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립신문(獨立新聞)

독립신문 영문판
▲독립신문 영문판
독립신문은 1884년 갑신정변 때 미국으로 망명하였던 서재필 박사가 1895년 돌아와 활동하는 가운데 창간된 신문이다. 1896년 8월 15일 발행되었으며 모두 4면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에서 발행된 첫 번째 민간신문이다.

독립신문은 순 한글만 사용하였고 띄어쓰기를 시도하였다. 주 3회(화, 목, 토) 발행하고, 1면이 3단, 1행 20자와 1단 35행으로 이루어졌다. 1단에 새김 형태로 들어간 제호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도록 한 가로쓰기였다.

「독닙신문」으로 시작, 제12호(1896.5.2.)에 이르러 ‘닙’자를 ‘립’으로 고치는 한편, 중간에 태극기를 넣기 시작하고 제76호(1898.7.1)부터는 일간으로 발행하였다. 1899년 12월 정부가 이 신문을 매수하여 발행을 중지시켰으나 독립신문의 계몽, 자주정신은 이후 조선 신문 전통의 근간(根幹)이 되었다.1)

이 신문은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 신문사 상 획기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한국 사회의 발전과 민중의 계몽을 위하여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한 시대의 기념비적인 신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신문은 창간사(創刊辭)에서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변자(代辯者)가 되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알릴 것이며, 부정부패 탐관오리 등을 고발할 것을 천명하였다. 1957년부터 언론계는 독립신문의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였다.

주시경(좌)과 남궁억(우)
▲주시경(좌)과 남궁억(우)
독립신문은 배재학당 내 출판소(出版所)에서 발간되었다. 당시 배재 학생이던 주시경은 신문사의 회계 겸 교보원으로 활동하였다. 1면의 1단과 2단은 오늘날의 사설과 같은 논설을 실었다. 2면의 1단과 2단은 오늘날의 정치면과 같은 정치 기사를 실었고, 3면과 4면은 영문으로 기사화하였다. 이 영문기사에는 남궁억 씨가 총필(總筆)이 되어 한국의 정치적 동태와 조선의 생활풍습과 문화 기사를 실었다. 영문이 있었기에 독립신문은 외국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게 되었고, 은둔의 나라로 불리던 조선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2) <계속>

[미주]
1)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NO001&qid=00CfB&q
2) 김세한, 『배재 80년사』, p. 222.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