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청원은 시험으로부터 보호뿐 아니라
시험 안에서의 보존과 승리에 관한 청원하나님이 주의 자녀들을 시험하시는 이유는
이 땅의 천국학교에서 연단 받는 학생이기 때문
1.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Lead us not into Temptation)
여섯째 청원은 우리의 청원(We-Petitions)의 마지막 청원이다. 마태복음에는 전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와 후렴으로 나오는 후절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간구로 연결되지만, 누가복음에는 전절만 기록되어 있다. 이 마지막 청원의 전반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청원의 핵심적인 단어가 되고 있는 ‘시험’(πειρασμος)은 무슨 뜻인가. 또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주기도문에서 이 ‘시험’이란 말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의미는 무엇인가?
주기도의 마지막 간구에 나오는 시험은 근본적으로 사단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유혹)을 가리키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간구 역시 마귀로부터 오게 되는 시험(유혹)에서의 보호(preservation)와 승리를 간구하는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시험이라는 단어를 마귀의 사역과 관련해서 자신을 대적하고 시험하는 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의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고 말씀하셨다.
또한 여섯째 청원의 후렴으로 나타나고 있는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에서 ‘악’한 것에 관련시킬 때 그 시험은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적극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주기도문의 연구가인 예레미아스(Jeremias)는 그의 저서 ‘The Prayer’s of Jesus’ 105쪽에서 “주기도문의 마지막 청원은 시험으로부터의 보호를 뜻하기보다는 오히려 시험 안에서의 보호(The Lord's Prayer is indeed not to preservation from Temptation but to preservation in Temptation)를 뜻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정리하면 주기도문의 여섯째 청원은 시험으로부터의 보호뿐만 아니라, 시험 안에서의 보존과 승리에 관한 청원으로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시험’이라는 어휘는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에서 시험(Test)이라는 말과 시험(Temptation), 즉 유혹과는 분명하게 서로 구별된다. 원문에는 어근이 같지만 의미는 다르게 적용된다. 예레미아스(Jeremias)는 신약 성경에 ‘시험하다’(페이라죠, πειραξω)라는 동사는 38번 기록되고, ‘시험’(페이라스모스, πειρασμος)이라는 명사는 21회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 ‘시험’이라는 어휘는 성경에 두 가지의 뜻, 즉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적용된다. 어느 특정 어귀에서는 둘 중 어느 의미가 적용되는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분명한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
첫째, ‘시험’은 ‘어떤 사물의 성질을 조사’ 또는 ‘…의 강도를 검사해 본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이나 신앙 등의 진정한 충실성, 신실성 등을 살펴보는 것, 즉 ‘Test, Examine, Prove’ 등을 뜻한다. 시험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경우든지, 또는 사단에게 허용되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왜 하나님(예수님)께서는 때때로 그 자녀들을 시험하시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창 22:1)하셨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과 충실성과 신실성을 시험(Test,Examine, Prove)하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교리적으로 적용시키면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히 11:17)라고 기록한다.
(2) 하나님께서 어느 한 사람을 합법적이고도 선한 방법으로 그가 현재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쓰임 받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제자들을 시험(Test)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 6 : 6)고 기록한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Test)하시는 것은 우리가 항상 깨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 6:18).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으셨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시험을 피하게 해주신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때마다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로 가게 하신다.
혹시 ‘내가 지금 시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체 말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요즈음 시험 앞에 망설이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시험을 안겨 줄 수 있는 어떤 불안한 요소 앞에서도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도우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자를 돕지 않으신다.
주님이 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가? 기도 외에는 시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시험에 빠지는 일이 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 형편을 너무 잘 아시고 시험에 빠지기 전에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고 기도하게 하시고, 시험에 빠진 다음에는 주저 말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4)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Test)하시는 것은 영적 무장의 중요성과 가치를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가 소홀하게, 부주의하게 영적인 무장 없이 영적 전쟁터에 나간다면 큰 피해와 손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종말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고 시험을 이기는 영적 무장의 방법을 영적 갑옷으로 비유하여 구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알려 주었다.
(5)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Test)하시고 연단하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게으름을 고쳐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부지런하심은 우리를 새벽부터 깨우시는 열심을 가지셨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엡 5:14)고 하신다. 우리가 신앙의 게으름과 영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때 악한 자들에게 악한 일들을 허용하여 연단시키신다.
(6)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하심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인간 편에서 그 의무를 시행할 때 하나님을 시험(Test)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다. 말라기서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試驗)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는 말씀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7)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려 할 때 그의 진노하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인간)의 이러한 행동과 결과에 대하여 성경은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시 78:41)라고 기록한다.
(8)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인간이 범죄하도록 유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그를 범죄하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Test)하신 것이다. 그는 그 시험에 승리하여 믿음의 조상이라는 대가를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시험은 우리를 범죄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유도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보다 주님의 쓰임에 합당한, 귀히 쓰고자 하는 사람으로 훈련시키고 만들어 가신다(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 잠 17:3).
(9)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입학시키시기 전에 땅에서 천국학교에 등록하여 연단 받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이 세상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공부시킨 다음에 얼마나 그 실력이 향상되었는가를 시험을 치러 확인한다. 그리고 잘했을 때 상급이 있다. 천국학교 훈련생들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치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하나님께서 000을 시험하시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축복(상급)을 주신 것처럼 축복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가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한 것이 없다’(고전 10:13)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시험하신다. 가령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내지 않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의 수준에 맞는 시험을 주셔서 그 대가를 상급으로 보상하신다. 우리의 천국의 주인이시고, 교장이신 하나님의 시험을 통해 좋은 점수를 받게 될 때 믿음의 연단으로 정금보다 귀한 믿음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신앙의 참 보람과 의미를 알게 하셔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를 간구하라고 가르치신 이유를 알게 된다.
(10)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그의 주권 아래 절대적으로 지배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이 간구에서는 모든 시험을 좌우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해야 한다.
(1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 자체가 선하신데, 우리의 부패성 때문에 우리가 죄(악)에게 기회를 줄 때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시험을 허용하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고 할 수 없는 죄인된 인간들이다.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할 때, 우리가 자기만족에 빠졌을 때 우리는 히스기야가 경험했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대하 32:27~31).
(12)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로 시험받도록 묵인하시는 것은 그들이 교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교만은 천사들에게 들어가 타락하게 했고, 베드로 안에 있었을 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는 고백을 하게 했다. 이것은 마치 그가 모든 사람보다 은혜를 더 많이 받았던 것처럼 자신 있게 한 말이고 교만한 행동이었다. 사도 바울은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고후 12:7)라고 하였다. 바울이 계시로 인하여 높아졌을 때 그는 교만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그때 사단의 사자가 와서 그를 괴롭혔으며, 그것은 그를 겸손케 하는 어떤 쓰라린 시험이었다. 하나님은 교만을 대항하시고 그의 자녀들을 겸손한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들이 때때로 시험에 빠지는 것을 묵인하신다. 그리스도인 된 나를 교만하게 만드는 의무보다는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시험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시험받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동일한 어려움과 문제에 처해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적합한 언어와 행동을 나누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바울은 시험의 검술학교에서 잘 훈련된 사도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신자)에게 사단의 간계와 전략을 전해 줄 수 있었다(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후 2:11).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