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사건은 이방세계에 복음이 들어가는 선교 사건
베드로의 경험은 신학적·사회적 경계를 뛰어넘는 사건

지난번에 동일한 저자인 누가가 기록한 두 권의 책,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선교’와 ‘초대 신앙공동체의 선교’는 서로 연속성을 갖는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해 보았다. 그들이 가진 연속성의 특징은 첫째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선교’이고, 둘째는 ‘경계를 허무는 선교’라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은 관점들은 오늘날 우리의 선교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답변이요, 근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선교에 관한 오늘의 많은 이슈들이 왜 성경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지 대한 그 당위성을 제공해 주는 일이라고 하겠다.
이어서 세 번째 특징으로 ‘환대하는 선교’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그 이전에 우선 경계를 넘는 선교의 좋은 사례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와 베드로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도행전 10장과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넬료는 이방인이고, 로마의 백부장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와 많은 선을 베풀었던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행 10:1~3). 특히 3절에서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그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라고 큰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환상이 가르치는 대로 곧바로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내었고,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온 집안 식구들, 심지어 종들까지도 함께 말씀을 듣는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이방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한 놀라운 선교적 사건이 되었고, 결국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이방 세계에 복음이 들어가게 된 중요한 ‘가교’(bridge)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넬료의 사건을 이방세계에 복음이 들어가는 선교의 관점이 아닌, 그에게 임한 성령에 관련된 일에 초점을 맞춘다든지, 혹은 베드로의 보자기 환상 사건을 정결 의식의 관점에서 본다든지 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그러니까 고넬료의 이야기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종족의 경계를 넘는 선교를 보여준 놀라운 사건인 것이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은 종족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고넬료 사건과 관련하여 두 번째는 베드로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베드로는 사도들과 유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굉장히 중대한 변화를 만나는 사건을 보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 놀라운 사건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누가는 그가 이방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 혹은 놀라운 비전을 품게 된 계기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는 베드로 개인에게 있어서 경계를 뛰어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음 두 가지 면에서 경계를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하나는 신학적인 경계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인 경계인 것이다. 차례대로 설명한다면, 먼저 신학적인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사도행전 10장 9~16절에서 그가 본 ‘보자기 환상’에 대한 사건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베드로가 속한 유대인들과 함께 이방인들도 신앙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게 하심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보자기 환상 사건을 정결 의식에 관한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은 빗나간 해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이 사건을 경험한 후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라고 고백한 것을 통해 잘 알 수가 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유대인 공동체에도 율법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새 생명을 주시겠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게 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선교의 관점에서 보는 올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베드로 개인뿐만 아니라,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유대 공동체가 이방인에 대한 선교를 크게 깨닫고, 그 문을 열게 한 이 사건은 그 당시로는 참으로 파격적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사건과 연관해, 사도행전 11장 18절에서 베드로의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자연스럽게 고백하는 것을 본다. 이렇게 사도행전 10장과 11장을 서로 연결해 볼 때, 선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매우 타당한 일이라고 본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 경계를 넘는 사건으로,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보게 된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꺼려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식탁 교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식탁 법은 유대인들이 부정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것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서 차별화되는 중요한 방어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각종 부정한 짐승들이 담긴 음식 보자기 환상을 보이시면서 ‘먹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가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완강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의 경계망 속에 철저히 갇혀 있었던 베드로가 나중에는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환대하게 되고, 그뿐만 아니라 마침내 자신이 고넬료로부터 환대를 받게 된 일은 그동안 이방인에 대해 그가 생각해 왔었던 폐쇄적인 경계심과 장벽이 더 이상 작동될 수 없는 한계임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 앞에 직면하게 된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과의 식탁 교제는 그들에 대한 경계와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그들과 함께 우정과 사랑과 교제를 나누는 한 공동체에 소속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신 것처럼 사도행전에서의 사도들도 역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눔으로써 이제부터는 그들이 주 안에서 진정 서로 함께하는 ‘환대의 공동체’가 되었음을 표방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고넬료의 이야기’와 ‘베드로의 이야기’, 이 두 가지 사건에서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미 누가복음에서 본 바와 같이 ‘경계를 허무신 예수님의 선교’의 연장선상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공동체가 이방인들에게도 역시 ‘경계를 넘는 선교’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건들은 오늘날에도 지역교회와 모든 선교사역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세계 열방과 민족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경계를 넘어 서로 ‘환대하는 마음’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신학적이든지, 혹은 사회적이든지, 인간적인 어떤 편견과 장벽이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누구든지 ‘환대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아가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말씀묵상기도]
1. 예수님의 선교와 초대 공동체의 선교, 그리고 오늘 우리의 선교가 함께 연장선상에서 이어지고, 아울러 모든 경계와 장벽을 허무는 진정한 선교가 되게 하소서.
2. 오늘도 열방을 향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환대하는 마음’을 갖고 선교하게 하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순회)선교사
GMS 이주민선교협의회 자문위원
청년인턴선교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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