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회회보를 일간으로 바꾸면서 발행된 매일신문(1898년 4월 9일 창간, 1899년 4월 4일 폐간)
▲협성회회보를 일간으로 바꾸면서 발행된 매일신문(1898년 4월 9일 창간, 1899년 4월 4일 폐간)
3. 협성회회보의 발간

협성회는 정치(政治) 강연회를 통한 민중계몽에 열을 올리는 한편, 1898년 1월 1일 자로 「협성회회보」라는 주간 신문(新聞)형 기관지를 발행하여 민중계몽에 앞장서게 되었다. 2면 3단으로 발행된 이 회보는 제1면 1단에 논설, 2단에는 사회면과 같은 성격의 잡보(雜報), 제3단에는 협성회의 소식을 게재하였다.

그러나 협성회회보는 정부의 부패를 반박하고, 개화사상을 주입하는 강력한 논설을 계속해서 게재하여 마침내 폐간을 당하고 말았다. 이승만은 총필이 되어 기탄없이 조선 정부를 반박하고 개화정신을 주입하는 논설과 문화면을 통하여 강렬한 활동을 하는데, 조선 정부는 이를 좋지 않게 여겨 협성회회보를 폐간하였다.1)

1898년 1월 26일 자로 농상공부의 정식 인가까지 받았던 「협성회회보」는 불과 몇 달 만에 폐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양홍묵, 유영석과 같은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그해 4월 9일부터는 「매일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의 논설은 오히려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많은 수의 신문이 팔리게 되었다. 이승만이 총필이 되고 유영석 등이 도왔으며, 미국 공사관의 후원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종이 문제가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신문은 제국신문과 황성신문에 영향을 주었다.

민족주의 성격으로 창간된 일간지 제국신문(1898년 8월 10일 창간, 1910년 8월 2일 폐간)
▲민족주의 성격으로 창간된 일간지 제국신문(1898년 8월 10일 창간, 1910년 8월 2일 폐간)
「매일신문」은 모두 4면으로 되어있었으며, 제1면 1단과 2단, 제3면의 1단에는 오늘의 정치면과 같이 정치 기사를 실었다. 제3면의 2단과 4면의 1단에는 학문과 개화문명에 관한 문화적인 기사를 실었고, 제4면 2단에는 외보(外報)라는 난과 광고란이 있었다.

매월 구독료는 엽전 7돈, 신문 한 장의 값은 엽전 4푼이었다. 광고란은 일정하게 되어 있어서 월 80전씩을 받았고, 다섯 줄이 넘으면 한 줄에 70전씩을 받았으며, 열 줄을 넘으면 한 줄에 60전씩 받았다.

「매일신문」은 한국 일간신문의 원조(元祖)라고 할 수 있으며, 1897년 농상부의 인가를 받았다. 당시 다른 신문들은 모두 순보 혹은 주보로 발행되었으나 배재학당 협성회에서 발행하는 「매일신문」은 매일 발행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정부의 부패한 관리들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한편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를 시행할 것과 국가의 독립을 보존하는 일에 국민이 총궐기해야 한다는 것을 늘 기사로 보도하고 논설로 주장하였다. 다음은 매일신문의 조직표이다.

사장: 양홍묵
기재원: 이승만, 최정식
회계: 유영석, 박신영
감독: 현제창, 현덕호2)

이승만은 협성회회보 1898년 3월 9일 자에 ‘고목가(Song of Old Tree)’라는 제목의 시를 게재하기도 했다. ‘고목가’는 최초의 신체시(新體詩)로 평가받는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1908)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여기 이승만의 ‘고목가’ 전문(全文)을 소개한다.

고목가(古木歌, Song of an Old Tree)
이승만
슬프다 저 나무 다 늙었네.
병들고 썩어서 반만 섰네.
심악한 비바람 이리저리 급히 쳐
몇백년 큰 남기 오늘 위태.

원수의 따짝새(딱따구리) 밑을 쪼네.
미욱한 저 새야 쪼지 마라.
쪼고 또 쪼다가 네 처자 네 몸은
고목이 부러지면 어디 의지(依支).

버티세, 버티세, 저 고목을.
뿌리만 굳 박혀 반근(盤根)되면.
새 가지 새 잎이 다시 영화(榮華) 봄되면
강근(强根)이 자란 후 풍우 불외(不畏).

쏘아라, 저 포수 따짝새를.
원수의 저 미물, 남글 쪼아
비바람을 도와 너머지게 하니
위망(危亡)을 재촉하여 어찌할꼬?3) <계속>

[미주]
1) 김세한, 『배재 80년사』, p. 226.
2) 김세한, 『배재 80년사』, p. 231.
3) 이 시는 1898년 3월 5일자 <협성회회보>에 실린 이승만의 한글 시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로 평가된다. 고목은 쇠퇴해 가는 조선왕조를 가리키고, 따짝새는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러시아, 일본 같은 제국주의 열강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위의 글은 김근수 편 <한국개화기 시가집>(태학사, 1985) 서문에서 현대 맞춤법으로 고쳐 실은 것을 옮겨 왔다.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