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가 만든 배재학당 옛 규칙
▲아펜젤러가 만든 배재학당 옛 규칙(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배재학당 규칙)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학교의 규칙(規則)은 다음과 같다. 이 학칙은 당시 조선 정부에서도 갖지 못했던 학칙을 아펜젤러가 처음으로 만들어 시행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다.

1) 수업료(授業料)
제 1 수업료는 매월(每月) 3냥이며 다달이 낸다.

2) 학자(學資)
제 2 학자금(學資金)이 없는 이는 일자리를 주고 제 힘으로 벌어서 쓰게 한다.

3) 등교(登校)
제 3 등교시간은 오전 8시 15분으로 11시 30분까지며 오후는 1시로 4시까지 하되 나오고, 물러갈 때는 문란하게 느리거나 뛰고 떠들지 못한다.

4) 시간 종(打鐘)
제 4 학교에 나올 때나 수업을 할 때나 쉴 때는 반드시 종을 울린다.

5) 출입주의(出入注意)
제 5 학생의 출입은 꼭 교사의 허가(許可)를 맡으며 학생표(學生票)를 감독자(監督者)에게 보인다.
제 6 마음대로 출입하면 벌(罰)한다.
제 7 허가를 미리 받지 않고서 사후(事後)에 승낙을 얻으려는 자는 허가할 만한 일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6) 행동(行動)
제 8 학생은 반드시 줏대(强志)가 있어야 하고 모든 일에 예를 지키며 국법(國法)을 범한 자는 법관(法官)에게 넘긴다.
제 9 학교의 건물(建物)이나 용기(用器)를 더럽히거나 파상(破傷)하면 손해를 배상한다.
제 10 학교의 책이나 쓰는 기물(器物)이나 자기의 것이 아니면 일체 가지지 말고 맡은 이들에게 돌리어 본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맡은 이는 그 값을 문토(問討)한다.
제 11 병(病) 핑계하고서 결석하지 말며 술과 노름과 못된 말과 음란한 책을 읽음을 금(禁)한다.

7) 수업(授業)
제 12 수업시간이 아니면 학교에 들어오지 말고 학교에서 싸우지 못한다.
제 13 수업시간에 외인(外人)이 찾아오는 것을 금한다.

8) 제명(除名)
제 14 마음대로 오다 안오다 하며 일 개월(一個月)이 넘는 자는 학교에서 제명한다.

9) 출학(黜學)
제 15 큰 허물이 있으면 학교에서 출학을 명하고 그 다음은 허물의 경중(輕重)을 가려서 유기(有期) 또는 무기(無期)로 정학(停學)을 명한다.
제 16 퇴학(退學)을 하려는 때는 부모(父母)나 추천인의 편지를 가져오게 한다.

10) 도강(都講)1)
제 17 도강(都講=정기적인 시험)은 매년(每年) 2회(回)로 정하고 공부의 다소(多少)대로 끝수 (점수·點數=학점·學點)를 주어 100점으로 만점(滿點)을 삼으며 학과(學科)는 3종이나 5종이나 다소가 같지 않고 합한 수(數)를 책의 수로 제(除)하여 실수(實數)가 70점 이상인 자는 일등(一等)으로 하고 70점 이하는 일등이 못 된다.

11) 공과점표(工課點表)2)
제18 공과(工課)한 점표(點表)는 직접 학생의 부모나 추천인(推薦人)에게 보낸다.

12) 일요일(日曜日)
제 19 매(每) 일요일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나 정지(停止)한다.

13) 사칙(舍則)
제 20 해가 지면 제 방에서 공부하고 밤 10시 후에는 등불을 끈다.
제 21 아침 식사(食事)는 8시에 마치고 점심은 11시 45분에 마치고 저녁식사는 5시로 6시에 마친다.
제 22 자기 방을 매일 조반(朝飯) 전에 쓸고 닦고 거처(居處)를 깨끗이 한다.
제 23 매일 식후(食後)에 하인으로 뜰을 쓸고 불을 때는 등(等)의 일은 직위(職位)대로 한다.

14) 부칙(附則)
제 24 교사와 학생은 모두 절차를 익히 알아야 한다.3)

처음 학생들을 모집할 당시에는 학생들에게 하루 점심 비용을 주었는데, 이제 한 달에 3냥씩 수업료를 받는 것은 그만큼 학교가 성장해 수업료를 받아도 학생들이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학자금(學資金)이 없는 이는 일자리를 주고 제힘으로 벌어서 쓰게 함으로써 아펜젤러는 조선 사회의 양반들이 가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정신을 타파하려 하였다. 그는 일하는 것이 귀한 것임을 알려 주려 하였고, 가난하여 공부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스스로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등교시간을 오전 8시 15분으로 정하고 수업을 11시 30분까지 하며, 오후는 1시로 4시까지 한다는 것은 당시 변변한 시계 하나 없었고 시간개념이 물렀던 조선인들에게 분명한 시간개념을 알려준 것이라 하겠다. 실제로 육영공원의 예를 보면, 양반자제들이 학교에 나오면서 하인들을 대동하고 나온다거나 엄격한 시간 규칙을 지키지 못해서 미국인 교사들과 학생들 간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

아마도 도강과 공과점표 제도는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되는 교육제도였을 것이다. 또한 일요일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나 정지(停止)함으로써 기독교식 주일 성수의 개념을 알려 주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계속>

[미주]
1) 도강(都講)이란 오늘날의 시험을 말하는 것이다.
2) 공과점표(工課點表)란 오늘날의 성적표를 말하는 것이다.
3) 배재창립 50주년 기념호, (1935년 6월 8일 발행), 『배재』지(誌) 참조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