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선교적 시각으로 보기
성경: 마태복음 1장 1~6절 제목: ‘마태복음에 나타난 선교’

지난 칼럼까지 우리는 창세기부터 소 선지서에 이르기까지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선교적 마음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선교적 시각으로 보면서 그분의 마음이 말씀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렇게 살펴보려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주체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모든 구원 사역과 선교사역의 유일한 근거와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우리의 선교사역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한 근거를 두면서 나아간다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사명을 올바르게 지속하여 감당해 나가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부터 신약성경을 살펴보려 하는데, 신약은 더욱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쓰인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쓰인 신약을 대할 때 우리는 먼저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신약성경 각 권에서 하나님의 선교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각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어떻게 준비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두 가지 관점에서 함께 말씀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신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선교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것은 무엇보다도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부분은 나중에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마태복음 내용 전체에서 하나님의 선교가 개괄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마태복음을 여는 첫 번째 장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나오는데, 그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고 시작하고 있다. 예수님의 계보를 다룸에 있어서 ‘아브라함’부터 언급한 것은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다윗의 혈통에서 난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주시겠다고 일찍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시기 위해서이다. 즉 메시야를 통해 모든 족속에게 복이 임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창 12:1~3)을 성취하기 위해서란 말이다.

특히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네 명의 이방 여인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곧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다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 이들은 모두 이방의 여인들이다. 그러니까 마태는 메시야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는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인들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처음부터 역설하고 있다.

또한 헤롯이 아기 예수의 탄생 때쯤 해서 모든 유아를 살해할 때 아기 예수는 애굽으로 피신하셨는데, 그 후에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마 2:15)고 호세아 11장 1절을 인용하면서 말씀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일찍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애굽에서 구해 내셨다고 마태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아기 예수의 출애굽 사건의 연관성을 서로 지으면서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새로운 구속 행위, 즉 출애굽의 새 역사를 실현시키신 분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구약 성경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운명과 사명을 동시에 완수하기 위해 오신 분이심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앞서 이미 우리가 이사야서에서 다룬 ‘종의 노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이사야가 예언한 참된 하나님의 종이심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마태는 8장 17절에서 이 부분을 이사야 53장 4절을 인용하여,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이사야가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 분’(마 12:21)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을 성취하시고 또한 어떻게 완수하시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마태는 계속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하여 마태는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만나시는 여러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든다면 아기 예수 성탄에 방문한 동방박사들은 이방인들이다(마 2:1~12). 또 로마 백부장과 가나안 여자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이야기(마 8:5~13, 15:21~28),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열방을 향해 더 전진해 나가는 선교,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공동체를 통해 선교는 더욱 힘차게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마 28:16~20).

또한 예수님은 사역 초기부터 선교적 공동체를 만드신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음에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선교를 하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사실이다(마 4:18~19).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은 처음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열방과 민족들을 향한 것이다. 그러니까 제자도와 선교는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날 지상교회의 현실은 제자도의 목적을 성도 개인의 구원과 양육에만 집중하고 있어 예수님의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현실임을 볼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예수님의 대위임령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마태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만이 구약의 여러 선지서들의 예언이 이루어지며, 또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성취되어짐을 말하고 있다(마 26:54~56). 십자가의 사건만이 모든 악의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임을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하나님 선교의 최고 절정의 순간이며 또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의 선교사역도 이 땅의 모든 악의 권세, 즉 마귀와 죄악과 질병과 죽음의 모든 어둠의 권세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신앙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이상에서 먼저 마태복음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복음서의 첫 번째 기록에서 강조하신 예수님의 선교적 의도를 분명히 파악하면서 예수님이 이방 선교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쏟으셨으며, 또한 그분의 사역을 통해 오늘날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한다.

김영휘 목사
▲김영휘 목사
[말씀묵상기도]

1. 마태복음을 시작하면서 선교적 측면에서 어떻게 구약과 신약이 서로 연결되었는지를 깨닫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소서.

2. 마태복음에서 전반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교적 안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순회)선교사
GMS 이주민선교협의회 자문위원
청년인턴선교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