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간구(The First Petition)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지금까지 주기도문의 서론(Introduction)과 함께 서문(Preface)인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에 이어서 기도의 대상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관하여 다루었다.
주기도문은 서문을 제외하고 기도 그 자체(the prayer itself)는 ①기도의 대상 ②간구들 ③결론으로 세 구분 되어 있다. 기도의 원형(Prototype)이며 기도 중의 기도라 할 수 있는 주기도문의 간구들은 이미 서론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일곱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첫 번째 간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태복음 6장 9절)라고 시작한다. 주기도문의 간구들(Petitions)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할 수 있는데 각 부분은 다시 세 요소로 나누어진다. 처음 세 가지 간구들은 하나님께 관계된 기원(Thou-Petitions)이고, 다음의 세 가지는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관심사와 관계되므로 우리에 대한 기원(We-Petitions)이라 할 수 있다.
라틴어 성경에는 ‘Sancitificetur nomen tuum’으로 ‘당신의 이름이 성결되게 하옵시며(Sanctified be thy name)’라고 기록되었고, 요한 칼빈 선생은 ‘기도하옵는 것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may thy name be sanctified)’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해, 즉 하나님의 실재와 이름과의 관계성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첫째 제한론적(制限論的) 이해
하나님은 그 이름에 제한되어 계신다는 사고방식이다. 즉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계신 곳에 반드시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이름이 실재다’라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름을 부름으로써 반드시 신의 임재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의 임재를 필연적으로 끌어 들이고자 할 때 이교도적 혹은 주술적(呪術的) 사고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유명론적(唯名論的) 이해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뿐이고 하나님의 실재와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 이름은 단순히 신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 형식으로써 신의 이름은 신 자신의 이름이 아니고 신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이성적 구조 형식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 방식을 인간 이해 속에 언어로 주신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은 단지 이름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제가 될 수 있고 올바른 것이 아니다. 분명히 성경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애굽기 20장 7절)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그 이름이 하나님의 실재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공존론적(共存論的) 이해
하나님의 그 이름과 실재는 사실상 무관하지만 이름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주적 공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이름이 그 실재는 아니다. 하나님은 이름이 있는 곳에 계실 수도 있고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다고 해도 사실상 하나님 자신의 실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하기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는 무엇이라 했는가?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출애굽기 3장 14절)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이론과 이해(제한론적, 유명론적, 공존론적)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인간의 제한된 어떤 이론과 이해는 인간 자신의 죄악의 바벨탑을 쌓는 교만이고 그 죄악은 인간 자신을 해롭게 할 뿐이다.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