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카스트 제도의 종교적 성격을 살펴보자. 카스트 제도의 기원은 바르나 시스템에 있다. 바르나 시스템은 인도의 고대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네 가지 직업군으로 구분한다. 즉 브라만(힌두교의 사제들과 교사들), 크샤뜨리아(군인들과 통치자들), 바이샤(상인들), 수드라(농부들, 노동자들)라는 계급이다. 이러한 사회적 위계질서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리그베다에서 언급이 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세상의 창조신인 브라흐마의 몸에서 이 네 개의 계급이 나왔다는 것이다. 즉 브라흐마의 머리에서 브라만이, 브라흐마의 어깨에서 크샤뜨리아가, 브라흐마의 넓적다리에서 바이샤가, 브라흐마의 발에서 수드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브라흐마 발현설은 카스트 제도의 종교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신의 몸에서 나왔으므로 종교적 경건함을 가지고 카스트의 위계질서를 지킬 것과 자기에게 주어진 카스트의 본분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라는 종교적 가르침이 숨어있는 것이다.
둘째로, 카스트 제도의 경제적 성격을 살펴보자. 카스트 제도는 그 역사적 기원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가리키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인도인들을 네 가지의 계급으로 나눈 바르나 시스템에서 바르나의 원래 의미는 ‘색깔’을 의미했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이 색깔을 인종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러나 수백 년 간 이뤄진 역사적, 사회적 연구와 DNA 조사와 같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카스트와 인종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더불어 바르나가 뜻하는 ‘색깔’이라는 의미는 인종적인 구분이 아니라 직업군에 따른 계급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도의 사회학자 디빵카 굽타에 의하면 고대 사회에서 각각의 직업군(바르나)은 자신들의 직업을 나타내는 색깔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색깔로 된 깃발을 각자의 집에 걸어서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었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즉 브라만은 태양이 가장 강렬할 때 갖는 하얀 색, 크샤뜨리아는 태양의 본래 색깔인 빨간 색, 바이샤는 아침에 나타나는 태양의 색깔인 노란색, 수드라는 저녁노을에 나타나는 파란색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르나 시스템은 고대 사회에서 ‘노동의 분화’를 통해서 고도로 발달한 고대문명을 건설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던 경제적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카스트 제도는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서 18세기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진 카스트 연구는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 집중하였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이러한 연구가 이뤄져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이러한 이론의 발전은 영국의 식민지 통치 전략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퀴글리라는 학자는 일명 ‘호카르트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카스트 제도를 왕이 최고의 정점에 배치된 정치 시스템으로 소개하고 있다. 인도의 사회학자 덕스도 카스트 제도 안에서 왕권이 종교와 제사장들을 아우르는 것임을 주장하였다.
오늘날도 인도의 빌리지에서는 지역마다 ‘지배적인 카스트’(dominant caste)의 개념이 있다. 지배적인 카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 상당한 정도의 경작지를 소유하고, 인구수가 우세하고, 지역의 계층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그래서 각 지역의 지배적인 카스트는 지역적인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라자스탄 지역에서는 군인계급인 라지뿌트가 우세하고, 간디의 고향 구자라트 지역에서는 상인 계급인 바니아 카스트가 우세하다. 각 지역의 역사적·정치적인 맥락에 따라서 지배적인 카스트가 결정되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지배적인 카스트가 되기 위한 조건은 ‘서양식 교육, 관직, 도시에서의 수입’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즉 카스트는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카스트의 정치적 성격을 이해하게 되면 카스트 시스템이 결코 정체된 구시대의 신분제도나 위계질서가 아니라 21세기에서도 정치적인 역할을 주도하는 사회적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yoonsik.lee20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