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간구(The Forth Petition)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태복음 6장 11절

주기도문은 전반부의 하나님에 대한 청원(Thou-Petitions)에 이어서 대조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한 청원(We-Petitions)들이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다. 주기도문의 헬라어 구문에서 잘 드러나는 바와 같이 전반부 세 청원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구문 형식을 통해 그것이 모두 하나님에 대한 청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후반부 세 청원을 보면 헬라어 성경은 ‘우리를 위한 양식’ ‘우리의 죄’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등의 구문을 통해 모두 우리 자신(사람)에게 밀접하게 관련된 것임을 강조한다. 헬라어로 기록된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후반부 세 청원에서 「우리」라는 복수 주격 1인칭 대명사가 8회씩이나 기록된 것은 이 청원이 우리 자신(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전반부의 세 청원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이 조물주께 드리는 객관적인 청원이었으나, 후반부의 사람에 관한 청원은 ‘우리에게’, 또는 ‘우리를’의 목적격과 더불어 죄인이 전능하신 이에게 드리는 주관적인 청원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사람)에게 직접 관계되는 청원이 숫자상으로 넷으로 보이는데, 이 청원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을 암시하는 것을 세 청원으로부터 뚜렷하게 접근시킬 수 있다. ‘우리를 위한 양식’에 관한 청원으로부터 현세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공급받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의 죄’에 대한 청원으로부터 성자 예수님의 중보(仲保)를 통해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에 대한 청원으로부터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에 의해 유혹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마귀와 사단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후반부의 세 청원은 육신의 생활에 관하여 육신의 필요와 양식을 구하고, 신령한 영적 요구와 관련시켜 사죄를 구하고 시험에서의 구원함을 위하여 간구한다.

기도
▲우리는 우리 몸에 필요한 것과 관계되는 청원에서 모든 일상생활의 기도에도 현세적 관심사가 영적 관심사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제한다. ⓒunsplash
이제 후반부에서 첫 번째 시작되는 넷째 간구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 먹고 입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청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청원은 산상보훈 중에 가장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네 번째 청원은 ‘이미’(Already) 하나님께 드려진 영광과 ‘아직’(not yet)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우리의 청원 사이에 요청되는 청원이기 때문에 ‘중간기도’(interim prayer)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관한 세 청원이 끝나고, 이제부터 우리 자신(사람)을 위한 청원의 시작인 네 번째 청원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의 정의를 살펴보면,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가?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는 곧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함인데 하나님의 은사로서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좋은 것 중에 만족한 부분을 받게 하시며 아울러 그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심을 구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몸에 필요한 것과 관계되는 청원에서 모든 일상생활의 기도에도 현세적 관심사가 영적 관심사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제하면서, 네 번째 청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우리를 위한 양식’, 즉 육적으로 몸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는 이 청원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과 관련된 그다음의 청원들보다 먼저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메튜 헨리는 우리에게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는 이 청원이 우리의 청원(We-Petitions)의 서두에 나온 이유에 대하여 “우리의 자연적인 존재(생명)는 이 세상에서 영적인 행복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와 뜻을 구한 후에는 이 세상의 현실적인 생명에 필요한 양식과 즐거움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의 남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그에게 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장차 올 때를 위한 양식」, 또는 이 세상에서 우리 조건(잠 30:8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에 맞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양식」, 우리의 지위와 신분에 따라 「우리와 우리의 가족에게 편리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현세 삶에 필요한 물질을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영적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성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현세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공급해 주시므로, 우리는 그의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한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양식’의 청원이 먼저 나온 것은 성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양식을 공급받기 때문에, 양식을 주시는 성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데 사용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우리의 믿음 성장을 촉진할 것이며, 날마다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깨닫고, 더 고귀한 축복을 구하도록 격려와 자극을 받게 된다. 더욱이 우리는 이 청원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께서 솔직하시고 현실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을 알게 되며, 진실하고 모범적인 그분의 기도를 배우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할지라도 너무 현실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입고, 먹고, 마실 것, 필요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본다. 여기서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먼저 구하라고 하신 말씀은 「염려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경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는 것, 경제적인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오해 속에서 자아의 현세적인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보다는, 현실과 먼 비현실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기도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을 위한 기도의 첫 번째 청원의 자리에 먹고 마시는 ‘일용할 양식’에 관한 간구를 두셨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먹고 마시는 문제, 경제적인 문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체험해 보셨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자신도 모두 다 배부르게 먹고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절박하고 심각한 일인지 잘 모른다. 즉, 먹고 마시는 것이 바로 생명 그 자체인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성을 아시고 우리의 약함을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솔직하게 먹는 것부터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 살아 있으니까 영혼이 중요시되고, 육적인 생명이 있기에 영적인 생명도 심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의 양식’을 우리의 청원 첫머리에 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2. 네 번째 청원의 ‘오늘날’(날마다)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마태의 주기도에는 ‘오늘날’을 ‘세메론’(σημερον: 오늘, today)이란 부사를 사용했고, 누가의 주기도(눅 11:3)에는 ‘카세메란’(καθημεραν: 날마다, each day)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날마다’(each day 또는 every day)는 사실상 ‘오늘’(today)의 반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날마다’와 ‘오늘날’이란 오늘 하루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이란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yesterday)는 이미 지난 오늘이고, ‘내일’(tomorrow)은 다가올 오늘이다. 성경은 오늘의 중요함에 대한 교훈들이 있다. 구원의 시간은 오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하셨고,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 19:9)고 하시면서 오늘이 구원에 이르는 귀한 시간임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늘에 완성된 자세로 살아서 오늘 주님이 부르시더라도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 12:20)라고 하셨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가 살게 될 마지막 날이 될는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이상 더 오늘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으며, 그것을 하루하루 먹도록 하셨다(출 16:13~20). 매일의 만나는 당일(오늘) 다 소비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누군가가 다음 날 아침에 조반은 어디서 먹을까 염려하여 물었다면 ‘우리의 염려는 오늘 하루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만나를 「오늘」 내려 주셨다. 만일 우리가 오늘 먹을 빵이 있다면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하지 말자’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내일의 염려는 불신이다. 그리스도인의 만나는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 오늘에 허락해 주신다. 의식주와 삶의 여러 문제로 염려하는 자들은 주기도문의 네 번째 간구와 함께 접목시켜 주시는 말씀인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네 번째 청원에서 ‘우리에게’(us)란 의미는 무엇인가?

주기도문 서론에서 밝힌 바 있지만 주기도문에서는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에게 지은 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등 복수대명사, 즉 ‘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지 단수 인칭대명사는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것에 관한 간구와 중보기도로 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이기적인 ‘나는’ ‘나를’ ‘나의’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지만, 주기도의 기도는 비이기적인 기도를 드리게 한다. 주기도문에는 후반부의 청원에만 우리라는 단어가 8회 기록되어 있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복수형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다윗은 기도할 때 공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시 125:4)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라고 비록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로 시편을 시작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그 시편을 끝맺는다. 사도행전 여러 곳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기도 역시 공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행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복수형태)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예수님 역시 공적 정신으로 모범적인 기도를 드리신 분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결핍과 불행에 대해서 그의 하나님이 그의 자비하심을 그들에게 베푸시도록 기도한다. 특히 성도들을 위한 공적 기도에 힘쓸 것에 대하여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사셨고 「우리」를 위해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저들은 우리도 포함된다)라고 기도하셨다. 네 번째 청원에 ‘우리를’이란 의미는, 이기적인 거미와 같은 사람의 기도를 비이기적인 기도의 사람으로 바꾸게 해 주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수정 같은 시냇물로 생기 나게 해주고 황금 같은 태양 빛의 햇살로 밝게 비춰 준다. 비이기적인 기도는 그의 기도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둘러싼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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