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카스트 제도가 발휘하고 있는 사회적 역동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레저베이션 (Reservation)이라고 부르는 공공부문 할당제, 또는 호혜적불평등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도의 헌법은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정한 비율의 할당제를 가지고 있다. 이 할당제의 핵심은 카스트 제도하에서 불가촉천민이라고 여겨졌거나 낮은 카스트에 속해 있던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①연방의회 하원과 주의회의 하원에 전체 인구에 대한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민의 수에 비례한 의석의 보장 ②정부 공무원의 일정한 비율에 따른 고용 보장 ③공립 학교의 일정 비율에 따른 입학 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1953년 1월 29일 대통령령으로 ‘첫 번째 낙후계급 위원회’(First Backward Classes Commission)가 조직되어서 1955년 3월 30일 2,399개의 낙후 카스트 또는 공동체의 명단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전통적으로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되었던 지정 카스트(SC)와 지정 부족(ST)을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낙후된 계급들’로 정의하고 그 범주를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을 하였다. ①힌두 사회의 전통적인 카스트 계층구조에서 낮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경우 ②카스트나 공동체의 주요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교육의 발전이 부족한 경우 ③공무원직에서 같은 카스트의 사람들이 불충분하거나 없는 경우 ④무역, 상업, 산업의 영역에서 대표성을 가지는 같은 카스트의 사람들이 부족한 경우이다.
기타낙후계급(OBC)의 개념은 1979년 정권을 차지하고 있던 국민당(Janata Party)의 정책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국민당은 가난한 백성의 복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정당이었다. 1979년 위원장으로 일하던 만달(B. P. Mandal)을 중심으로 조직된 만달 위원회는 1980년 12월 31일 보고서를 통해서 기타낙후계급(Other Backward Classes)의 정의를 ‘교육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낙후된 농부들과 노동계급과 공동체’라고 정의하였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인구를 52%로 추정하고, 그들에게 공무원직의 27%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당시 상층 카스트 젊은이들의 극렬한 반대와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1992년 대법원은 지정카스트, 지정부족, 기타낙후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위한 레저베이션이 50%가 넘으면 안 된다고 판결을 하였다. 공식적으로 지정카스트, 지정부족을 위한 레저베이션이 22.5%, 기타낙후계급에 의한 레저베이션이 27%, 합계 49.5%로 되어 있다. 최정욱은 특별히 공공부문 할당제 덕분에 지정 카스트들의 사회경제적 입지가 강화되고, 선거구할당제로 인하여 지정카스트들의 정치 활동이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정카스트 출신이 2003년 중앙정부의 최상위직에서 최하위직에 이르기까지 평균 16.52%를 차지하였고, 하원의 경우에는 2009년에 534석 중 84석을 차지하였다.
이렇듯 지정카스트를 위한 할당제를 통하여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고 인도에서 가장 좋은 직장으로 여겨지는 공무원직을 얻거나 정치인으로서 부상하게 되는 것은 전통적으로 천대받던 사회적 그룹이 정치·경제적 힘을 얻고, 사회구조 안에서 새로운 엘리트 그룹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자트(Jat)라는 카스트가 신문 지상에 나올 때가 있다. 이 카스트는 어떤 지역에서는 상층카스트에 속해 있고, 어떤 지역에서는 기타낙후계급(OBC)에 속해 있다. 이러한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들의 명단은 10년에 한 번씩 주 정부의 수상이 공포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때가 되면 명목상 상층카스트에 속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타낙후계급(OBC)의 범주에 포함되기 위하여 해마다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과 공공부문에서의 할당제를 통하여 특별히 달릿 그룹이 카스트를 자기들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정치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yoonsik.lee20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