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양화진 외인묘지 풍토병과 과로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젊음을 바쳐 복음의 열정을 뿌렸던 구한말의 선교사들이 묻혀있다. 이 책은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초대 선교사 헤론을 시작으로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델, 헐버트, 벙커, 베어드, 무어, 홀 등의 삶과 희생을 소개하며,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를 정리한다.
원래 신문에 연재되었던 ‘양화진 외인열전’을 1986년 『이 땅에 묻히리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양화진 묘역과 절두산을 잇는 성지 공원이 새롭게 조성되는 시기에 『양화진 선교사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펴내게 된 것이다.
저자 : 전택부
호는 오리吾里. 1915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출생. 1940년 도쿄 일본신학교 예과를 졸업했으며 1941년 같은 신학교 본과를 중퇴했다. 과 의 주간을 지냈으며, 소천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서울 YMCA 총무 및 명예총무, 한글전용국민실천회 회장, 한글인터넷추진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이후 , ,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 연구에 정진하였고,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을 한국 토박이 신앙인의 신앙역사로 보려는 ‘토박이 사관’을 새롭게 시도하였다. 한글 운동의 공로로 1978년 문교부장관 상, 1980년 외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부부의 십계명』『가정의 뜻 금혼잔치 베품의 뜻』(이상 홍성사), 『월남 이상재의 생애와 사상』(연세대학교출판부), 『두산 김우현 목사 그 신앙과 사상』(기독교문사), 『토박이 신앙산맥1, 2, 3』(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기독교 청년회 운동사』『씨알머리 없는 세상』『자화상을 그리듯이 1, 2, 3』(이상 범우사) 등이 있다.
목차
양화진 역사
병자들의 친구 헤론
한국 선교의 아버지 언더우드
근대 교육의 개척자 아펜젤러
한국의 친구 헐버트
항일 언론 투사 베델
백장 해방운동의 지도자 무어
민족운동의 동역자 벙커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찌
성서번역의 주역 레이놀즈
평양 선교의 개척자 홀
성공회 토착화의 주역 터너
숭실대학의 창설자 베어드
YMCA 부흥 운동가 브로크만 형제
민중의 봉사자 구세군 가족
책 속으로
이 책을 쓸 1979년 당시 양화진 외인묘지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폐허지였고, 흉터처럼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곳이었으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쓸쓸한 땅이었다. 더욱이 서울시 당국은 지하철 공사를 하는 데 지장이 된다고 해서 이 묘지를 다른 데로 옮기려 했다.
그러했던 땅이 오늘에 와서는 천주교의 절두산 성지와 양화진 묘역 사이를 오갈 수 있게 이으면서 그 일대가 공원화되고 모두 성지 순례지로 변했다. 양화진 외인묘지가 이처럼 변할 줄이야 꿈엔들 예측이나 했겠는가! 참으로 하느님의 섭리는 놀랍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 동시에 홍성사가 이 책의 개정판을 낸다고 하기에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진작부터 개정판이 나왔으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초판이 나온 지 어느덧 20여 성상이 흘렀다. 본디 이 책은 주간신문에 내었던 연재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므로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데도 있고, 더욱이 정부 당국이 이 묘지를 파헤쳐 다른 데로 옮긴다는 바람에 화가 나서 갑자기 쓴 것인 만큼 미흡한 점도 많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초판이 나온 뒤 민족의 은인 두 분이 이 묘지에 더 묻히게 되었다. 한 분은 언더우드 1세 목사님...이 책을 쓸 1979년 당시 양화진 외인묘지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폐허지였고, 흉터처럼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곳이었으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쓸쓸한 땅이었다. 더욱이 서울시 당국은 지하철 공사를 하는 데 지장이 된다고 해서 이 묘지를 다른 데로 옮기려 했다.
그러했던 땅이 오늘에 와서는 천주교의 절두산 성지와 양화진 묘역 사이를 오갈 수 있게 이으면서 그 일대가 공원화되고 모두 성지 순례지로 변했다. 양화진 외인묘지가 이처럼 변할 줄이야 꿈엔들 예측이나 했겠는가! 참으로 하느님의 섭리는 놀랍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 동시에 홍성사가 이 책의 개정판을 낸다고 하기에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진작부터 개정판이 나왔으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초판이 나온 지 어느덧 20여 성상이 흘렀다. 본디 이 책은 주간신문에 내었던 연재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므로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데도 있고, 더욱이 정부 당국이 이 묘지를 파헤쳐 다른 데로 옮긴다는 바람에 화가 나서 갑자기 쓴 것인 만큼 미흡한 점도 많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초판이 나온 뒤 민족의 은인 두 분이 이 묘지에 더 묻히게 되었다. 한 분은 언더우드 1세 목사님이고, 또 한 분은 언더우드 3세 장로님이다. 제1세는 미국 고향에 묻혔다가 1999년 5월 20일에 양화진으로 이장되었고, 제3세는 2004년 1월 15일에 작고하여 여기에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초판이 나올 때에는 세 분 어른들이 추천사를 써 주셨다. 한경직 목사님과 김재준 목사님과 언더우드 3세 장로님이 쓰셨는데, 그분들이 다 작고하셨으므로 새로 추천사를 써 달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출판사 리뷰
격동의 역사·버려진 역사·복원된 역사 속에서 옛 선인先人들을 만나다
격동의 역사 속으로 :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델, 헐버트, 벙커, 베어드, 무어, 홀…… 미지의 땅 조선, “그곳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정을 받치고 목숨을 다했던 선교사들.
격동의 구한말을 한민족과 함께했던 선교사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풍토병과 과로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젊음을 바쳐 복음의 열정을 뿌렸던 그들. 그리고 죽어서까지 이 땅을 떠나지 않고 한 줌의 흙으로라도 남기 바랐던 그들을 품고 있는 양화진 외인묘지. 그네들의 치열한 선교 현장을 체감할 수 있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발자취가 여기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버려진 역사를 찾아서 :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인 오리 전택부 선생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조금 특이하다. 원래부터 글을 쓰려고 구상했거나 자료를 모아 준비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책은, 1978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제2한강교 진입로 및 전철 제2호선 공사 계획’에 양화진 외인묘지가 거침돌이 된다하여,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발표가 나면서 시작된 싸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의 선한 중심을 들어 쓰셨다. 2년여에 걸쳐 신문에 연재된 ‘양화진 외인열전’은, 흐릿한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잘못을 바로잡는 밑거름이 되었다. 놀랍게도 서울시가 도시 계획을 전면 수정하면서, 양화진은 그 역사의 자리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폐허처럼 버려져 있던 양화진 묘역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실질적인 양화진 관리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복원된 역사 앞에서 : 2001년부터 마포구에서 실시한 ‘양화진 성지 공원화 사업’이 2005년 봄에 마무리되면서, 이제 양화진은 가톨릭의 ‘절두산순교성지’와 개신교의 ‘서울외국인선교사묘지공원’으로 한국 기독교계의 중요한 선교유적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복원되고 다듬어진 역사의 현장 앞에서, 이제 우리는 이 유적지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양화진 묘역을 돌 때마다, 치열했던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믿음의 선배들이 남기고 간 열정의 ‘그’ 도에 대해 올바르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원래 신문에 연재되었던 ‘양화진 외인열전’을 1986년 『이 땅에 묻히리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양화진 묘역과 절두산을 잇는 성지 공원이 새롭게 조성되는 시기에 『양화진 선교사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펴내게 되었다. 1978-80년 양화진의 존폐 위기 상황에서 양화진을 지키고자 애쓴 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양화진과 한국 기독교 역사에 새롭게 관심 갖는 새 시대 독자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담아낸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새롭게 다듬어서 개정 출간하게 된 것이다.
추천평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한 번 찾아가 보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양화진이라 불리는 서울의 서남쪽, 마포구 합정동 네거리에서 가까운 작은 동산입니다. 그곳에는 5백여 명이 넘는 외국인 형제자매들의 무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우리 은인들의 무덤이 많습니다. 무엇이 아쉬워서 여기까지 왔으며, 어떻게 살았기에 이 땅을 떠나지 않고 흙으로라도 남아 있기를 원했을까요?
이 책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여 준 믿음의 선인들을 새롭게 흠모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열거 수록된 헤론,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델, 헐버트, 벙커 등의 정신을 계승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 그곳의 전택부 장로님과 같은 역사의 증인들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기록되는 그날이 오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986년). - 추양秋陽 한경직(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전 이사장)
오리 전택부 선생께서 평생을 한국 교회와 민족에게 자원 제물로 바친 선배 선교사들의 유적과 그 공헌들을 발굴하여 한 열전을 출간하려고 집필 중에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들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한국 교회가 창시자를 권외圈外 인물로 등한시한다면, 그것은 뿌리도 씨앗도 기대할 수 없는 허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공은 진심으로 오리 선생의 신저 출간에 감격과 감사의 정을 보냅니다.
장공은 86세니까 젊은 사람들 축에 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는 사도 바울의 심경도 장공에게 노상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이 축사를 보냅니다(1986년).
YES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