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멘센 선교사의 성육신적 삶과 총체적 선교, 상황화 통해 바탁 교회 부흥
동족 선교에 집중된 것은 아쉬워, 선교적 관심 떨어진 한국교회도 성찰해야
여행은 집을 떠나는 것이므로 비록 피곤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짜릿한 맛이 있어 좋다. 그래서 삶의 활력을 위해 가끔 필요하다. 특히 선교여행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필자는 2025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간 북부 수마트라 ‘메단’에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주로 회교권인 인도네시아에서 메단은 기독교 성지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번 선교여행의 목적은 메단 지역 현지인 ‘바탁족(Batak)’을 향한 선교를 누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발자취를 추적하기 위해서이다.
◇바탁족을 향한 최초의 선교사는 누구일까?
바탁족을 향한 최초 선교사는 독일 루터란(Lutheran) 출신의 목사인 노멘센 선교사(Ludwig Ingwer Nommensen, 1834~1918)이다. 그는 56년간 선교적 열정과 희생적인 사랑과 인내로 복음을 전파했다. 나는 그가 활동했던 살리브 카시(Salib Kasih)에 ‘사랑의 십자가’(Cross of Love)라는 그의 동상과 그의 기도처가 있는 곳을 방문하고, 나도 역시 그의 기도처소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다.
그가 태어난 고향은 경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곳이었고, 경건주의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란 그는 신앙을 단순히 지식이 아닌 삶 전체의 헌신으로 여기는 태도를 가졌다고 한다. 그는 특히 모라비안 형제단의 선교 정신에 큰 감화를 받았으며, 라이프치히 선교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곳은 경건주의 훈련, 성경 중심의 삶, 타문화 존중, 장기간 머무는 인내의 훈련을 강조한 기관이었다.
그는 바탁어로 성경과 교리서를 번역했고, 그들의 가족과 마을 중심의 사회구조를 존중하며 공동체적 접근을 했다. 그래서 바탁족 추장들과 신뢰 관계를 쌓아가며 선교의 문을 열었고, 전통 권위를 대적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했다. 또한 그들 안에 자생적이고 뿌리 깊은 신앙 공동체를 세워 소위 3자 원리(자립, 자치, 자전)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노멘센 선교사는 복음의 본질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에서 찾았으며, 자신도 그 길을 따르는 삶을 철저히 했다. 즉, ‘성육신적 삶’(Incarnational Life)을 통해 복음을 전한 대표적 인물이다. 또한 학교와 병원, 농업 등 다양한 삶의 영역을 통해 복음을 전했는데 이는 현대선교에서 강조하는 ‘말씀과 삶이 함께 가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s with the Word & Life)의 선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복음을 훼손하거나 희석시키지 않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 그들의 언어와 전통 양식과 융합하고 접목시키면서 선교한 대표적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현지의 문화 속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상황화(Contextual or Indigenous Theology), 그리고 현지의 언어로 성경과 교리서를 읽고 이해시키며 해석하는 자신학화(Self-Theologizing)의 선교전략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무엇이었나?
그의 궁극적 관심은 자립적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고, 현지 지도자들을 훈련시켜 그들의 교회를 이끌게 하여 결국엔 바탁 크리스천 프로테스탄트 교회(HKBP)를 형성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목표는 단기적 개종이 아닌 지속적이고 자생적인 교회 성장이었다. 그는 장기간 현지인들과 함께 살면서 신뢰와 관계 형성을 중시하는 선교적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의 선교전략은 바탁족의 전통문화와 기독교 신앙과의 접목을 통한 것으로 공동체 회의(무소와라)와 교회 회의, 전통축제와 기독교 절기의 연결, 바탁 혈연 중심의 문화를 그리스도의 형제애와 연결하는 신앙의 형성과 확산에 있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과 현지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마침내 그는 1918년 6월 2일(85세) 독일 엘름스호른에서 주님 품에 안겼고, 사망 당시 바탁 지역엔 약 18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 34만 명의 예비신자, 그리고 수천 명의 교회 지도자가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헌신이 얼마나 깊고도 넓은지를 잘 알 수 있다.
그 후로 바탁족을 향한 선교사들의 계속적인 활동으로 지금은 바탁족의 거의 90%가 복음화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따루퉁(Tarutung)에 있는 HKBP(Huria Kristen Batak Protestan) 교단 본부를 방문했다. 시간적으로 너무 일러 사무직원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도시의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높은 언덕 위에 사무실과 직원들의 거처와 학교, 그리고 산책로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 |
시간 관계상 너무도 빠듯한 여정이라 일일이 HKBP 교회를 들릴 수는 없었지만, 평일에도 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예배드리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특히 노멘센 선교사를 비롯한 루터란 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이 얼마나 지대했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나는 HKBP 교단 산하에 있는 교회들이 지금 어느 정도 확산되어 있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인도네시아 전역에 총 교회 수는 4천 개 이상이나 되었고, 그중 대부분은 토바, 시보르가, 메단, 시안타르, 타파눌리 지역 등 바탁족이 밀집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목회자 수는 약 1,500명, 그리고 교인 수는 약 5백만 명 정도나 된다고 하니 HKBP 교단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단 중 하나이다.
특이한 점은 바탁족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탁족의 고유한 언어, 가계 중심의 가족공동체, 현지의 음악과 악기, 춤 등의 문화와 기독교 신앙을 접목하고 결합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는 메단시 중심에 있는 가장 오래된 113년의 역사를 지닌 HKBP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들 고유의 언어, 찬양, 악기 등을 사용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여기에 그들의 전통적인 춤과 음악(곤당 우갤-우갤) 등을 포함하여 예배 분위기를 더욱 현지화한다. 특히 그들의 가계 중심의 공동체의 형성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더욱 확장되었다고 한다.
◇복음과 현지 문화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복음과 문화가 만날 때 ‘문화와의 융합이 복음을 희석시키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면은 현지화된 복음 전파라는 점이다. 즉, 문화의 외적 표현은 존중하며 복음을 전하므로, 사람들이 신앙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복음의 핵심과 본질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신앙, 은혜로 인한 구원 역사를 유지하면서 형식적 요소, 즉 언어, 음악, 공동체 운영 방식 등의 문화와 융합한 것이다. 또한 바탁교회 내에서 신학 교육과 성경 중심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어서 이단적 변질 요소의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에서 일부 바탁 전통에는 조상숭배, 영혼제의 등의 요소가 있어 신앙과 혼합될 경우 주의를 요한다. 기독교적 가치보다 공동체나 가문문화, 명예의 가치가 앞설 때 이를 지키기 위해 복음 진리보다 전통을 우선시하려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메단 지역의 바탁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복음을 깊이 뿌리내리게 했지만, 항상 복음의 본질을 지키려는 긴장 속에서 신학적 분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서 중요한 것은 바탁교회들의 선교활동이다. 이 점이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바탁 중심의 교회로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크게 확장되고는 있지만, 타종족에 대한 선교는 어떤 상황일까 하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 물론 그 나름대로 ‘선교국’을 설치하여 타종족에게도 선교하면서 자바섬 대도시, 칼리만탄, 술라웨시, 파푸아 등지에도 사역을 확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바탁족이 집중되어 사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에도 HKBP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볼 때 자기 동족인 바탁족에만 집중되어 있지, 타종족에 대한 선교의 열정과 헌신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왜 그럴까? 그들에 대한 최초의 선교사인 노멘센과 같은 훌륭한 선교 정신과 헌신의 열매로 이루어진 그들 교회인데, 지금은 왜 그들의 교회가 선교적 관심과 열정이 식어졌을까?
이것이 특별히 궁금한 이유는 한국교회와 연관해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바탁교회와 거의 비슷하게, 최초에 3자 원리를 실현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희생적 사랑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부흥한 대표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노멘센 선교사와 같은 최초의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들어와 선교적 열정과 헌신과 희생으로 자란 곳이 우리의 교회들이기에 나는 더욱 이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바탁족의 교회들 곧, HKBP 교단 교회들이 선교적 열정과 헌신이 식은 이유는 별도로 좀 더 세밀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성경에 대한 선교적 해석의 부족, 영적 지도자들의 선교적 영성의 무관심, 교회론의 부족, 특히 교회의 본질과 존재 이유에 대한 해석의 결여, 그리고 선교적 삶의 훈련 부족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 상황에서도 비슷한 논리와 적용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왜 지금의 한국교회가 과거와는 달리 선교적 열정과 관심이 부족해지는 것일까? 지금의 많은 바탁족 교회들이 자기 종족에 대한 선교적 확산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많은 한국교회도 자체 유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해외선교는 제2차적으로 생각하는 상황이다. 특별히 코로나19 이후로 한국교회들은 자체 유지에만 거의 신경을 쓰는 편인 것 같고, 일부 선교계에서만 비서구권 중심의 선교나 이주민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틀리다는 말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한국교회들의 선교적 관심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회복의 대책이 좀 더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부 선교계에서만 선교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교회와 함께 선교계가 한국선교에 대해 좀 더 총체적이고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선교 회복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본다.
![]() |
그리고 메단으로 다시 와서 가톨릭의 유명한 성지 중 하나인 ‘마리아 안나 베랑카니 성당’(Graha Maria Annai Velangkanni)을 방문했다. 이에 대한 선교단상은 나중에 별도로 쓰기로 하고, 오늘은 바탁족의 선교에 대한 기록만 남기겠다.
김영휘 목사/선교사(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