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펜젤러의 입국

한경수 감독은 우리 민족은 겨레의 은인인 아펜젤러를 기려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교회에서 발행되는 선교회보에 다음과 같은 아펜젤러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이 글은 아펜젤러가 한국에 가기를 만류하는 부모와 동료들의 권유에 대한 자신의 각오를 밝히는 글이다.

“나는 나 자신을 이미 조선을 위하여 내어주었다. 그러므로 2, 3년이 그리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본국에서보다 조선에서 나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아마 하늘나라에도 은둔의 나라 조선에서 가게 될지 모른다. 하늘나라는 미국이라 해서 더 가깝고 조선이라 해서 더 멀지는 않을 것이다.”1)

이 글을 통해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이지만, 아펜젤러는 이미 조선에 들어오면서 조선에서 선교를 하다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견(豫見)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니 그것은 예견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로 조선에서 선교할 것이라는 결심이었고, 그의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다.

1885년 1월 15일, 미선교국의 대변인 격인, 통신 서기관인 리드(J. M. Reid)는 조선으로 떠나기 위하여 랭캐스터에서 준비하고 있는 아펜젤러 내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 편지는 리드 개인의 생각을 담은 편지는 아니며, 리드가 미선교국을 대표하여 보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으로 떠나는 선교사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에게 미선교국에서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사항들과 요구사항들, 그리고 선교사역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고 조선에서는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매뉴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편지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있는 사료인 것이다.

선교사무실
감리교 (감독) 교회
뉴욕, 브로드웨이 805
1885. 1. 15.

아펜젤러 목사,
펜실베이니아주, 랭캐스터

1885년 당시 미 감리교회 선교국 대변인 격인 리드(이미지)는 조선으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아펜젤러 내외에게 조선 선교를 위한 준비와 선교 매뉴얼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1885년 당시 미 감리교회 선교국 대변인 격인 리드(이미지)는 조선으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아펜젤러 내외에게 조선 선교를 위한 준비와 선교 매뉴얼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Missions and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친애하는 형제에게

당신 앞에 놓인 중대한 일에 관해 우리가 서로 견해를 교환하고자 했었는데 어제 온종일 당신이 시간을 내지 못해 매우 유감스러웠습니다. 스크랜턴 박사와 꽤 오랫동안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와 좀 더 시간을 같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에게 준 내 인상을 당신에게 전하기 위해 다시 그에게 의존해야 할 수밖에 없겠군요.

당신은 2월 3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배를 타시게 될 텐데, 당신과 부인을 위해 표를 산 환어음을 동봉합니다. 이 어음은 또한 대륙 횡단 시 각기 250파운드의 짐을 운반할 수 있는 특전도 제공합니다. 표를 파는 사람에게 이 어음을 보이면 각각 250파운드의 수하물이라고 도장을 찍어 줄 것입니다. 만일 표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으려 하면 즉시 표와 어음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입니다.

이 어음은 그 앞면에 쓰인 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선박표로 교환해야 한다는 것을 양지하십시오. 핏제럴드(Fitzerald) 박사가 어제 당신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취소되었으므로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보내야 할 서류가 따로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로 가게 될 것이며 맥클레이 박사에게 보고하시기를 바랍니다. 맥클레이 박사의 판단하에 당신이 즉시 조선으로 가야 하지 않는다면 일본에서 잠시 머무를 수도 있겠지요? 당신이 일본에 있게 될 시간은 선교사업의 진행방식을 면밀하게 검토하거나 가능하다면 조선어를 공부하면 반드시 유용하게 쓸 수가 있겠지요. 아마도 조선의 기독교인이나 기독교에 호의적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본에서의 모든 시간이 앞으로 당신이 활동하시는데 철두철미한 준비의 기회로 쓰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후 맥클레이 박사가 때가 왔다고 판단할 때에 당신은 조선으로 출발하셔서 선교를 시작하십시오.

적당한 살림 도구들을 장만하기 전까지는 가족들을 일단 남겨두고 당신과 스크랜턴 박사만이 먼저 떠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조선으로 가서는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보고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입국 시기는 미국공사 자신이 일단 다녀온 후가 좋지 않을까 합니다.

당신의 가족생활과 사업을 하기에 적합한 임시거처가 마련되어야 할 텐데요. 그 위치가 적당하다는 확신 없이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장소가 제공되고 맥클레이 박사가 승인하며, 선교본부에서도 당신이 매입하기를 바란다면 더욱 의심할 나위가 없겠지요. 매입 시에는 가능한 한 선교 활동의 먼 앞날까지도 고려되면 좋을 것입니다.

조선 선교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초창기에는 반드시 아주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정돈된 후에 모든 지출은 선교본부의 권한 하에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당신은 그 나라가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파송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분명히 법으로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료사업과 교육은 한국인들에게 잘 수용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절한 건물이 생기게 될 즈음 나는 당신이 학교를 경영할 수 있을 만큼 언어 지식을 충분히 다져놓으시기를, 그래서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동양 선교사업 중 어떤 곳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가족 예배가 혹 거기에 오고자 하는 원주민들과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며, 때로는 이런 것이 발단이 되어 회중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놓여있는 그 일을 어떻게 시작하실지 모르는 일입니다.

여자들을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라든지, 그 밖에도 한국인들의 매우 특이한 관습들 때문에 여학교를 시작하기가 매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스크랜턴 대부인이 돕는다면 이 일 역시 분명히 성사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의 부인도 최선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찾게 되겠지요.

그동안 스크랜턴 박사는 그의 의료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을 찾느라 애쓰게 될 것입니다. 이런저런 활동들이 참된 선교 사업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2) <계속>

[미주]
1) 한경수, 〈아펜젤러를 기리며〉, 『선교회보 주안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주안교회 1987 여름호에서 인용
2) 아펜젤러(정동제일교회 역사편찬 위원회 역), 『자유와 빛으로 헨리 G. 아펜젤러의 문건 I, 보고서』, p. 195~201에서 인용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