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탁인의 신앙고백과 더불어 역사·문화·선교적 표현이 통합된
기독교 민족 신앙의 기념비이자 자기 신학화의 중요한 사례
지난번에 이어 인도네시아 북부 수마트라 메단 지역 선교여행에 관해 나누고자 한다. 먼저 이런 기록을 하려는 의도가 매우 중요한데, 방문 장소에 갔었다는 그 자체나 혹은 어떻게 해서 갈 수 있었느냐, 그곳에 누구와 어떤 모임이나 행사를 했느냐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 보고를 남기려는 것은 방문한 그 장소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와 가치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데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곳도 현지의 모든 자료와 내가 준비한 자료, 그리고 내가 목격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혹시 오차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
지난번엔 북부 수마트라 메단에 밀집된 바탁족에 대한 선교 역사와 특히 그곳에 처음으로 선교한 노멘센 선교사의 희생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가 어떻게 선교했으며 그 결과 오늘의 바탁족 교회의 모습을 소개했다. 또 이와 거의 비슷한 연대에 비슷한 선교 방법의 초창기 선교 역사를 가진 한국의 선교 역사와 비추어 볼 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자료로 남기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오직 영광과 감사를 올린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기록한 바탁족의 신앙과 전통의 상징물인 예수 조각상을 소개하면서 그 역사적 가치와 오늘의 의미에 대해서 기록해 보고자 한다.
정식 명칭은 ‘구세주 그리스도 조각상’(Patung Kristus Penyelamat Christ the Savior)이고, 조각상 아래에는 그 명칭과 함께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는 구절이 인니어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에서 조각상을 건립한 바탁족의 본래의 목적이 담겨있다고 보며, 그것에 대해서 서서히 밝히려 한다.
조각상은 시베아 베아 언덕(Bukit Sibea-bea) 고지대에 위치하며, 토바 호수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장엄한 경관을 갖추었다. 특징은 약 60m의 크기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상과 유사하게 두 팔을 벌린 모습이고, 흰색으로 도장 되어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라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너무나 멋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조각상의 조성 목적과 배경
이 조각상을 조성한 주요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바탁 민족이 거주하는 곳이며, 전의 선교단상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19세기 말 독일 루터란(Lutheran)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래된 곳이다. 기독교 신앙은 바탁인의 삶과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그래서 이 조각상은 그런 신앙의 열매로 순전히 바탁 신앙인들과 교회들의 재정에 의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되어오다가 2024년 9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제막되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토바 호수와 산맥의 경관이 너무 압도적이며 종교적으로 순례의 장소이자 관광지로 개발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조각상의 의미인데, 이는 바탁인의 신앙과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랜드 마크(Land Mark)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조각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바탁인의 신앙과 문화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러낸 상징물이라는 점이다. 두 발을 활짝 벌린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축복과 포용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바탁인 신앙공동체에 대한 축복과 소망을 표현했다.
(1) 그리스도 왕의 상징으로서의 조각상
이 조각상의 이름 중 하나가 ‘왕이신 그리스도’(Kristus Raja)이다. 그러니까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민족과 역사와 문화 가운데 군림하신다는 신앙적 선언이며, 특히 바탁인의 삶의 주권자가 바로 주님이심을 드러낸 신앙고백물이라 하겠다. 언덕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주님의 모습은 바탁인 삶 전체를 통치하시는 주님의 모습이고, 또한 주님의 축복의 손짓(Memberkati)이 토바 호수와 그 주변 지역에 임하시기를 축원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조각상은 저주하거나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축복을 내리시는 주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순간적으로 나는 우리의 목사나 성직자들이 예배를 마친 후에 축도하는 모습이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는 손짓이 아니라, 바로 이 조각상과 같이 두 팔을 벌려 편안하게 축복하는 모습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 이유는 나는 원래부터 목회자나 성직자들이 회중 위에 군림하거나 권위를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 봉사자요, 그리스도 사랑과 위로와 축복의 전달자라는 개념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원래 바탁인 전통에는 산과 고지대가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는데, 조상을 기리는 제사나 중요한 의식도 고지대에서 치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기독교가 유입된 이래로 이런 문화적 내력이 나타나 예수상을 고지대에 세움으로써 ‘위로부터 내려오는 축복’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조각상은 바탁 문화의 전통적인 고지대의 성스러움과 기독교 신앙이 절묘하게 결합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 복음화와 문화적 상징으로 세워진 조각상
이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물이 아니라, 바탁족 복음화의 150여 년의 결실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조각상 아래에는 기도 공간들이 있다(사실 나는 기도하고 싶었는데 기도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고 드러누워서 자는 사람, 혹은 식구들이 와서 한 상 차려 놓은 모습 등을 보며 기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성경구절이 있는데, 즉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요일1:3)이라는 말씀은 곧 바탁인들이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달은 신앙을 다른 이들과 외부에도 시각화하고 전하고 싶은 신앙의 증거가 내포된 의미이다. 따라서 이 조각상은 바탁인의 신앙고백과 더불어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선교적 표현이 모두 통합된 기독교 민족 신앙의 기념비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단지 과거 복음화의 열매로서의 기념물이 아니라, 바탁 기독공동체의 미래 지향적인 신앙의 의지와 비전을 나타낸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지역을 축복하시는 이미지는 곧 미래를 향한 축복과 소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바탁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다음 세대에 계승하고 공동체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신앙의 결의나 선언문의 역할이기도 하다. 바탁인들은 전통적으로 상징, 조각, 기념비를 통해 조상과 공동체의 영성을 표현해 왔는데, 이런 전통과 기독교 신앙이 서로 어울린 예가 바로 이 조각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조각상은 기독교 신앙을 자기 문화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소위 자기 신학화(Self-Theologizing)의 중요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양옆으로 활짝 벌려 축복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손짓과 조각상이 언덕 위에 위치한 것은 바탁 전통에서 볼 때,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상징적 축복의 공간을 의미한다. 바탁인은 조상의 영혼을 기리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연의 멋진 경관과 결합시킴으로써 자연적 요소와 신앙이 융합되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을 자연신론과 연결하고자 한다면 또 다른 논의가 되므로 여기선 다루지 않겠다.
(4) 현대적 선교의 의미로서의 조각상
지역사회와 관광객들은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기독교적 메시지를 접하게 되고, 특히 바탁인의 신앙에 대해 많이 배우고, 직접 체험할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한 신앙의 표현이 아닌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적 접근을 표현한 훌륭한 선교적 의미와 사례를 제공해 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상이 어떻게 건립되었는지 알아봤더니 전적으로 바탁 신앙공동체의 주도로 준비되고 세워졌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현지 바탁교회가 이제는 이미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 공급자로서 자리 잡았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조각상은 단순한 관광지나 신앙적 기념물이 아니라, 바탁인들의 신앙과 문화가 만나 하나로 융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즉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신앙을 구체화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자기 신학화의 중요한 사례인 것이다.
한편으로 지역교회와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하고, 또 한편은 세계에 전달하고자 하는 선교적 역할을 한다. 즉 신앙과 문화가 어떻게 서로 만나고 기독교가 전통문화 속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고자 하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이것과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나의 본래의 방문 목적이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기독교 신앙과 융합되어 상징적으로 표현된 장소나 조형물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조선 가옥으로 지은 옛 예배당과 그 앞에서 찍은 성도들의 모습이나, 혹은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전도하는 전서인의 사진이나 기독교 초기 순교자들의 기념관 정도 등이 있다. 우리는 뜯었다가 고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민족이라 옛것에 대한 보존이나 기독교적인 새로운 조형물들은 별로 없는 편인 것 같다.
오히려 기존의 전통적인 교단에서는 이런 조형물이나 조각 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의 내적인 문제이지 신앙의 시각적 표현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전에는 예배당 안에 십자가 형상을 표현하는 문제로도 논란이 많았다. 사실 예배당 안에 십자가 형상이 없으면 일반 건물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그 십자가를 우상화하는 개신교 성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므로 개인적인 견해로는 너무나 지나친 형상화와 색상으로 시각화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한, 문화와 전통과 잘 융합하여 신앙의 현지화로 나타난 것들을 곧바로 우상숭배 시 하는 생각은 본질을 벗어난 잘못된 개념이라고 본다. 더욱이 이런 인도네시아 바탁교회가 그들의 상징물인 예수상을 자신들의 신앙의 자긍심과 상징으로 내세우는 마당에 그들의 표현물을 가리키면서 ‘너희는 우상숭배자’라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들이 자부하듯이 우리도 그들과 함께하려면 우리의 신앙의 자긍심의 상징물로써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계속 언급하지만 자기 신학화와 상황화 신학의 정립이 더 우선시되어야만 소위 비서구권 선교 중심의 시대에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머리로만 알아 왔던 지식을 몸으로 배울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할렐루야!
김영휘 목사/선교사(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