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사모·여목사·선교사·기도자로 하나님 부르심 따라 순종
“기도자는 항상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령의 소리 들어야”

강말희 목사
▲강말희 목사는 “민족이 환란을 경험할 때,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찾으신다”며 “각 나라에 디아스포라어머니중보기도회를 결성해 기도의 불을 지피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오늘날 제단 불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 어머니들이라도 가정의 회복과 나라와 민족의 구석진 곳을 살펴보며 기도하는 사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어머니중보기도회 회장 강말희 목사(80)는 세계선교와 기도의 사명을 위해 한평생 걸어왔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해 목회자 사모, 기도원 부원장을 하면서 신학을 마치고 일찍이 여성 목사로 안수받았고, 15년간 중국 등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유방암 수술, 6년 전에는 신장암 수술을 하고 완치됐다는 강 목사는 최근 서울 종로 5가 목자카페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병원 약 먹는 것도 없다. 이렇게 건강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강말희 목사는 양창부 목사(88)와 결혼하여 사모가 되면서 ‘기도 사명자’로서 첫발을 뗐다. 양창부 목사는 해군 대령으로 예편하여 청주, 영천, 울릉도, 울산, 강진 등에서 목회를 하고, 예장합동개혁(C) 총회장,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총재, 예장총회신학원 학장, 대한민국국가유공자선교회 대표회장, WLA세계문학학술원 대표, 국제미래학교교육협의회 이사장, NCM TV 발행인 겸 이사장을 역임하며 교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양 목사는 마약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대표이자 국제마약폴리스유니버시티(국제마약경찰대학교) 총장, 국제마약폴리스유니버시티 평생교육원 이사장이자 교수(사회복지조사론)로 활약하고 있다. 강말희 목사는 국제마약폴리스유니버시티 이사이면서 학생처장으로 섬기고 있다.

강 목사는 울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부잣집에서 자랐다. 방학만 되면 당시 청년인 강 목사의 오빠 강봉조 목사가 3박 4일간 신학생과 교회 청년들, 선교사를 집으로 초대해 전도의 근거지로 삼았다. 청년들은 집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기거하고, 호주 선교사는 방 안에 모셨다. 청년들은 낮에 동네를 다니며 북과 장구를 치면서 복음을 전했고, 호주 선교사는 저녁에 어른들을 집 마당에 모아놓고 찬송가를 부르다가 예수님을 소개했다. ‘호주에서 온 사람’을 구경하려 사람들이 모이던 시절이었다.

강말희 목사는 오빠의 손을 잡고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신앙이 성장했고, 이후 오빠의 친구인 양창부 목사와 평생 인연을 맺었다. 청주에서 교회를 개척하던 때, 강 목사는 당시 오산리기도원(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찾아가 3일 금식을 하며 폭포수 같은 은혜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인 양 목사가 영천, 울릉도, 울산, 강진에서 교회를 맡았을 때, 강 목사는 사모로서 역할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다락방기도원 부원장을 맡아 기도의 사명도 감당했다. 강 목사는 “저는 어느 교회를 가든 사모로서 40일 철야기도를 드리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제단에서만 40일을 생활하며 하나님 앞에 드렸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다 받으시고 저를 이끌어 가셨다”고 말했다.

강말희 목사는 이후 사당 총신대학교에 등록해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여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서울 강서구 화곡 본동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한번은 지인의 추천으로 마지못해 부부가 함께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됐는데, 이것이 해외선교에 눈을 뜨는 결정적인 계기가 했다. 강 목사는 “해가질 때 시내산에 올라가 몇십 명의 성지순례자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하는 은혜를 주셨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강말희 목사
▲강말희 목사가 “사모들, 어머니들이 기도할 때 우리나라가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의 회복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그렇게 선교의 마음을 품고 있던 강 목사에게 주어진 첫 선교지가 중국 흑룡강성이었다. 집주인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른 곳에 처소 교회도 세우면서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동북 3성을 다니며 사역했다. 강 목사는 “저는 선교가 너무 재미있었다. 옛날에 우리 집에 호롱불을 켜놓고, 코 큰 사람(호주 선교사)의 말을 들으러 사람들이 몰려와 예배드리던 그 시절같이, 조선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생을 그곳에서 산 조선족들이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비자도 처음에는 보름 비자로 다녀오다가, 점차 기한이 늘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선교지에서 본국으로 귀국한 후에는 방송 선교를 했고, 기회만 되면 필리핀, 대만, 러시아 등 선교지를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디아스포라어머니중보기도회는 매주 화요일 저녁 목자카페에서 기도회를 갖는다. 강 목사는 이날 “기도자는 먼저 성경을 많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목사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너무 흔해지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위선자, 거짓된 목자들이 많은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정치적 갈등이 자식과 부모, 부부, 형제를 갈라놓는 시대를 살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시켰는가를 보고, 우리 역시 치료받고 돌아서야 한다. 말씀을 보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사용하신다”고 말했다. 또한 “시대마다 많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부패했다”며 “그럴 때 예레미야 23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방망이가 되어 나를 두드릴 때, 거기서 깨어지면 내가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기도자는 두 번째로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웅장하고 매머드같이 커져서 어느 종탑이 크고 높은지 따지고, 이것으로 목을 꼿꼿이 하는 모습이 있다”며 “기도자는 시대를 볼 줄 아는 눈과 들을 귀를 가지고,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 신앙의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마음을 쏟아붓고 간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글로벌어머니중보기도회 집회를 국제적으로 개최했고, 이후 조직이 분리돼 현재 강말희 목사가 디아스포라어머니중보기도회 초대 회장을 2년간 맡게 됐다. 강 목사는 “앞으로 러시아, 미국, 인도, 일본 등 각 나라에 디아스포라어머니중보기도회를 결성해 각국에서 기도의 불을 지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말희 목사는 “사모들, 어머니들이 기도할 때 우리나라가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의 회복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회의 문턱이 계속 높아지고, 기독교가 빛바랜 옷처럼 영적으로 퇴색돼 제 색깔을 못 내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그러니 나라에 환란이 오는데, 이 모든 것을 기도함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회복하기 위해 우리 믿는 자, 기도자들부터 새로워져야 한다”며 “특히 항존직인 목사들과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해 달라고 ‘나부터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마지막으로 “민족이 환란을 경험할 때,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찾으신다”며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니, 사모들과 어머니들이 기도자로 세워져서 나라와 교회를 위해 무릎 꿇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