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아직도 인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문화적 전통이자 사회적 신분을 구분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신분제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적 신분제도가 아니라 종교적, 문화적 신분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인도의 현 대통령은 불가촉천민 출신이고, 모디 수상은 낮은 카스트 출신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카스트 시스템은 인도아대륙을 찾아온 중세 시대의 서양인들에 의해서 그 실재가 외부 세계에 알려졌다. ‘카스트’라는 말 자체가 ‘카스타’(casta)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왔다. 그 의미는 민족적, 사회적 구분의 단위로써 사용하는 ‘혈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스트 시스템의 본격적인 연구는 18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카스트를 연구하는 세 가지 종류의 그룹이 있었다. 이 세 가지 부류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맥락 속에서 그들은 인도 사회를 연구했고, 기본적으로 힌두교의 경전을 통해 인도 사회에 접근하였다. 그들은 힌두교의 경전에 기초해서 브라만이 인도 사회의 지배적인 집단이며 사회 질서의 중심이라고 이해를 하였다. 이는 카스트 시스템의 종교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결과였다. 한 국가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요소를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경전에 근거한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카스트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은 서양의 우월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접근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경전 중심의 접근은 인도 사회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정적인 사회로 인식하도록 하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결과적으로 카스트 시스템의 이해 속에서 정치적 역동성과 경제적 이해관계와 문화적 다양성이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카스트 시스템은 기껏해야 브라만들에 대한 종교적인 우대를 해주는 것이나, 최악의 경우에는 조악하고 변질된 미신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서양 선교사들의 관점이다. 유럽의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서양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양의 문화를 열등하고 저급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인도의 종교인 힌두이즘을 바라볼 때도 천박한 것으로 인식하고, 나아가서 인도 문화 전체를 타락하고 불합리가 가득한 열등한 것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선교사들은 식민지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만 선교의 목적도 성취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서양의 선교사들은 인도 사회와 문화가 힌두이즘이라고 하는 종교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카스트 시스템이 힌두이즘의 사회적인 기반이기에, 카스트 시스템이 인도 사회의 열악한 상태의 원인이 되었다고 믿었다. 당시에 영국 선교사였던 윌리엄 워드는 카스트 시스템을 중국의 전족에 비유하여 카스트 시스템이 인도 전체를 불구로 만들었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태도가 당시의 유럽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것이었다.
한편 남인도에서 사역을 한 할레대학 출신의 경건주의 선교사들은 인도의 문화와 카스트 시스템에 대해서 다른 유럽의 선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근대 선교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바돌로메우스 지겐발크(1682~1719)는 윌리엄 캐리보다 앞서서 1706년 남인도의 트랑크바 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는 카스트 시스템을 하나의 신분제도로 인정하였고, 인도 문화 전체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의 유럽 선교사들이 선교기지를 통한 선교 방법을 행했던 것과는 달리, 개종자들이 자신의 카스트 집단이 사는 생활 구역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카스트 시스템을 하나의 문화의 형태인 신분제도로 이해하고, 그 틀 안에서 선교의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yoonsik.lee20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