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만 악(惡)에서 구하옵소서’에 대하여(But deliver us from evil)
서론
주기도문의 여섯째 청원의 후반절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후반절을 일곱째 청원, 곧 별개의 간구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이것을 별개의 간구로 보고 두 간구로 구분하는데 “여섯째 간구(시험에 들지 말게 할 것)는 미래의 죄에 대하여, 일곱째 간구(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이미 범한 죄로부터 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라 했다. 반면에 존 칼빈(John Calvin)은 이 청원의 전반절과 후반절을 한 가지로 보며, 오늘날 여러 학자도 이것을 한 간구라고 주장한다.
메츠거(Metzger) 교수는 이 두 절을 ‘우리를 지키심’(Protection)이라는 하나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마태의 주기도문 6장 13절을 두 간구로 보고, 전반절은 미래의 죄에 대해서, 후반절은 과거의 죄에 대해서 구함 받기를 간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핸드릭슨(Handricson)과 같이 전, 후반절을 다 미래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말 개역본은 ‘다만’이란 부사로 연결하여 소극적인 간구(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와 적극적인 간구(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한가운데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의 주기도문 6장 13절은 본성적으로 연약한 우리로 하여금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만일 불행히도 그러한 유혹에 빠져들었을 때는 우리 스스로 빠져나오기가 어려우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어 달라는 의미의 청원으로서 본문의 후반절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1) 주기도문에서 악(惡)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악(惡)은 ‘포네루’(πονηρου)라고 헬라어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6장 13절의 후반절은 누가의 주기도문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악’이란 어휘이다. 마지막 청원의 후반절에 나타나고 있는 ‘악’이 ‘추상명사’로서의 ‘악’(Evil)을 가리키느냐, 아니면 인격으로서의 ‘악한 자’(THE EVIL ONE)를 가리키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가 제기되는 시발점은 ‘포네루’ 앞에 붙은 관사 ‘투’(TOU)가 남성 관사로 보느냐 중성 관사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리기가 절대 쉽지는 않다. 만약 우리가 이 관사를 남성 관사로 보는 경우에는 ‘그 악한 자’, 곧 사단을 가리키게 되고, 중성 관사로 보는 경우에는 ‘세력’으로 볼 수 있다.
교회사적으로 살펴보면, 주기도문에 관한 주석을 첫 번째 쓴 터툴리안(Tertullian)과 여러 교부는 ‘그 악한 자’, 즉 사단으로 보았지만, 서방교회의 교부인 암브로스(St. Ambrose)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등은 중성 관사로 취급하여 ‘그 악’을 죄나 행동으로 간주했다. 존 칼빈의 경우는 둘 다 가능하다고 하면서 여기에 대한 결론을 유보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오늘날 신학자들의 글과 번역 성경에는 그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영역 성경에는 ‘EVIL’로 사용해 오다가 ‘THE EVIL ONE’으로 사용하고, 중국과 일어 번역에서도 ‘악한 자’로 사용하며, 대부분이 ‘악’으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나라 성경은 개역개정, 개역한글, 새번역, 공동번역에서 다 같이 ‘악’(惡)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처럼 어떠한 어휘가 번역 성경에 적합한가에 대한 단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어휘가 성경에서 다른 곳에 사용된 예를 보면, 요한복음 17장 15절, 요한일서 5장 18절 등에서 동일한 ‘호 포네로스’(ὁ πονηρος)가 모든 ‘악한 자’로 되어 있다. 또한 마태복음 13장 19절에서는 ‘악한 자’(ὁ ποηρος)는 분명히 사단을 가리키고 있다. 같은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4장 15절에서는 마귀로 표기되어 사단을 가리키고, 누가복음 8장 12절에서도 마귀로 표기한 점을 주시할 수 있다. 대다수의 현대 신약학자들은 사단으로 해석하며 모두 ‘THE EVIL ONE’으로 다루고 있다. 메츠거(Metzger)는 본문에서 사용된 헬라어 ‘아포’가 ‘악한 데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로부터 구하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상의 두 가지는 용어상으로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상호 일체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거나 행하게 하는 주체는 바로 똑같은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 악한 자’를 사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전 절에 나타나는 대칭어휘인 ‘시험’을 보아서나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이 어휘의 일반적인 용법을 보아서 ‘악한 자’, 즉 ‘사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떤 추상적인 악이나 죄를 가리키기보다는 모든 악과 죄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인격체인 사단을 가리키고 있다. 이 청원에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사단에게서 구하옵소서’라는 의미도 되고, ‘또 범죄 행위에서부터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의미도 된다. 칼빈(John Calvin)은 “‘악’이란 단어를 마귀로 이해하느냐 죄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바로 사단이 숨어서 우리 생명을 엿보는 원수이며(벧전 5:8), 뿐만 아니라 사단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죄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공격해 오는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굳게 설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의 의미들은 무엇인가?
이미 우리는 ‘악’이란 어휘는 마귀(EVIL), 즉 사단을 가리키지만 악한 자나 악한 것으로 적용할 수 있음을 다루었다. 이런 뜻에서 토마스 스콧(Thomas Scott)은 “우리는 모든 종류와 모든 정의와 모든 경우의 악으로부터 어두움의 세력의 악의 힘과 교활함으로부터, 이 악한 세상과 그 모든 유혹, 함정, 분노, 기만으로부터, 그것이 억제되고 정복되고, 종국에는 근절되도록 우리 마음의 악으로부터, 고통의 악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라고 했다. 이 청원에는 표현된 것보다 더 많은 ‘악’의 요소들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1) 우리가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죄의 악(THE EVIL OF SIN)으로부터 구출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죄는 우리가 막아 달라고 기도하는 치명적인 악이다. 죄는 얼마나 소름 끼치는 악인가?
① 죄는 그것의 기원(ORIGIN)에서부터 악하다. 죄는 그것의 족보를 지옥에서 이끌어 내온다. 이것은 마귀에게서 나오며(요 8:44), 마귀의 아버지라 부른다.
② 죄는 그것의 본성(NATURE)에서부터 악하다. 죄가 악명을 가지고 있음은 성경에서 언급한다. 죄는 그 본성에서 악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 거역하는 위반이기 때문이다. ‘죄는 불법이다’(요일 3:4)라고 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배은망덕의 행위이다. 죄는 사단을 만족시켜 주고, 사람들의 죄는 마귀에게 잔치 대접을 한다. 죄는 온갖 더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오염물과 같다(고후 7:1). 죄는 우리의 명예와 자녀의 영광을 저하시킨다(시 49:70). 죄는 사람들을 마귀의 종으로 만들어 노예화시킨다. 사람이 죄를 범할 때는 그는 마귀의 하인이며, 그래서 그의 악한 심부름을 하게 된다. 죄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악한 계획을 성취하는 데 많은 노력과 고통을 지출케 하는 고통스러운(painful thing) 것이다(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렘 9:5). 죄는 무엇이든지 더럽힐 뿐만 아니라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래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57:21)고 말씀한다.
③ 죄는 경건한 자(GODLY)의 판단과 견해에서 볼 때 악이다. 이런 점에서 모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를 선택하였다.
④ 비교(COMPARISON)에 의해 죄를 판단하면 가장 치명적인 악으로 나타난다. 치명적인 악을 죄의 삯인 사망(롬 6:23)과 죽음 후의 지옥의 심판과 비교해 보자. 죄를 그것의 참담한 결과에서 바라보라. 그것은 진저리나고 터무니없는 악으로 나타난다. 둘째 사망을 참고(계 21:8)해 보아도 알 수 있다.
(2)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의 악(the evil of your heart)으로부터, 또한 악한 마음(an evil heart)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악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할 때, 이 악이 우리를 죄 짓도록 유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최대의 유혹자이며,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말하기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하였다.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라고 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악을 허락하면서 사단(악)에게 비난을 퍼붓는 일은 정당한 일일 수 없다. 우리 마음의 악을 제거하는 삶을 위해서는 자기 욕심에 이끌리는 모든 유혹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3)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사단의 악으로부터, 즉 ‘악한 자’라고 불리는 사단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왜 사단은 악한 자인가? 그는 최초의 악의 발행자이고 하나님께 최초의 반역을 시도한 자이다(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저는 처음부터 살인 한 자요, 요 8:44). 사단의 성향은 오직 악으로만 향했다(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엡 6:12). 사단은 막강한 적대자이며, 그는 초능력으로 무장하고 그의 강한 힘을 악한 것에 사용한다. 사단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맞서기에는 너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단의 공격을 대적할 힘을 구하도록 간구하는 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
(4)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이 간구에서 세상의 악(the evil of the world)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이 악한 세대 世代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갈 1:4).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약 1:27) 은혜로운 삶은 악에서 구원받는 기도를 이루는 것이다. 세상에는 삼위일체의 올가미가 있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세상에서 부의 호화로움, 뛰어난 명예, 쾌락의 유혹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세상의 악으로 향하는 욕망을 억제시킬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5)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이 간구에서 현세적인 악(Temporal Evil)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현세적인 악(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구원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의 악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현세적인 악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보이시는 한에서, 그리고 그의 영광과 일치할 수 있는 한에서만 기도해야 한다.
(6)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이 간구에서 악한 모든 일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 악한 일에 너무 많이 부딪힌다. 육체의 열매를 맺는 세상의 소욕들(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황함과…, 갈 5:19∼21)을 두고 ‘이런 일(악한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라고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간구는 ‘이런 일’(악한 일)에 빠지지 않고 연약해서 악한 일에 빠졌을지라도 즉각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7)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이 간구에서 ‘악한 일을 하는 자’로부터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악한 일을 하는 자(者)란, 사단이 시키는 대로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일 경우도 악한 자(者)이다. 가령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는 악한 자였다. 생명의 존엄성과 귀중성을 파괴하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의 신성한 모든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은 문화인, 기업인, 경제인, 실업인, 과학인, 정치인 할 것 없이 악한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서 건지옵소서’(살후 3:2)라는 바울의 기원을 본문의 주기도문에서 간구해야 한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