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인 필요를 위해 일용할 양식 구하는 것처럼
영적인 필요, 곧 죄 사함을 위해 겸손히 간구해야

얼마나 많은 죄의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는지 몰라
우리는 지불 불능의 채무자, 예수님이 대신 보상

다섯째 간구(The Fifth Petition)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기도문의 다섯째 간구는 죄 용서(죄의 사유함)에 대하여 가르친다. 다섯 번째 청원의 헬라어 성경은 ‘과거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반드시 용서해 주지는 못했으나, 이후로는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그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실질적이고 절실한 필요는 ‘일용할 양식’(Daily)을 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적인 필요는 죄를 사함받기 위한 간구이며, 이것은 ‘일용할 양식’과 함께 인간 편에서 참으로 현실적인 것이다.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간구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기초이고, 영적 거듭남의 원천이며 구원 이후 신앙의 성화에 이르는 거대한 신앙의 그루터기이다. 유대교 랍비들의 교훈 가운데 “네 이웃의 과오를 용서하라”는 말이 있다. 일용할 양식을 매일 구하듯 죄 용서함의 기도는 매일(일용할 용서) 구해야 한다.

기도
▲우리는 우리의 빚(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진 빚을 고백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빚을 청산(용서)해 주신다. ⓒunsplash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미래에 대한 청원이지만,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과거에 대한 청원이다. 오늘 필요한 ‘일용할 용서’에 대한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에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 것인지를 웨스트민스터 요리 문답의 정의에서 살펴보자.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곧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함이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값없이 사하여 주옵소서 함인데 우리가 그의 은혜를 힘입어 진심으로 다른 이의 죄를 사하였으니 더욱 용감히 간구하는 것이다.”

떼 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우리의 육신과 영혼의 올바른 유지를 위해, 육신을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이 우리의 영혼을 위한 용서의 필요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겠다.

1.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은 처음 네 가지 청원과 다르게 헬라어 성경에는 ‘그리고’, 즉 ‘카이’(Kai, and)라는 연결어구와 함께 시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주기도문에서는 처음으로 이곳에 ‘그리고’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다음에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말씀이 따른다. 처음 세 기원도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 뚜렷이 구별된다. 하지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청원은 두 청원 사이에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1) 인간에게 있어서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은 가장 실질적이고 적절한 것이지만, 죄 사함 받음은 인간의 영적 필요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두 간구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똑같이 참으로 현실적인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필요와 관심사는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하며 사는 의식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31)고 육적 필요에 대한 염려를 금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4)고 하신다. 육적 필요에 앞서는 영적 필요인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양식이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서로 유기적 관계를 포함한다. 의식주를 위해 사는 것, 특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보다 더 근본적일 수 있다. 단지 영적인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식주의 문제가 실제로 죄의 문제와 직접 관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은 죄 사함 받음이 없이는 오늘 육신의 가장 필요하고 좋은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 기준에서 비교될 수 없고, 가진 것 자체가 유익이 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메튜 헨리의 “만일 우리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일용할 양식은 도살용 양을 살찌게 하듯이 우리를 살찌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3) 인간의 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 필요한 것, 일용할 양식을 위해 오는 축복의 통로를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good thing)을 막았느니라’(렘 5:22) 사죄의 축복과 함께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한없는 축복을 주시도록 기도할 때마다 ‘그리고(and)’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한다.

4) 인간의 일용할 양식은 식욕을 만족시키지만, 죄의 사함은 양심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5) 인간의 일용할 양식은 우리로 하여금 안락하게 살도록 해 주겠지만, 죄의 사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안락하게 죽도록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6) 넷째 간구와 다섯째 간구는 현재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다 같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2.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에서 ‘마태와 누가 복음서에 기록된 죄’에 대하여

1) 신약 성경 헬라어에서 ‘죄’와 관련된 용어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첫째, ‘오페이레마’(opheilema, οφείλημα)이다. 이 단어는 ‘빚’(debt)이라는 뜻으로,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죄’에서 유래 되었다(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둘째, ‘하마르티아’(hamartia, αμαρτία)이다. 이 단어는 ‘빗나가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맞추지 못하고 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죄’에서 유래되었다(요 8:3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셋째, ‘파라프로마’(paraptoma, παραπτωμα)이다. 이 단어는 ‘미끄러져 넘어지다’라는 뜻으로써 ‘부주의로 짓는 죄’에서 유래 되었다(고후 5:19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넷째, ‘아노미아’(anomia, ανομία)이다. 이 단어는 ‘불법’(不法)이란 뜻으로써 ‘알고 짓는 죄’에서 유래가 되었다(롬 6:19 …너희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다섯째, ‘파라바시스’(parabasis, παραβασις)이다. 이 단어는 ‘건너가다’란 뜻으로 공의와 불의 등에서 자꾸만 좋지 않은 쪽으로 건너가려는 죄에서 유래 되었다(딤전 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라).

2) 주기도문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죄에 대한 헬라어 성경은 어떻게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가?

마태가 쓴 주기도문은 ‘오페일레마’(οφειλημα), 누가가 쓴 주기도문은 ‘하마르티아’(ἁμαρτια)를 사용하고 있다. 마태가 쓴 주기도는 유대인을 상대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무의 비유로 아람어 ‘호오바’의 개념 ‘빚’에서 도입하여 이 어휘를 사용했다고 본다. 누가가 쓴 주기도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에게 더 익숙한 ‘하마르티아’, 즉 어원적으로 ‘과녁에 빗나가다’를 사용했다. 이처럼 두 어휘가 어원적으로는 다르나 뜻으로는 근본적으로 다름이 없다.

3) 왜 ‘죄’라는 어휘가 ‘빚’이란 뜻과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주기도문과 상관관계를 가진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 있는 빚진 자에 관한 경우를 살펴보자. 이 경우에서 이미 용서를 받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탕감해 주지 않은 것이므로 주기도에서의 원리와 동일한 점이 보인다. 이처럼 죄와 빚의 성격은 유사성이 짙다. 곧 죄는 빚이며, 그리고 모든 죄인은 채무자이다. 죄는 1만 달란트의 빚에 비유된다(마 18:24).

죄가 빚으로써 갖는 성격은 무엇인가?

(1) 죄의 빚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빚은 사람들이 부인할 수도 있다.

(2) 죄의 빚은 회피할 수 없다. 다른 빚들은 미룰 수 있다.

(3) 죄의 빚이 용서받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한 죽음에 묶여 있게 된다. 다른 빚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채무자는 감옥에 간다. 원금도 이자도 지불하지 못하고 파산자가 될 때 무기징역 판결도 받을 수 있다.

(4) 죄의 빚은 얼마나 많이 하나님에게 빚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주기도문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지만 헬라어 성경은 복수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빚을, 빚 위에 빚을 더 지고 살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빚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5) 죄와 빚은 하나님을 미워하게 한다. 악질적인 채무자는 채권자를 미워하기 쉽다. 채무자는 그의 채권자가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며 그를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6) 죄의 빚을 가진 자는 겸손하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가득하며, 숨어 살거나 체포될 경우를 두려워한다. 영적인 부채를 가진 자들은 면제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자신을 겸손하게 한다.

4) 주기도문의 빚(죄)에 대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채권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우리는 채무자로 나타난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빚 지불 능력을 대신하시고 보증인이 되신다. 누가복음서의 비유에서는 하나님을 채권자로(눅 7:41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기록한다.

이 비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가 되신 분으로, 율법을 주신 분이시면서도 재판장이 되심을 보여 준다. 재판장으로서 주님은 우리 각자를 불러 각자의 청지기 직에 대한 회계의 날이 있을 것을 알려 주셨고(눅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자기의 빚(죄)을 회계하고 슬퍼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빚(죄)을 청산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이 받을 형벌을 예고하고 있다.

이 빚진 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지불 불능의 채무자이고, 보상능력이 없어 지급을 불이행할 수밖에 없는 파산자이지만, 우리의 빚(죄)을 예수 그리스도는 갚으신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은 빚(죄)에 눌린 영혼들을 보상시키며 구원의 효력을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빚(죄)에 대한 보증인으로 그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의 심판을 충족시켜 하나님께 완전한 보상을 해 주신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빚(죄)의 보증인에 대하여 다윗은 예언하여 말하기를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시 69:4)라고 그분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에서 이 보증인에 대해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이라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5) 우리의 빚(죄)은 어떻게 청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빚(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진 빚(죄)을 고백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빚을 청산(용서)해 주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19)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빚(죄)을 고백하면 하나님의 빚 장부 기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지워 버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고백할 뿐만 아니라, 보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의 영적 빚이 지불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이 특권을 우리는 대법원의 법정 최고 판결자이신 하나님의 복음에 의해 받게 된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