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도의 대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복음 6장 9절)라는 기도의 대상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주기도문의 모든 간구의 가장 적절한 전제가 되며 이 기도의 첫 부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가진 자들의 언약의 지위(Covenant office)를 유지시켜 준다(로마서 8장 15절 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 하나님은 무한(無限)하시며 유한(有限)한 인간은 그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함을 배우게 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무한을 공간 관계에서 말할 때 무소부재(無所不在, God is Everywhere-Omnipresent)하시다고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공간에 한정(限定)지워져서 존재하시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우주에 편만하여 계시며, 영이시기 때문에 공간을 초월하여 계신다. 하나님이 무한하시다 할 때 그것은 그 존재와 속성들이 무한하며 완전한 것을 뜻한다.
또한 무한하다(Infinite)는 말은 ‘한계나 제약이 없다’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이란 말이 하늘에만 제한되어 계신다는 그의 편재성을 제한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속에서 흔히 ‘하늘의 하나님’(느헤미야 2장 20절)을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열왕기상 8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殿)이 오리이까’라고 솔로몬은 기록하여 하나님의 편재성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별한 의미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늘에’ 계신다. 왜냐하면 그곳이야말로 주님의 위엄과 영광이 가장 뛰어나게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이사야 66장 1절)라는 말씀을 깨달을 때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깊은 경외심과 경외감에 가득 차게 된다.
하나님의 본체와 그 영광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기 때문에 유한한 인생은 하나님의 존재와 무한성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이라는 머리글로 시작되는 주기도문을 외울 때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영원(eternal)하시기 때문에 하늘의 영원한 삶에 대한 지식을 땅에서 배운다. 시편 90편 2절에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였으며, 시편 102편 12절에는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원은 영원한 현재에 있다.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영원은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은 시간을 채우시면서 시간을 초월하여 계신다. 우리의 유한한 지성으로는 하나님의 영원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기 어렵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을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계시록 1장 8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을 시작시키셨고, 하나님께서 시간을 끝맺게 하시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현재라는 영원에서 계신다는 사실이다. 현재라는 영원에서 계시는 그분의 실존을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이사야 57장 15절 ‘지존 무상하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영원한 삶의 지식을 배우는 자들에게 ‘하늘에 계신’이라는 주기도문의 머리말이 참으로 합당한 기도가 되는 것을 재인식시켜준다.
(3) 하나님은 전능(全能)하심을 배우게 한다. 그의 주권적 권능은 창조 사역에서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능력은 구원 사역에서 보여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전능(God is all Powerful-Omnipotent)하시다. 하나님의 전능은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과 모순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그 결정에 따라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그의 권능은 말씀(Word of God)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연과 역사를 지배하시고, 모든 인간의 심판자이시며, 모든 능력을 소유하심에서 나타난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셨고, 창세기 18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였으니’라고 하셨다. 예레미야 32장 27절에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고, 시편 115편 3절에는 ‘이는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그는 우주를 다스리시고 땅에 사는 그의 자녀들의 유익을 위하여 어려움과 위험과 곤경에 처했을 때 모든 사건을 살펴 주신다. 하나님의 전능은 창조의 역사에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인류 구속에 구원 역사에서도 나타났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은 자를 살리시며 마귀의 종 되었던 자를 자유롭게 하는 복음의 진리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로마서 1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다.
성도들은 ‘하늘에 계신’이라고 주기도문을 드릴 때 인류 구원 역사를 이루시고 마귀의 세력을 능히 멸하러 오신 주님의 목적(요한일서 3장 8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을 이루는 삶이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능력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다.
(4)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므로 인간은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우리의 은밀한 생각과 삶의 모든 짐을 알고 계심을 배운다. 시편 139편 1~6절에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전지(God know Everything-Omniscient)하시므로 모든 지식을 갖고 계시고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상과 사건과 감정과 행동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지식은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知識)의 특수한 면은 하나님의 지혜(智慧)로 나타난다. 성경은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다고 지혜의 처소를 사람의 마음으로 의인화시켜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지혜의 원형(原型, Original Pattern)이시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무결하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는 그가 설정하신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을 채택하는 데에 나타난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지혜에는 시행착오나 실패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는 구원의 역사(役事) 가운데 나타났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구원의 도리에 감격하여 로마서 11장 33절에 이렇게 기록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했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주기도문을 외울 때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과 결합되는 삶을 통하여 영혼이 구원에 이르게 됨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육신의 삶은 모든 사물이 그의 눈에게는 벌거벗었고 정체가 폭로됨을 인정하며(히브리서 4장 13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5) 하나님은 장소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존재하시며, 그곳은 신자들의 종국의 목적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삶의 위로를 주고 있음을 배운다. 열왕기상 8장 27절에는 ‘하늘과 하늘들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있다. 유대인들은 하늘을 둘이나 셋으로 나누어 표현했다. 첫째는 보이는 공중, 둘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라 구분했다. 또는 첫째 하늘인 지상에는 사람이 있고, 둘째 하늘인 공중에는 마귀가 있고, 셋째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두 가지 견해를 가졌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Third Heaven)에 이끌려 간지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했다.
하늘의 왕국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에는 하늘의 왕국이 33회로 가장 많고, 하나님의 왕국이 4회 나타난다. 다른 복음서의 경우에는 모두 ‘하나님의 왕국’이고 ‘하늘의 왕국’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서에 나타나는 특징적 용어이다. 여기에서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이란 두 가지 표현은 한 명칭으로 천국을 뜻하며, 천국에 들어갈 조건은 회개를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복음의 첫 일성인 마태복음 4장 17절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하셨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영원토록 사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있는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하늘에 계신’이라고 주기도문을 외울 때 그 나라에 대한 확신이 더욱 분명해진다.
① 천국에서는 고난과 절망과 좌절의 눈물이 없다.
② 천국에서는 죽음과 이별이 없다.
③ 천국에서는 후회와 양심의 가책에서 생기는 번민은 완전히 해소된다.
④ 천국에서는 죄를 영원히 볼 수 없다.
⑤ 천국에서는 만족과 평안, 기쁨, 풍성한 삶만이 있다.
⑥ 천국에서는 완전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곳이다.
⑦ 천국에서는 주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고 찬양하게 되는 곳이다.
주기도문의 머리말로 시작되는 ‘하늘에 계신’이란 짧은 기도는 천국 신앙을 굳게 붙들게 한다. 신자의 산 소망을 붙들고 오늘도 주기도문을 외우실 때 첫 마디 ‘하늘에 계신’이라고 외울 수 있는 경건과 믿음을 가지기 원한다.
필자의 논문에 주기도문을 외울 때 어떤 태도로 외우는가에 대한 질문 가운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자녀처럼 한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 중 67.2%였다. 10명 중 7명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천국 신앙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이라는 주기도문의 머리말을 외울 때 아직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자녀처럼’ 외우시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예수, 천당 신앙으로 진정한 산 소망의 자리로 나올 수 있어야 하겠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