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대각성운동은 새로운 세대를 신실한 성도로 만들고,
죽어가는 교회들을 복음전도와 갱신된 예배로 살려내
기독교 지형 형성은 대부분 부흥운동과 역사적 상호관계 있어
부흥운동 이후의 19세기 영국에서는 선교 기관들의 설립이 줄을 이었던 것처럼, 미국의 많은 선교단체들도 기본적으로 대각성운동의 여파로 인해 많은 해외 선교부가 설립되었습니다. 결국에는 1890년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교회의 선교 열정과 참여로 인해 매우 큰 차원에서 세계 각지에 개신교회가 새워졌고, 결국 세계교회의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점입니다. 따라서 미국 기독교는 국내외적으로 해외 선교운동 단체들, 주일학교, YMCA나 YWCA와 같은 선교자원단체, 성서공회와 구제 단체들이 국내외 선교의 매개체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마스덴이 지적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초교파 선교단체들은 다른 교파나 교단들과 협력을 통해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까지 영적 동력을 구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내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례로 영혼 구원을 향한 무디의 선교 열정이 극적으로 그의 세대에 해외 선교에 크게 동참하게 하였습니다.
무디 자신도 이를 직접 설파하던 것에서 그 일을 추진할 선교 센터 및 교육 기관들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1886년 시카고에 신학교(후에 무디신학교로 개칭, Moody Bible Institute)를 세워서 복음 사역을 위해 평신도를 훈련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한 일은 그의 고향인 메사추세츠주의 노스필드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한 점입니다. 이 선교대회가 성장하여 당시에 가장 큰 규모의 선교 운동인, 1886년 설립된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말 그대로 위대한 19세기를 장식하는 선교의 시대를 연 서사극이 되었습니다. 이 기간 수천 명의 학생이 선교사역에 헌신할 것을 서원하였습니다. 학생자원운동의 모토는 무디 자신의 목표 안에 잘 나타나는데, 그것은 “우리 시대에 온 세계 복음화를(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SVM을 통해 조선 땅에 온 선교사들이 600명이 넘었으며, 이들이 원산 대부흥과 평양 대부흥운동의 배후의 인물들이고, 한국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세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는 무디 때부터 도입된 부흥 사경회, 동기·하기 수련회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미국에서도 영국의 경우처럼 복음주의가 형성되어 교육 기관들을 설립하고 신학교와 대학의 신학부들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새롭게 시작된 대학들이 선교사와 후원자들을 공급하게 된 것입니다. 스미스(George Smith)도 이 기간 이루어진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공헌을 강조하기를, “복음주의 개신교는 많은 수의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미국인들을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으로 회심케 했던 조나단 에드워즈로부터 찰스 피니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성공적인 부흥과 각성운동이 일으킨 대 물결의 혜택 속에 만들어졌다”라고 하였습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영적 대각성운동의 결과의 영역은 새로 나온 사람들을 신실한 성도로 만드는 일뿐 아니라 복음전도와 갱신된 예배를 통해 죽어가는 교회들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마크 놀(Mark Noll)과 그의 동료들도 지적한 바와 같이 대각성운동은 미국의 식민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공적 연설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고 공적 행동의 새로운 동기와 새로운 관심을 일으켜 준 것입니다.
세계의 부흥운동
1907년 한국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운동은 한국교회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고, 이 때 시작된 새벽기도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번 시작된 부흥운동은 그 나라의 역사 속에 아직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운동이 시작되던 1900년부터 191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부흥이 일어나서 기독교 세력이 매우 미약하던 각 나라의 복음화를 촉발시켜 지금의 교회 부흥과 기독교 성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남아프리카 △동북부 인도와 남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사모아 및 남태평양 제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이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멕시코 △베네수엘라 △쿠바 △콜롬비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에서 부흥이 일어났는데,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보다 앞서서 일본에도 무려 세 차례에 걸쳐서 부흥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교회사에는 위에 제가 언급한 부흥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처럼 부흥이 확산되지 못하고 부흥의 불꽃이 꺼져버려 교회 부흥과 기독교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20세기의 부흥
20세기에는 환태평양으로 그 무게 축을 옮긴 지가 오래됩니다. 더 이상 새로운 교파나 교회가 출현하지 않은 유럽과는 달리 북미는 구 주류교단 즉 회중교회, 성공회, 루터교와 개혁교회 등이 역사의 무대에서 소수 교파로 물러나고, 부흥운동과 대각성운동을 통한 새로운 교단들이 급격하게 출현하였습니다.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을 하는 교단들, 서부 개척지의 부흥운동으로 일어난 제자교회(Disciple of Christ), 그리고 20세기에 불처럼 일어난 오순절교단들로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포스퀘어교회(Foursquare Church) 등이 그 주요한 일례들입니다. 하지만 부흥운동의 여파로 가장 크게 성장한 교단은 역시 침례교회와 감리교회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중적 형태와 문화와 함께 효과적인 지도력으로 이 두 교단은 가장 효과적인 적용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헴톤(Hempton)은 “신생교단의 놀라운 성장의 이면에는 언제나 대중 종교의 공헌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20세기 초엽부터 시작된 부흥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롭게 일어납니다. 부흥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살리는 것이기도 하기에,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러한 부흥이 다양한 모습으로 일어납니다. 기존 교단을 새롭게 하거나, 새로운 선교 운동으로 일어나거나, 교회 갱신 운동으로 구공산권의 정교회, 이집트 콥틱 정교회, 심지어는 천주교회 안에서도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이를 베이식 커뮤니티 무브먼트(Basic Community Movement)라고 하기도 합니다. 남미의 천주교회에서 해방신학이 일어났지만 그들은 이 근거를 성경을 읽는 운동으로 시작하였고,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성경을 읽다가 도리어 천주교회를 나오는 남미 부흥운동이 바로 성경읽기(base community에서 시작된)인 것이 역설이기도 합니다.
20세기의 부흥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나이지리아, 가나, 잠비아, 콩고 공화국과 같은 곳에서 일어난 ‘서아프리카 부흥’, 케냐, 우간다, 브룬디, 르완다,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동아프리카 부흥’입니다. 이 부흥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종교 지형이 바뀐 것입니다. 또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일어난 부흥으로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개신교회의 놀라운 성장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부흥의 불길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번짐으로 무슬림이 다수인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문화혁명 가운데 일어났던 부흥의 배경에는 이미 중국 공산화 이전에 일어났던 산둥성 부흥이 있었으며, 이 산둥성 부흥은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 지형의 형성은 대부분 부흥운동과 매우 깊은 역사적 상호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1970년 2월 8일에 시작된 애즈베리 부흥운동은 캠퍼스로 번져 나갔고, 그것이 70년대 히피들을 전도하여 일어난 각 대학교 부흥인 지저스 무브먼트(Jesus Movement)입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