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 가지 요소는 통회, 고백, 회심
성령을 훼방, 모독하고 욕되게 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해

4) 죄의 용서가 포함하고 있는 성격은 무엇인가?

(1) 죄의 용서는 사망을 면하게 해준다. 죄의 대가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죽음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고 기록한다. 죄의 대가는 분량의 대소와 관계없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며, 따라서 죄 용서함이 필요하다. 죄의 용서는 영생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2) 죄의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고, 은혜로 받는다. 하나님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가 없이 용서할 때처럼 용서하신다. 우리의 기도도, 눈물도, 또는 선행도 용서를 매입할 수 없다. 마술사 시몬이 성령의 은사를 돈으로 사고자 했을 때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라고 베드로가 말했다.

(3) 죄의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는다.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당연히 받게 하는 외부적인 원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라고 하였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주님의 피 외에는 아무것도 용서를 산출할 수 없다.

(4) 죄는 회개하기 전에는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눅 24:47)라고 하였다. 회개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모두 용서받기 이전에 일어나야 할 일들이다. 통회(Contrition), 고백(Confession), 그리고 회심(Conversion)이다.

기도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용서를 받은 자는 자신에게 사소한 빚진 자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그의 삶을 통해 반사하여야 한다. ⓒunsplash
회개의 첫 번째 요소는 통회(Cintrition)이다. 통회 또는 마음이 상함에 대하여 성경에는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겔 7:16)라고 하였다. 이 통회 또는 마음의 찢어짐은 때때로 가슴을 치는 것으로 표현되고(눅 18:13), 때로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는 것(시 6:6)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모든 겸비가 다 통회는 아니다. 아합이 스스로 겸비하였을 때 그의 옷은 찢었으나, 그의 마음은 찢지 않았다.

회개의 두 번째 요소는 고백(Confession)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 51:4)라고 하였다. 고백은 침해를 당한 당사자인 하나님에게만 행해져야 한다. 고백은 억지 없이 자유로워야 하고, 거리낌 없이 솔직해야 하며, 위선 없는 진심이어야 한다. 이것은 죄 용서의 길을 열어준다.

회개의 세 번째 요소는 회심(Conversion)이다. 이것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겔 18:31)라고 하였다. 탕자는 방탕 생활의 길에서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 그의 아버지에게로 갔다(눅 15:18). 이 회개는 용서로 통하는 즉각적인 길이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고 하였다. 회개는 조건이지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개한다고 용서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개 없이 용서하시지도 않는다.

(5) 죄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죄책과 형벌을 면제하신다. 죄책이 면제될 때 형벌도 역시 면제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용서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부성적인 노여움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의 법정적인 진노는 제거된 것이다. 비록 매를 때리실지는 몰라도, 그래도 저주(Punishment)는 제거하신다. 징벌이 성도들에게 닥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멸망은 오지 않는다.

(6) 죄의 용서 후에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내가 저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고 하셨다.

(7) 죄의 용서는 죄의 분량과 대, 소에 관여치 않는다.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 같고, 주홍 같이 붉으며, 먹과 같이 검고 흉악한 죄까지라도 말소시키신다(사 44:22).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임금은 그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그의 채무자를 용서해 주었다(마 18:27).

(8) 죄의 용서 가운데, 용서받지 못하는 죄들(Unpardonable Sins)이 있다. 이러한 죄들을 성경은 첫째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1), 둘째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눅 12:10), 셋째로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 히 10:29)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고, 욕되게 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 안에 이것을 용서할 만큼 충분한 자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죄를 범한 자가 용서를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9) 죄 용서받음에 있어서 미래의 죄는 그것들을 회개할 때까지는 현실적으로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실 때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다’(렘 33:8),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시 103:3)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모든 죄를 사하신다고 말할 때 이것은 과거의 죄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장차 지을 죄까지도 예수님의 공로 가운데 용서의 효력이 포함되어 있지만, 미래의 죄는 그것들을 자신이 통회하며 회개할 때까지는 현실적으로 용서받은 것이 아니다. 죄가 범해지기도 전에 용서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우리의 과거의 죄들과 미래의 죄들이 한꺼번에 용서받는다면 죄의 용서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무엇인가? 과거의 죄는 물론 미래의 죄도 용서받았다는 견해는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빼앗아 가며 무효로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일의 죄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변자이시다(…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10) 죄의 용서가 있기 전에 우리 편에서 하나님을 믿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앙은 필연적으로 죄 용서를 선행한다.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고 하셨고,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15)고 하였다.

(11) 죄의 용서는 성령에 의하여 위임된 용서이다. 성령님은 죄 용서의 사실을 한 영혼에게 알게 하실 때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신다. 그 하나가 내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외적 방법이다. 이것은 인간 구조의 이중적(二重的) 본성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내적 방법이란, 곧 구원받은 심령 속에 성령님이 내주(內住, Indwelling)하셔서 감동과 영적 느낌으로 알게 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고개를 들고 일어설 때가 많다. 성령님은 외적으로 교회의 거룩한 권위가 위임된 형제자매들을 통하여 사죄의 사실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용서의 사실을 알게 하신다.

(12) 죄의 용서는 교제(fellowship)에 의한 용서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자리에 참예해야 한다. 그 교제는 생명의 빛 안에서 갖는 참된 교제이다(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요일 1:7). 영적 신앙의 중요한 표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교제 없는 곳에 승리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현재적 교제가 있어야 하듯이 형제와 형제 사이에도 서로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 할 것이니…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만일 내가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고후 2:7~10)라고 교훈하고 있다.

4.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우리가 우리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여기서 전자가 앞서느냐, 후자가 앞서느냐, 전자가 후자에 의존하느냐, 후자가 전자에 의존하느냐 하는 질문이 나온다. 다시 표현하면 수직 관계와 수평 관계 상호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다섯째 청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청원은 근본적으로 이미 용서 받은 청원이다. 말하자면 이 청원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 받은 자가 다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할 때 어떤 자세로 서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기도는 어디까지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의 권리나 조건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기도문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이 어떤 자세로 서야 할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이 청원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다섯째 청원은 하나님의 용서(수직적 차원의 용서)와 인간 상호 간의 용서(수평적 차원의 용서)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청원의 후반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죄 용서 청원과 우리 인간 상호 간의 용서가 서로 병행을 이루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 후반부가 전반부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자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을 마태복음 18장 21~35절에 나타나 있는 ‘악한 종의 비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래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하나님에게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었던 채무자들인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탕감을 받은 자들임을 강조한다.

둘째,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용서를 받은 자는 자신에게 사소한 빚진 자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그의 삶을 통해 반사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의 심판이 그들에게 뒤따른다는 사실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교회 성도들은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을 통하여 자신의 완전한 의와 구원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는 그날까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죄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매일 매일의 생활이 회개와 용서를 비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용서를 자신의 삶을 통해 반사함으로써 그의 주위가 용서받는 세계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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