 인수하여 자신의 한국 순회선교회와 합병해 31개 교회를 개척했다. 한국침례교단의 주춧돌을 쌓은 선교사이다.

글=프리실라 웰본 에비
엮은이=김현수 박사
미주 추가=리진만 우간다·인도네시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