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배재학당의 교육 이념(理念)

아펜젤러가 학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바로 ‘이 학교를 조선 복음화(福音化)의 원동력(原動力)’으로 삼자는 데 있었다. 그의 교육 목표는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통역관을 양성하는 데 있지 않았다. ‘배재(培材)’라는 단어가 뜻하는 대로 ‘인재(人材), 유용한 인재는 갈보리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피로써 구원받지 않고는 양육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인재란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펜젤러에게 교육이란 복음 선교의 매체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통해 이뤄져야만 했던 것이다.

1900년도에 보고된 연회보고서에 보면, 아펜젤러는 자신의 교육은 철저하게 기독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순수한 세속적인 학교를 운영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기독교인 학생들을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거룩한 종교의 원리와 교리(敎理) 속에서 가르치고 그 위에 기초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배재가 철저히 기독교적이지 못하다면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1) 

조선 고종 황제는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당시 명필 정학교에게 현판을 쓰게 하고, 전각을 제작하여 1886년 배재학당 현판을 하사했다.
▲조선 고종 황제는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당시 명필 정학교에게 현판을 쓰게 하고, 전각을 제작하여 1886년 배재학당 현판을 하사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또한 그는 학교 교육의 목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유용한 인재는 갈보리에서 돌아가신 주의 피로써 구원받지 않고는 양육될 수 없다. 학생들은 길을 묻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기도와 심령의 소원은 이 학교를 특별한 영적인 힘이 넘치는 기관으로 만드는 데 있다.”2)

전통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며 숨길 수도 없고 꺾을 수도 없는 것이다. 배재학당(培材學堂) 시대부터 내려오는 배재의 전통은 자유주의(自由主義) 교육이었다.3) 백낙준의 『개신교(改新敎) 선교사(宣敎史)』의 기록에서 아펜젤러가 조선선교연회에 보고한 것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다.

“우리는 통역관을 양성하거나 우리 학교의 일군을 기르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내보내려는 것이다.”4)

이것은 배재학당의 교육(敎育) 이념(理念)을 말하는 것이다. 자유(自由)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전제적인 조선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다시 자유주의 사상으로 바꿔주고,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여 억압하지 않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배재학당의 당훈 ‘욕위대자 당위인역’
▲배재학당의 당훈 ‘욕위대자 당위인역’

아펜젤러는 서양인의 가치관과 관습에 의해 바라볼 때 나름대로 조선에서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그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자조하는 정신뿐만 아니라, 자기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는 데 헌신해야 할 숭고한 마음 자세를 갖도록 하였다. 자기 사회와 나라에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섬기고 남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道成人身)하여 인간으로 오신 것이 남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함이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희생물로 바치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 이 진리를 조선 젊은이들의 훈련에 적용하려 하였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장 27~28절)

아펜젤러는 이 복음 선포의 선교적 사명을 교육을 통하여 구체화하려고 하였다. 배재학당의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이라는 당훈(堂訓)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했던 아펜젤러가 교육자로서 가졌던 신념(信念)을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만든 것이다.5)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교훈이야말로, 앞서 말한 성경 구절의 정신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6) <계속>

[미주]
1) 이만열, 『아펜젤러-한국에 온 첫 선교사』, p. 424.
2) Annual Report Of M.E.C. 1887, p. 313.
3) 김세한, 『배재 80 년사』, p. 139.
4) 백낙준, 『改新敎宣敎師』, P, 218.
5) 이 당훈(堂訓)은 원래 천주교 신자였으며 아펜젤러의 어학(語學) 선생으로 활약한 조한규가 아펜젤러의 요청으로 한문화(漢文化)하여 만든 것이다. 조 씨는 아펜젤러와 함께 1902년 목포에 가다가 배 충돌사고로 익사하였다.
6) 이만열, 『아펜젤러-한국에 온 첫 선교사』, 「이만열, 아펜젤러의 교육, 복음전도 활동」, p. 480.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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