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영적 대각성운동은 종교 부흥과 함께 사회 전반을 새롭게 변화시켜
제1차 대각성운동 여파로 세워진 미국, 기독교와 민주주의가 미국의 두 기둥

미국의 부흥운동

영적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들이 국가에 미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이 시기는 종교의 부흥(revivalism of religion)만 있었던 시기가 아닌 사회 전반을 새롭게 변화시켰던 전체적 재각성(wholistic reawakening)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브라운대학의 역사학자로 있었던 맥로플린(McLoughlin) 교수가 강조한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대각성 기간은 비록 문화적 혼돈(cultural confusion)은 있었다 할지라도, 사회적 신경증세(neurosis)를 앓는 기간은 아니었고 오히려 [전 국가적 그리고 전 사회적] 소생(revitalization)의 기간들이었다. 이 시기들은 병리(pathological)적이지는 않았지만, 치료(therapeutic)적이며, 정화(cathartic)해 주는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기독교 이상(Christian Idea)과 순수한 형식의 단서를 제공했던 초기의 청교도 정신은 18세기 들어와서는 급격히 쇠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종교적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또 다른 부흥을 갈망케 하는 대조적 현상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1740년대에 일어났던 제1차 대각성부흥운동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연합 정신을 점화했을 뿐 아니라, 어떤 종교적 또는 정치적 독재나 강압으로부터 벗어나 종교와 양심,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갈구하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각성(깨닫게, awakening)케 했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대각성운동과 독립운동은 동시에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마크 놀(Mark Noll) 교수도 이점에 있어서 말하기를, “독립운동은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데 있어서 미합중국을 기독교 이상(Christian Idea) 안에서 건국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식에 발표된 성명은 얼마나 미국의 건국이 기독교 신앙과 대각성운동의 여파로 세워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기도
▲20세기가 오기 전 일어난 세 번의 대각성운동은 개인과 공동체 등에 만연된 사회적 타락을 치료해 주었고, 영적 치료와 부흥을 갈망할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영국 식민지하에 있던 미국인들이 그들의 물질적 관심으로부터 돌아서서, [대각성운동 기간 중 보여준] 기도 가운데 하나님만을 추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료(Healing)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새로운 강성한 나라 ‘미합중국’을 탄생하도록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훈련과 연단을 받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미국 국민이 회개(Repenting)케 하시고 이를 통해 다가오는 독립전쟁의 시련을 준비하도록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한 일례로, 티콘데로가 요새(Fort Ticonderoga)를 점령했을 때, 이튼 앨런(Ethan Allen) 연대장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미국 대륙 의회의 이름으로”라는 표어를 선언하며 전쟁에 참여한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미국 국민을 치료하시고 오직 신앙 안에서 전 국민을 묶어 주었던 청교도 정신이 새로운 형태로 분명히 대각성운동 이후에 일어난 것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튼 앨런(Ethan Allen)의 선언 이후 미국은 한 문장을 더 첨가했는데, 그 문구는 “하나님 아래서 (Under God)”라는 말로, 미국 의회 개회 선언, 대통령 취임식, 대법원장 취임식 등 중요한 전반 행사 때마다 선서 되고 있습니다. 독립전쟁 이전에 있었던 회개와 치료의 사건들은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놀라운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점에서 20세기가 오기 전 일어난 세 번의 대각성운동과 미국 전 역사의 관계에 관하여 고찰해 본다면, 대각성운동은 아주 큰 규모의 혁명, 국가 팽창, 민권 투쟁, 이민과 산업화로 개인과 공동체 개체에, 그리고 뉴 잉글랜드 공동체에 만연된 사회적 타락을 치료(Healing)해 주었고, 이로 인해 영적 치료와 부흥을 갈망할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각성 부흥운동의 사회적 효과와 영향으로 뉴 잉글랜드의 사회, 공동체, 국가와 정치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청교도 정신은 제2선으로 물러나는 대신, 이제는 대각성운동의 정신과 영향이 좀 더 광범위하게 확장되는 사회 현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대각성운동을 주도했던 부흥사들은 청교도 신학과 사상을 대체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청교도 정신과 사회적 틀 속에 살던 많은 신자에게 영적 소생을 통해 실제적 삶의 변화를 주도하도록 발판을 제공하였고, 부흥사 자신들도 그러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청교도 정신이 쇠퇴함에 따라, 대각성운동의 정신이 회중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신자들의 삶을 새롭게 정화시켰으며, 맥로플린(McLoughlin) 교수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정신은 후에 심지어 침례교도, 감리교도, 캄벨교도(Campbellites), 그리스도의 제자(Disciple of Christ) 교회 신자들과 진보적, 그리고 자유주의적 개신교도들에게까지도 미국 기독교 전반에 걸쳐서 종합적으로, 그리고 전진적으로 소생케 하는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미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차별받고 핍박받으며 심지어 재산과 삶의 근거지조차 몰수당해야 했던 수많은 비국교도(Nonconformists)로서, 퀘이커교도, 침례교도, 회중교인, 모라비안, 위그노 교도, 메노나이트 교도과 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비국교도의 중심에는 광범위하게 회중 교회를 중심으로 한 청교도 정신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거의 50년 동안, 이러한 청교도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여 그들의 신앙이 회의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질 때 제1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나므로 죽어가고, 다시 냉담해지는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여러 번의 집회에서 대중 개개인의 회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인도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들의 사역은 뉴 잉글랜드와 뉴욕, 남북 캐롤라이나주들을 엮는 동부 해안선(Eastern Seaboard) 지역의 회중교인, 장로교인과 대부분의 다른 교파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된 청교도 정신, 즉 부흥운동의 필요성을 전파했다는 점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교파인 감리교회조차도 대각성운동을 통해 남부 지역에 개척되어 큰 규모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침례교회는 대각성운동의 발흥과 촉진이 없었다면 침례교회사 자체를 기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나의 종교 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과 국가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한 대각성운동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 영향과 효과를 미치고 있습니다.

제1차 대각성운동은 미합중국, 다시 말하면 미공화국이 탄생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연방을 단결하도록 하였고 잭슨파(Jacksonian)가 참여하는 민주정치의 발흥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정치에 있어서 지금의 형태인 민주당, 공화당의 양당 체제 아래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민주정치를 실현하게 했습니다. 곧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 2개의 기둥(two pillars)이 되었고, 후에는 미국이 세계에 가장 전파하고자 했던 것이 되었으며, 미국민들이 가장 자부심과 세계 평화에 공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것이 된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제2차 대각성운동은 처음에는 1790년대 조나단 에드워즈의 손자인 티머시 드와이트(Timothy Dwight, 1752~1817)가 예일대에서 시작하여 뉴 잉글랜드 전역으로 일어난 것을 시발점으로, 광범위한 켄터키와 테네시(Kentucky and Tennessee)를 비롯한 서부개척지역에 캠프 모임(camp meetings)으로 큰 영향을 끼쳤고, 남부에서는 프랜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를 비롯한 많은 순회 설교자를 통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부흥운동의 폭발은 1801년 모두 깡마른 체구를 가진 제임스 맥그레이디(James McGready, 1758?~1817)와 바톤 스톤(Barton W. Stone, 1772~1844)이 주도하고 조직한 캠프 모임으로, 처음에는 서부개척지인 켄터키(the frontier of Kentucky)의 개스퍼 강변(Gasper River)에서, 그다음에는 같은 주의 케인 리지(Cane Ridge)에서 일어났습니다.

독립전쟁 이후 일어난 이 부흥운동은 전 서부지역뿐 아니라 당시 미국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되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자칫 무법천지가 될 수도 있는 서부개척지에는 밤새도록 울려 퍼지는 찬송과 회개, 그리고 개개인의 회심으로 인해 또 다른 서부 지역에 대각성운동을 기초로 한 기독교 신앙 안에서 마을과 사회, 수많은 교육 기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미국을 준비케 한 것입니다.

대각성운동은 비단 백인교회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라 흑인들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미국 남부 지역을 휩쓴 또 다른 차원의 부흥운동은 천대받고, 강압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흑인 노예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고, 종국에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흑인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특히 미국 감리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인 프랜시스 에즈베리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흑인, 백인의 모든 설교자를 유치해서 오직 부흥과 영적대각성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남북전쟁 전후를 통해 일어난 모든 영구적 변화에는 어떤 사회의 영역이든 대각성운동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이다”라고 피시위크(Fishwick)가 단언한 것은 결코 과장의 말이 아닌 것입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부흥운동을 직접적으로 조직하고 지도자를 육성하고 가르쳐서 부흥의 불길을 확산시켰던 찰스 피니(Charles Finney)는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킨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서부 개척시대에 일어난 부흥운동의 특징 중 하나인 농촌 중심에서 이제는 도시 중심으로 대각성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다음 인물인 무디(D. L. Moody)는 새로운 미국 도시 환경에 강력하고도 실험적인 기독교가 시작되도록 한 인물인데, 그로 말미암아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이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재각성(Reawakened) 된 도시 노동자와 시민들은 성숙해졌고 그들은 새로운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미국이 세계 무대에 비로소 등장하여 산업사회와 민주정치를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세워나갈 수 있게 한 실제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맥로플린 교수는 이점에 있어서 지적하기를 “우리의 제3차 대각성운동은 불공정한 자본주의의 착취를 거부하게 했으며, [재각성된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다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복지국가의 출현으로 인도하였으며, 제4차 대각성운동[20세기 중반]은 인간의 불공정한 착취를 거부하게 하도록 방향을 제공해 주었고, 긍극적으로 인간뿐 아니라 지역적, 국제적 자연보존과 세계자원의 선택적 유용을 모두가 협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제3차 대각성운동(역사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맥로플린 교수의 개인적 견해로, 남북 전쟁 전에 일어난 기도 부흥을 제3차 대각성운동이라 말함)이 비개신교국가들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남부 유럽과 동부 유럽의 이민자들이 대량 유입하는 기간에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교(Orthodox)와 천주교(Catholic)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민자들도 복음을 들을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이들 비개신교 이민자들의 실제적 회심과 큰 은사주의 운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러 매우 큰 규모로 일어나게 됩니다. 맥로플린은 이를 제4차 대각성운동으로 명명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상 대각성운동은 제1차, 제2차 대각성운동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부흥운동으로 기술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