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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험에 드는가?
본문
야고보서 1장 12–15절
서론
시험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봅니다. “저 사람, 요즘 시험에 들었대요.” 혹은 나 자신이 말합니다. “저도 시험 들었어요. 이제는 교회 나가기가 싫어요.” 그런데 ‘시험에 든다’는 말은 단지 기분이 상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는 시험이라는 것이 언제든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 그 보호를 간구해야 할 만큼 심각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은 시험을 이기는 자가 복되다 하였고, 그 시험에 빠지는 자는 결국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야고보서 1:15). 그렇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왜 시험에 드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의 시험의 실체를 살피고, 그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는 믿음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1
우리가 시험에 드는 여섯 가지 이유
1. 자기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 목회자, 성도들에게 나름의 기대를 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그 실망이 깊어지면 시험으로 이어집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고 물을 만큼 기대가 무너졌습니다(눅 7:19).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눅 7:23) 시험을 피하려면, 사람에게 기대하기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인간관계의 충돌과 오해 때문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지만,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는 인간들의 모임입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작은 오해가 시험의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혀는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는 불이다”(약 3:6)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과 관계에서 늘 조심하고 자제하며, 상처보다 용서와 화해를 선택해야 합니다.
3. 열등감과 자존감의 상처 때문입니다: 자기 가치가 하나님 안에서 세워지지 않으면, 사람의 말과 비교, 인정받지 못한 감정이 시험이 됩니다. 사울은 다윗보다 사람들의 찬송이 크자 질투했고(삼상 18:7), 가인은 아벨보다 제사가 받아들여지자 분노했습니다(창 4:5). 열등감은 외면의 태도보다 내면의 왜곡된 정체성에서 시작됩니다. 자존감은 십자가 앞에서 회복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4)
4. 감정이 영적 분별력을 앞설 때입니다: 시험에 드는 사람들의 특징은 감정이 말씀을 압도하는 상태입니다. 분별없이 감정대로 해석하고 행동하면, 마귀는 그 틈을 타고 시험을 심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협박에 감정적으로 반응해 광야로 도망쳤고, 모세는 백성에 대한 분노로 반석을 두 번 쳤으며, 결국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분별력 없이 내리는 충동적 해석과 판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감정을 해석해야지, 감정으로 말씀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5. 사명보다 ‘인정’을 더 바랄 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흔한 시험 중 하나는 “내가 이렇게 헌신하는데 왜 아무도 몰라줄까?” 하는 마음입니다. 사명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인정은 조건적입니다. 그것에 흔들리면 사역의 기쁨이 섭섭함과 낙심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구제하지 말라… 하늘의 상을 받지 못하리라.”(마 6:1)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갈 1:10)라고 단언합니다.
6. 내 안의 욕심 때문입니다: 결국 시험의 뿌리는 내 안의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내 안의 욕망과 인정욕, 통제욕, 소유욕이 자라 결국은 죄가 되고, 죄는 파멸로 이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시험은 상황이 아니라 욕심에 반응한 내 믿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영적 거울입니다.
본론 2
욕심은 왜 시험의 뿌리인가?
‘욕심’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감정 정도가 아니라 죄 된 본성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 욕망은 하나님과는 무관한 방향을 향해 있으며, 오직 자기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이기적인 열망입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기 방식으로, 자기 시간에 이루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욕심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내면에서 천천히 자라고 자리를 잡는 고질적인 태도입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며 자신을 중심에 놓게 만듭니다. 욕심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밀어내고, 내가 나의 주인처럼 행동하게 합니다.
이러한 욕심은 결국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파멸이라는 결말을 가져오게 됩니다. 야고보는 이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경고합니다. 즉, 욕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죄의 씨앗이며, 사망의 전조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욕심은 단지 어떤 것을 원한다는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 없이는 안 된다’는 절대화와 집착으로 변할 때, 그것은 곧 우상이 됩니다. 이것은 욕심이 단순한 욕망을 넘어,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는 대상이 되는 중독적 성향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마다 욕심의 대상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누군가는 지식과 지혜, 누군가는 물질과 안정, 또 다른 이는 인정과 영향력을 욕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게 되면, 결국 죄의 길로 이어지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욕심의 경로를 따른 인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 하와는 선악과를 보며 지혜롭게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갔고, 결국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에서 추방당하는 결과를 맞습니다(창 3:6).
* 아간은 외투와 은, 금을 탐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과 공동체를 멸망에 빠뜨렸습니다(수 7:20–21).
* 다윗은 밧세바를 욕망하여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고, 가정 안에 깊은 상처와 비극의 연속을 낳았습니다(삼하 11장).
* 유다는 돈을 사랑한 나머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습니다(마 26:14–16).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욕심이 마음에 잉태되어 행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파멸로 끝났다는 점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시험을 받는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15)
시험은 외부에서 오는 압박보다 내면에서 자라난 욕심이 미혹을 만들고 결국 죄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욕심은 왜 시험의 뿌리일까요?
* 욕심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방식과 시기를 무시하고 지금 당장 이루려는 집착에서 나옵니다. 조급함은 신앙의 인내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 욕심은 심리적 결핍에서 자라납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비교로 인한 불안,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정적 상처 등이 욕심을 자라나게 합니다. 겉으로는 “더 잘하고 싶다”는 열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인정받아야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내적 불안이 숨어 있습니다.
* 욕심은 위장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 방식과 내 시간표로 하나님이 일하시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신뢰의 결핍이며, 믿음의 부패입니다.
* 욕심은 언제든 시험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욕심은 인정받지 못할 때 시험이 됩니다. 옳아지고자 하는 욕심은 오해받을 때 분노로 바뀝니다. 앞서고자 하는 욕심은 다른 이의 성공 앞에 시기심이 됩니다.
적용과 결단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시험에 들었는가?
혹시 사람의 말, 기대의 무너짐, 섭섭함, 인정 욕구, 상처 때문은 아닌가?
그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사명과 말씀을 다시 붙들 수는 없는가?
본론 3
시험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다섯 가지 복
1. 시험을 견딘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약 1:12): 세상은 고난을 피한 자를 성공이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시련을 견딘 자를 복 있는 자라 하십니다. 이 복은 감정적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복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신앙의 복은 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믿음입니다.
2. 시험을 이긴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계 2:10): 고난 중에 충성한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천국에서의 상급일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자의 영적 권위입니다. 시험은 영광의 문턱이며, 그 너머에 면류관이 기다립니다.
3. 시험을 이긴 자에게 더 큰 사명이 주어집니다(요 21:17): 실패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시험은 자격 박탈이 아니라, 사명을 갱신하는 기회입니다. 시험 후에 하나님은 더 깊은 사명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4.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히 4:15): 예수님은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유혹을 이기셨고, 그 후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말씀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세워지는 과정입니다.
5. 시험을 통과하면 믿음은 단단해지고 깊어집니다(롬 5:3–4):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시험은 믿음을 연단하고, 연단은 소망을 낳습니다. 시험을 이긴 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살아갑니다. 시험은 믿음을 자라게 하고, 인생을 깊게 합니다.
적용 질문
나는 지금 어떤 시험의 자리에 있는가?
지금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인가, 사람의 기대인가?
시험을 견디는 동안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결론
시험은 믿음의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시험은 피해야 할 저주가 아니라, 믿음으로 통과해야 할 영적 훈련장입니다. 감정으로 반응하면 실족하지만, 말씀으로 반응하면 성장합니다. 시험은 우리 안의 욕심을 드러내고, 그 욕심을 내려놓을 기회를 줍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십시오. 그분은 우리 안에 욕심 대신 믿음을 심으시고, 죄 대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약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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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내 안에 감춰진 욕심을 직면하게 하소서. 내 뜻과 시간보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시험 중에도 주님의 말씀으로 반응하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하신 면류관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bbf6R7w7cgc?si=HBO9mtfQu2k2BH1R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