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선교는 성숙한 사랑에 기초, 사랑 주며 풍요로움 경험
주의 참사랑을 알고, 형제들을 위해 그 사랑을 아낌없이 흘려보내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해 보호(배려)와 책임과 존경(존중)과 지식(이해)을 바탕으로 한, ‘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성경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하신 말씀대로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해 보호(배려)와 책임과 존경(존중)과 지식(이해)을 바탕으로 한, ‘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성경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하신 말씀대로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롬의 사랑의 4가지 요소는 선교현장에 있는 선교사에게 인간의 존엄과 복음의 깊이를 동시에 지향하는 틀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숙한 선교는 성숙한 사랑에 기초하는데, 그것은 현지인들에 대해 ‘보호’(배려)와 함께하고, ‘책임’으로 응답하며, ‘존중’(존경)으로 인정해 주고, ‘이해’(지식)로 동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길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위대한 성경과 주님의 가르침이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는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사랑에 대해 가졌던 통념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혁명적인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사랑은 ‘받는’ 것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생명력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프롬은 ‘준다’는 행위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흔히 사람들은 준다는 것을 자신의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주는 것을 손해 보는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줌’은 나의 풍요로움과 살아 있음의 표현이다. 주는 사람은 ‘줌’으로써 자신이 생명력과 잠재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스스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가 꽃에 물을 줄 때, 그의 생명력이 고갈되는가? 식물에게 준다고 해서 그로부터 상실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는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더 큰 기쁨과 충만함을 느낀다. 사랑도 이와 같다. 내가 가진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슬픔까지도 상대와 나눌 때 나의 존재는 더욱 확장되고 풍요로워진다. 주는 행위는 상대를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더욱 살아 있게 만드는 최고의 활동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임을 필자는 그의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의 삶이 이런 모습이었으면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굳이 선교현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관계, 흔히 사랑에 있어서 서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갈등과 애증이 존재한다면, 프롬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넘치는 충만함을 나누어주는 잔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참사랑은 ‘필요’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을 위해 시작할 수 있다. 내 안의 넘치는 기쁨과 지혜, 따뜻함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을 갖는 일, 이것이 바로 미성숙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삶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기술을 본다. 매일 아침 동네 공원을 청소하는 노신사의 뒷모습을 통해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한 사랑을 ‘주고’ 있음을 본다.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위해 매일 짐을 봐주는 젊은이의 따뜻한 마음, 그는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주고’ 있다.

이처럼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특정한 연인 사이나 부부간의 관계나 혹은 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지표가 되지만, 그것들에만 갇히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세상을 향한 전반적인 태도이자 인격의 방향성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해 보호(배려)와 책임과 존경(존중)과 지식(이해)을 바탕으로 한, ‘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성경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하신 말씀대로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우리 자신이 ‘사랑의 자석(磁石)’이 되어 우리와 같은 향기를 지닌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해답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지혜를 빌려 ‘사랑’이라는 위대한 여정을 함께 묵상해 보면서, 사랑은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나 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보호(배려), 책임, 존경(존중), 지식(이해)이라는 네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지는 견고한 건축물과 같다는 것을 배운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핵심 원리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필자는 독자 가운데서 특히 인생을 많이 사신 분들, 그리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장년 성도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이미 세상을 오래 살아보신 분들로서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지식과 신앙과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이며, 그 사랑을 나눌 상대를 기꺼이 초대할 수 있는 삶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는 사랑은 결코 상처받지 않는다. 나의 풍요로움을 나누는 행위는 그 자체로 완전한 기쁨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그 가치가 좌우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짐이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의 지혜와 경험, 따뜻한 관심은 그 어떤 물질적인 선물보다 귀한 것이라 본다.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여러분들 가운데는 수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보듬어온 지혜의 훈장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오신 분들도 많으리라 본다.

결국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과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지고 존경하며 깊이 이해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만들어 내는’ 위대한 예술가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남은 삶이 바로 우리의 이웃과 국내외 어디에서도 가장 위대한 걸작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미래는 사랑으로 충만한 찬란한 길로 펼쳐질 것이다.

김영휘 목사
▲김영휘 목사
비록 우리는 지금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미래는 진정한 사랑으로 더욱 밝아지리라 확신한다. 더욱이 선교지에는 지금 우리의 진정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자! ‘주여! 우리가 주의 참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그 사랑을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요일 3:16)라고.... <끝>

김영휘 목사/선교사(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