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럽으로 전파되기 이전에 도마를 통해서 인도로 먼저 전파가 되었다. 인도에서는 복음이 도마를 통해서 전파가 되었기 때문에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서 세워진 유럽의 기독교보다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거나 유럽의 기독교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서구인들의 억압적인 주장이요 교만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선교사가 유럽의 문명을 기독교와 동일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유럽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존스의 주장은 매우 단순했다. 즉 기독교를 서구 문명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존스는 그리스도께서 인도의 환경에서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요점은 그리스도를 교리적 논쟁을 통해서 강조할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살아 있는 그리스도로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존스는 인도인들에게 기독교라는 교리적 체계가 아니라 인도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살아 있는 그리스도로서 예수를 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존스에게는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사건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었다. 이를 위해서 존스는 다른 종교인들과 종교적 경험과 이해를 공유하는 원탁회의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기독교 문화에 대한 연구는 종교적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문화 안에 있는 좋은 점을 찾기 위해서는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를 더욱 열린 마음과 동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한 가지는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이 인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인도의 문화적 전통과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존스에 따르면, 인도 기독교인들이 인도의 기독교 신학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서구적 틀을 통해서 복음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존스는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인도의 문화적 전통에서 모든 인도인에게 익숙한 아쉬람(힌두교식 수도원)을 시작하였다. 1930년과 1935년에 사람들이 잠깐 거주하면서 묵상을 할 수 있는 기독교 아쉬람을 세웠다. 이러한 아쉬람 설립의 의도는 인도인과 외국인이 인도 문화의 전통에서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함께 살면서 기독교 정신을 인도의 문화와 삶의 터전에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향성의 첫걸음을 외국인 선교사들이 내디딜 수 있도록 존스는 아쉬람 형태의 언어학교를 설립하여 인도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배우면서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다. 존스는 아쉬람의 삶의 방식이 기독교의 심오한 영적, 사회적 본질을 실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긴 여정이라고 소개하였다.
인도의 문화를 존중하는 스탠리 존스의 태도 때문에 인도 민족주의 학생들은 존스가 거주하던 도시의 다른 감리교 선교사들과는 달리 존스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당시 큰 영향력을 가진 스탠리 선교사도 스탠리 존스의 아쉬람 운동에 대해 코이노니아(친교)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중요한 요인이라고 언급하였다. 타임지는 이러한 스탠리 존스를 가리켜 ‘20세기 최고의 선교사’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K-문화가 아시아를 넘어서 미국과 유럽을 강타하는 시대 속에서 스탠리 존스의 태도와 시각을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yoonsik.lee20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