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공동회 개최 모습
▲만민공동회 개최 모습

7) 정치범들의 피난처

아펜젤러는 조건 없이 비폭력적이거나 무저항주의자는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그는 옳고 그른 일을 가리고 저항하는 일을 사양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펜젤러는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진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가두연설이나 교내 연설을 직간접으로 많이 도왔다. 또 미국인이었던 자신의 구역이 치외법권(治外法權)이었기 때문에 때때로 학생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의 피신처로 허용하여 주었다.1)

다음에 소개하려는 것은 알렌이 선교사, 의사로서의 직(職)을 사임하고 미국의 공사관이 되었을 때 아펜젤러에게 보낸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의 글이다. 만민공동회와 관련해서 배재학교가 독립군의 도피처 내지는 모임의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렌의 편지가 방증해 주고 있다. 학생들을 해산시켜 달라는 알렌의 요청에 아펜젤러의 미온적인 답장은 아펜젤러가 학생들을 의도적으로 보호하려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친애하는 아펜젤러 목사께

1884년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이자 의료선교사로 활동한 알렌. 1890년대 주한 미공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였다.
▲1884년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이자 의료선교사로 활동한 알렌. 1890년대 주한 미공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였다.

나는 조정으로부터 배재학교 및 부속건물들이 지금 대궐 앞에 모여 있는 인민들, 일반적으로 독립군(Independents)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모임장소 내지 집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외교문서에는 김가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있습니다. 이들 독립군으로 알려진 자들은 공격을 받을 경우 당신의 학교 운동장과 건물로 도망하려한다는 정보도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당신이 그런 일에 동의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지금도 절대로 동의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인해서 이웃의 모든 다른 외국인 가족들은 물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불필요하고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 둡니다. 또한 도피처를 얻기 위해 당신의 집과 대지를 침범할지도 모르는 군중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줄 힘이 내게는 전혀 없습니다.

이 편지에 동봉하는 회람에 당신의 주의를 불러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확고한 요청에 의해서 내 전임자(Sill)가 배부했던 것으로, 당신도 한부 가지고 있을 줄 압니다.2)

이 회람은 바로 이들 독립군 소요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인 도망자에 대해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이 회람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호레이스 알렌(Horace N. Allen)
서울에서3)

산초 윤성렬 목사, 배재학당 초기 졸업생으로 선교사들을 도와 평생 목회활동을 하였다. 은평천사원의 설립자이다
▲산초 윤성렬 목사, 배재학당 초기 졸업생으로 선교사들을 도와 평생 목회활동을 하였다. 은평천사원의 설립자이다

미 공사인 알렌은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보호해 주는 것은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며, 그들을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당신이 큰일을 당할 수 있다는 위협 섞인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펜젤러는 이러한 알렌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냄으로써 자신이 이 일과 무관함을 말하였다. 하지만, 실상 당시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인정되었던 배재학당과 그의 집은 학생들의 도피처였다. 이 사실은 당시 배재 학생이었던 윤성렬의 글에 잘 나타나있다.

“도피한 수구파들은 10월 21일 마침내 보부상배 2천여 명을 동원, 종로에서 대회를 열고, 인화문 앞의 만민공동회장을 습격, 유혈극을 벌였다. 보부상들의 몽둥이에 난타 당한 만민들은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고 배재학당 외국 공관 등으로 뛰어들어 피신하였다.4) 

이보다 앞서 11월 25일 독립협회 측의 윤치호, 정교, 남궁억 등을 입궐토록 불렀으나 모두 신변의 위험을 느껴 배재학당에 은신하고, 들어가지 않았다. 이들은 11월 23일 만민공동회를 해산하면서 고종이 약속한 보부상의 해산을 이행하지 않아 사태가 달라짐으로 입궐을 거부했던 것이다. 보부상들은 이때부터 배재학당에 악감정을 품게 되었다.”5) <계속>

[미주]
1) 조선일보(朝鮮日報) 1934. 11. 27. 기사
2) 1897년 5월 11일 자 실(Sill) 공사의 회람 참조
3) 1898년 11월 20일 이만열, 『아펜젤러』 p. 401.
4) 윤성렬, 『도포입고 ABC 갓 쓰고 맨손 체조』, p. 181.
5) 위의 책, p. 185.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