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4월 제36회 협성회에서는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씀이 가함’이란 주제로 토론을 하는데, 이 토론을 거의 마쳐 갈 무렵 협성회에서는 단발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토론이 시작되자 참가한 회원들이 일제히 단발에 대하여 동의, 재청을 하여 투표한 결과 단발이 가(可)함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배재학생들의 상투는 며칠 사이에 모두 잘려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걱정과 오랜 인습에 대한 미련으로 다소의 소동을 빚기도 했다.

육정수라는 학생은 선뜻 상투를 자르지 못하다가 동료 학생에 의해 머리를 깎이고 말았다. 그는 집안 어른들에게 혼이 날까 봐 머리를 깎지 않으려고 대법원 자리의 개나리꽃 숲으로 숨었는데 한 동료 학생이 쫓아가 상투를 반쯤 자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상투를 모두 자르자 아펜젤러는 크게 기뻐했다. 당시 아펜젤러는 배재의 삼대 교육목표를 영어를 가르치고, 상투를 자르고, 기독교를 믿게 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목표 중의 하나가 하루아침에 달성되었기 때문이다.1) 

만민공동회 기록화. 만민공동회는 배재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조국의 독립과 개화를 위해 활동했다.
▲만민공동회 기록화. 만민공동회는 배재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조국의 독립과 개화를 위해 활동했다.
배재 협성회의 활발한 토론회의 영향을 받아 독립협회에서도 늦게나마 1897년 8월 29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독립관에 모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회원들에게 민주주의적 훈련을 시켰다. 독립협회 토론의 주제들이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를 띤 데 비하여 협성회의 그것들은 교육적이며 계몽적이었다는 것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이 협성회는 조직도 갖추고 규칙도 만들었는데 규칙은 신흥우의 형인 신긍우(申肯雨)가 작성하였다.2)

초창기의 협성회 임원은 아래와 같이 배재학당의 교사와 학생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회 장 : 양홍묵
부회장 : 노병선
서 기 : 이승만(李承晩), 김연근
회 계 : 윤창렬, 김혁수
사 찰 : 이익채, 임인호
사 적 : 주상호 (일명 주시경)3)

독립협회의 대조선독립협회회보. 배재학당 학생들의 조직인 협성회는 후에 발전하여 독립협회가 된다.
▲독립협회의 대조선독립협회회보. 배재학당 학생들의 조직인 협성회는 후에 발전하여 독립협회가 된다.
당시에 사람들은 연설을 한다 하면 무슨 큰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기심에 구경하러 모여들었고, 차차 연설은 잔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배재 학생들은 연설회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자 묘안을 만들어냈다. 배재학당 학생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고함과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이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드는데, 몇십 명 정도가 모이게 되면 학생들은 싸움을 멈추고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노상의 정치 연설은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독립협회로 확산되어 민중정치 운동의 한 형태가 되었다.4)

백성이 마음대로 선거를 하여 정치를 움직이는 세상이 되면 전제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온갖 부패와 무력은 저절로 없어지고 나라를 발전시켜보려는 열성과 힘도 자연히 생길 것이라는 서재필 박사의 연설은 젊은 학생들의 피를 끓게 하였던 것이다. <계속> 

[미주]
1) 윤성렬, 『도포 입고 ABC, 갓 쓰고 맨손체조』, p. 38-39.
2) 조선일보(朝鮮日報) 1934. 12. 02.
3) 윤성렬, 『도포 입고 ABC, 갓 쓰고 맨손체조』, p. 156.
4) 윤성렬, 『도포 입고 ABC, 갓 쓰고 맨손체조』, p. 161.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