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게 하신 하나님
본문
전도서 5장 18–20절
서론
왜 우리는 누리지 못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꿈꿉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조금만 더 안정되면, 그때는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음 단계의 인생’을 기다립니다. 지금은 준비하는 시간이고, 지금은 견뎌야 할 과정이며, 지금은 아직 누릴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상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도 여전히 불안해하고, 원하던 것을 이루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누리지 못한 시간뿐입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얼마나 누리며 살았는가?” 전도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문제는 더 가지지 못한 데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받은 것을 누리지 못한 데 있을까요. 전도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더 노력하라.” “더 가져라.” “더 크게 성공하라.” 오히려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누리고 있느냐?”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누림을 늘 미래형으로 미뤄 두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5장과 6장은 두 종류의 인생을 우리 앞에 나란히 세워 놓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께 받았으나 끝내 누리지 못한 사람,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본론
Ⅰ.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 (전 5:18–20)
전도서 5장은 책 전체 흐름 속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지혜자는 그동안 반복해서 말해 왔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나 이 고백은 인생을 비관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의미를 걸어 두었던 모든 대상 즉 지혜와 수고, 성취와 부, 명예와 쾌락, 그 어느 것도 인간에게 참된 만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검증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혜자가 전도서 5장에 이르러 뜻밖의 선언을 합니다. “보라, 내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이것이니…”(18절) 지금까지 모든 것을 헛되다 말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인생을 향해 “선하다”, “아름답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인생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1. 자기 몫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사람이…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19절)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는 더 많이 가지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몫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 나는 저 사람 같지 않은가?” “왜 내 인생은 이것뿐인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이렇게 고백할 줄 압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자리다.” “이 분량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그래서 그는 비교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남의 인생을 탐하다 자기 인생을 잃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이런 태도를 지혜라고 부릅니다.
2. 수고를 받아들이는 사람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19절) 전도서에서 ‘수고’는 땀과 반복, 피로와 허무를 동반한 삶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5장의 사람은 수고를 저주로만 보지 않습니다. 수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고를 미화하거나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고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그는 수고하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일이 없다고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누림은 수고가 사라진 삶이 아니라, 수고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삶입니다.
3. 현재를 선물로 사는 사람 (HERE AND NOW)
“능히 누리게 하시며…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19절) 이 사람은 과거에 누렸던 것들을 붙들고 그 시절만을 되새김질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간 은혜를 추억하는 데 머물러 오늘을 공허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 바라보다 지금의 삶을 유예하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이 문제만 해결되면”, “이 시기만 넘기면”이라고 말하며 현재의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삶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 묶여 후회 속에 살지도 않고, 미래에 사로잡혀 불안 속에 머물지도 않으며,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존재와 삶을 온전히 두는 태도입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은혜를 주신 분이 아니라, 미래에만 역사하실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하루를 다스리시고, 오늘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오늘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이 하루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전도서의 지혜는 과거를 부정하라는 말도 아니고,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현재를 유기하지 말라는 요청이며,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오늘을 은혜로 받아 누리라는 초대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아는 사람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쁨을 주시므로 그가 자기 생애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느니라”(20절) 이 사람의 기쁨은 상황에서 오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생긴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에 주신 기쁨입니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몰라서 웃는 사람이 아니며, 인생이 쉬워서 가볍게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전도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기쁨은 소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맺히는 열매라고 합니다.
Ⅱ.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전 6:1–6)
전도서 6장은 전혀 다른 인생을 보여 줍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을 보았나니…”(6:1) 전도자는 이것을 단순한 불운이나 개인적 실패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상태를 ‘불행한 일’, ‘헛됨’, 심지어 ‘악한 병’이라고까지 부릅니다. 왜 이렇게까지 강한 표현을 쓰는 것일까요? 겉으로는 성공했으나,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6:2) 이 사람도 분명히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문제는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축복의 출처로는 인정하지만, 삶의 중심으로는 모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에는 축복은 남아 있으나, 관계는 사라집니다. 성경은 이것을 매우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배불러서 아름다운 집에 거주하게 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을까 하노라” (신명기 8:11–14) 전도서는 하나님 없는 번영을 가장 위험한 번영의 상태로 봅니다.
2. 누리도록 허락받지 못한 사람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6:2) 이는 하나님이 변덕스럽게 누림을 막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도서적 언어로 말하면, 하나님 없는 삶에서는 누림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이 사람은 가졌으나 불안하고, 지켰으나 즐기지 못하며, 쌓았으나 쉼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누림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의 문제입니다.
3. 결국 다른 사람이 누리는 인생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6:2) 평생 쌓아 두었지만, 정작 누리는 이는 본인이 아닙니다. 문제는 소유를 잃는 것이 아니라, 누리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한 비유로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2:20) 전도서 6장의 인생은 소유는 남기고, 누림은 남기지 못한 인생입니다.
4. 오래 살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그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6:6) 전도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장수를 예로 듭니다. 그러나 결론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누림이 없으면 인생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태복음 16:26) 시간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5. 이 사람의 근본 문제는 욕망이다
이 사람의 문제는 재물이 아닙니다. 멈추지 않는 욕망입니다. 그는 이룰 수 있는 분량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결코 닿을 수 없는 더 큰 행운을 쫓습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하고, 항상 불안합니다. 성경은 욕망의 본질을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9–10) 전도서가 보기에, 욕망을 관리하지 못하는 인생은 결국 인생에게 먹히는 인생입니다.
Ⅲ. 두 사람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
전도서 5장과 6장을 가르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도 아니고, 성취의 크기나 인생의 조건도 아닙니다. 전도서는 단 하나를 묻습니다. “하나님이 네 인생의 중심에 계시는가?” 이 질문은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오직 누가 인생의 주인인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누림은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낙을 누릴 자가 누구냐” (전 2:25) 같은 것을 받아도 한 사람은 누리고, 다른 한 사람은 누리지 못합니다. 차이는 조건이 아니라 중심의 위치입니다.
1. 소유의 차이가 아니라 중심의 차이
전도서 5장의 사람과 6장의 사람은 둘 다 하나님께 받았고, 둘 다 수고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셨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주변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래서 한 인생에는 많지 않아도 감사가 남아 있고, 다른 인생에는 충분해 보여도 쉼이 없습니다.
2. 결정적 기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하나님을 경외할지어다” (전 5:7)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 경외란 두려움이 아니라 질서의 회복입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정입니다. 경외가 사라지면 사람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려 하고, 그때부터 누림은 사라집니다.
3. 멈출 줄 아는 사람과 욕망에 끌리는 사람
“사람의 눈은 만족함이 없느니라” (전 1:8) 지혜자는 자기 몫에서 멈출 줄 알지만, 우매자는 욕망의 끝을 모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말합니다. 누림은 더 가지는 데서 시작되지 않고, 멈출 줄 아는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4. 지금을 사는 삶과 미루는 삶
전도서 5장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지금, 여기를 삽니다. 그러나 6장의 사람은 늘 “조금만 더”를 말하다 현재를 흘려보냅니다.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잠 27:1) 누림은 언젠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입니다.
5. 기쁨의 근원이 다르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쁨을 주시므로” (전 5:20)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인생은 조건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생은 기쁨을 소유에서 찾기에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결론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전도서 5장과 6장은 두 인생을 조용히 세워 놓고 묻습니다. “너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누림은 성취의 결과가 아닙니다. 만족은 소유의 크기에서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환경이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누림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인생의 중심에 계실 때, 우리는 비로소 많지 않아도 누릴 수 있고, 완벽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으며, 수고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더 가지기 위해 애쓰느라 이미 주신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몫을 감사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수고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게 하옵소서. 환경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기쁨을 회복하게 하시고, 미루지 말고 오늘을 은혜의 시간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 중심에 다시 하나님을 모셔 드리오니, 많지 않아도 누리게 하시고, 완전하지 않아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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