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선교 지양’ 부르짖으면서
서구권 돈 선교 답습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비서구권 국가들과 동등한 파트너,
혹은 더 아래로 들어가 선교 기반 형성해야

김영휘 목사
▲김영휘 목사
세계선교 변화의 큰 흐름이 서구권 선교(Global North)에서 비서구권 선교(Global South)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선교사 파송 수(2010년 기준)에서 상위권 5개국의 파송 비율을 보면, 미국 127,000여 명(전체의 약 31.75%), 브라질 34,000여 명(약 8.5%), 한국 20,000여 명(약 5%), 필리핀 15,000여 명(약 3.75%), 인도 10,000여 명(약 2.5%)이다. 그러나 2014년에 들어서 서구권 출신의 선교사(약 118,000명, 48%)보다 비서구권 출신의 선교사(약 127,000명, 52%)가 앞지르기 시작하였다(CSGC 자료 기반). 다시 말해 20세기까지는 유럽과 북미 등 서구권이 중심이었는데, 21세기 현재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비서구권이 그 중심으로 부상했다.

기독교 인구 분포를 볼 때 1900년대는 세계 기독교 인구의 80% 이상이 서구에 집중되었고, 2020년대는 비서구권에 67% 이상이 분포되었다. 또 신학의 논쟁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해방신학, 민중신학, 아프리카 신학 등 다양한 신학이 등장함으로써 비서구권 선교 축으로의 이동을 보이고 있다. 더 중요한 증거는 교회 성장이다. 서구권의 탈 복음화, 세속화로 교세가 감소하는 반면,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비서구권은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흐름 가운데 한국선교의 위치와 자세, 역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선교는 꾸준히 성장해 왔고, 비서구권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며, 과거 선교의 수혜자였던 것이 자칭 선교 주체자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동북아의 중심이고, 경제력이나 IT, 의료, 교육적 측면 등 기술력에서 열강에 뒤지지 않으며, 짧은 시간 동안 교회 성장을 이룬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강점과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비서구권 선교 시대에서 우리의 역할 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3가지 면에서 착각을 하고 있지 않은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서구권 선교에서 비서구권 선교로의 큰 흐름은 오늘의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조동진 박사의 주장과 같이 오래전부터 이미 대두된 예견이며, 단일국가 선교사 파송 수를 볼 때 여전히 서구권 선교사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 과학, 기술, 교육, 부(富)의 능력 등 선교자원의 능력이 여전히 서구권에 남아 있으므로 선교가 완전히 비서구권으로 넘어왔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와 같은 한국 선교사의 묘가 해외 선교지에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둘째는 한국선교가 서구선교에서 탈피하기 위해 물질(돈) 선교를 지양하자고 부르짖으나, 실제로는 우리 경제력이 다른 비서구권 국가에 비해 우위에 있다 보니 그들보다 돈을 앞세워 주장할 수밖에 없고, 주도권까지 가지려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비서구권 국가에서도 사실상 한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어, 과거처럼 서구권의 돈 선교를 어쩔 수 없이 답습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비서구권 국가의 일각에서는 한국선교로부터는 돈 이외에 다른 협력은 필요 없다는 인식까지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인식은 일부에서 나온 것이나, 그런 소리를 듣는 자체가 우리도 서구권 방식의 선교를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으면서 그것을 배제하자고 주장하는 점이 또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셋째는 진정 비서구권과 같이하려면 우리가 지닌 것들, 예를 들어 경제력, 인력, 한국식 사고 주입 등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다자적 선교로의 역할을 위해 비서구권 국가들과 동등한 파트너로, 혹은 더 아래로 들어가 저들을 존중해주고, 오히려 저들의 선교 기반을 형성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우리의 선교적 열정과 헌신을 시급히 회복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선교의 위기의식의 상실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자신학화를 속히 정립하고, 선교지 문화에 대한 존중과 현지교회의 자립 지원, 현지 지도자 양성, 지역 문화에 맞는 자신학화의 개발을 도와야 할 것이다.

COMIBAM 2025 파나마 대회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선교 지도자들이 참여한 COMIBAM 2025 파나마 대회가 지난 4월 말 진행됐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KWMA
그러나 어느새 우리도 서구선교처럼 우월의식을 갖고, 현지에서도 그렇게 보이면 비서구권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지에서의 한국선교의 우월감은 마치 이제까지의 서구권 선교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하겠다. 작가이고 선교학자인 미리엄 아데니(Miriam Adeney)가 들은 ‘코끼리와 생쥐와의 춤’ 이야기를 조쉬 어비(Josh Irby)가 인용하여 기고한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크리스찬투데이, 2024년 10월 16일 조쉬 어비 기고).

“코끼리와 생쥐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어느 날 코끼리가 ‘생쥐야, 우리 파티를 하자!’ 그러자 동물들은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그 가운데 코끼리만큼 신나게 춤을 추는 동물도 없었다. 파티가 끝나자 코끼리가 소리쳤다. ‘생쥐야! 이보다 멋진 파티에 가본 적이 있어? 정말 신났어!’ 하지만 생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 있는 거야?’ 하고 코끼리가 불렀다. 그러나 생쥐는 코끼리 발치 아래에 쓰러져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의 몸은 친구 코끼리의 흥분에 짓밟혀 숨도 못 쉬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인들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는 건 가끔 이런 식으로 마치 코끼리와 춤을 추는 것 같죠’라고 아프리카 출신의 스토리 텔러(story teller)가 말을 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서구권 선교사이고 생쥐는 비서구권 선교 지도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서구권 선교사를 무척 당황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누구도 파트너를 짓밟을 계획을 가지고 선교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교 현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코끼리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생쥐는 짓밟히는 처지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현지 국가나 선교 지역에 처음 온다면 어떤 계획도 가지고 오지 마세요. 그냥 관찰하러 오세요. 기다리고 배우고 귀를 기울여 들으세요. 주님께서 발걸음을 인도하시도록 하세요”라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복음 전도자인 슬라브코 하지치(Slavko Hadzic)는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교지에 갈 때 자신이 어떤 선교계획과 사역을 할 것인지 미리부터 다 준비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말로 해서 배경(context)은 이해하려 들지 않고 본문(text)부터 들이밀려고 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다.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선교의 큰 흐름이 흘러간다는 말을 탓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선교학자들 등 사람들의 규정일 뿐이지 하나님은 바람의 흐름까지 주장하시는 분(전 11:5)이므로 모든 흐름은 하나님의 손안에 달려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비서구권 선교 국가들과 파트너가 되려면 이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우리의 내부를 강화하고(선교 열정과 헌신의 회복), 또 다른 한편으론 그들을 주도하는 자가 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이 앞장서서 일할 수 있도록 선교 역량을 도와주고, 선교의 기반을 형성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서구권 출신의 선교사들과 같이 코끼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김영휘 목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선교사
청년인턴선교사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