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캔터키주 윌모어에 있는 애즈베리대학 전경
▲미국 캔터키주 윌모어에 있는 애즈베리대학 전경
캠퍼스 부흥의 중요성

세계 부흥운동 연구에 있어서 가장 깊고도 넓은 연구 결과를 성취한 영국 웨일즈 출신의 학자 에드원 오르(Edwin Orr)에 따르면, 미국의 제3차 대각성 부흥운동 기간에 600개의 대학이 신실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19세기에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온 이들 젊은이들은 해외로 가서 타문화와 타인종, 그리고 다른 언어권에 있는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해외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학생 부흥운동과 세계선교 운동으로 이어지는 제3차 대각성 부흥운동을 살펴보려면, 바로 이전인 제2차 대각성 부흥운동의 공헌과 그 결과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는 제2차 대각성운동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1802년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시기는 광범위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지배됐거나 한때 불신앙에 지배되었던 학생들의 3분의 1이 주께로 회심했기 때문이라고 리이스(Riis)는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유럽 대부분의 대학이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의 강력한 영향 아래 세속화되면서 대학에서부터 신앙을 떠나게 되는 것과는 분명히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에드윈 오르에 따르면, 이 시기를 중심으로 조금 더 광범위하게 살펴보면 특별히 1787년부터 1830년 사이에 일어난 캠퍼스 부흥운동은 많은 수의 대학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부흥사가 직접 기독교 교육을 고양시켰고, 젊은 학생들을 훈련하고 파송하기 위해, 또한 하나님의 사역과 선교를 위해 600개 이상의 대학을 설립한 것이라고 확증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세워진 수많은 대학, 그리고 이러한 부흥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대학들이 지금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이며, 이들 대학들은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대학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미국의 해외 선교 운동은 미얀마와 인도, 아프리카, 중국 선교를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에드윈 오르의 언급처럼 캠퍼스 부흥운동의 꽃이 될 수 있는 제3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으로 급기야는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들이 오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 중에 대표적인 대학이 찰스 피니(Charles Finney)가 총장으로 사역하며 부흥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오벌린대학교(Oberlin College)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애즈베리대학도 19세 말 부흥운동의 여파로 감리교 중심이지만 초교파 대학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특히 대각성 부흥운동 이후에도 끊임없이 미국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학교들이 설립되었다는 점입니다. 그중의 한 예가 무디신학교(Moody Bible Institute)로, 한때는 미국 해외선교사의 절반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 뉴잉글랜드는 다수세계 기독교 신앙의 선교사들은 물론 그들 나라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배출한 요람과 같은 지역으로, 특히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하버드, 예일, 엠허스트, 윌리암스, 브라운, 스미스, 다트모스, 보스턴(BU), 앤도버신학교(Andover Theological Seminary, 지금의 Andover-Newton Theological School) 등과 그 외의 많은 다양한 교육기관을 통해 수없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보스턴 지역, 더 나아가서 뉴잉글랜드의 교육 기관들은 세속주의(Secularism), 자유주의(Liberalism), 동성연애의 확장, 현대주의(Modernism)와 후기 현대주의(Postmodernism)를 전파하는 안전지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18세기와 19세기의 근대 해외선교와 대각성운동을 주도하였던 뉴잉글랜드는 이제 기운이 다하여 21세기에 와서는 안락사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여집니다. 기실 보스턴시는 더 이상 선교 파송지라기 보다는 피선교지가 되었고, 유럽의 전형적인 비기독교 다수, 다인종 이민자 다수인 도시들인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 버밍엄과 같은 비기독교적 세속도시로 변모한 것입니다. 애즈베리대학의 부흥을 보면서 저는 아이비리그와 보스턴 지역의 대학에 다시금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미국에서는 여러 차례 캠퍼스 부흥을 맛보았고, 이것이 세계 복음화에 기여한 해외선교 운동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부흥

부흥은 각 시대와 상황, 그리고 부흥을 주도하는 교회나 지도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마틴 루터, 존 칼빈, 조지 팍스, 요한 웨슬레, 진젠도르프 백작, 조나단 에드워즈, 제임스 맥그레이디, 찰스 피니, 제레미아 란피에르, 드와이트 무디, 빌리 선데이, 루벤 토레이, 아터 피어슨, 이반 로버츠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부흥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부흥들이 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열매와 영향도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금 일어나는 부흥에 대한 본질과 양상, 그리고 열매에 대하여 두 가지 방법, 즉 성경과 역사상 일어난 부흥을 통해 비교해 보고 조심스럽게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제1차 부흥운동으로부터, 2차에 이르는 대각성운동, 그리고 19세기의 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부흥사들과 순회 전도자들은 복잡하지도 않으면서도 아주 단순한 형태의 설교를 통해 문화 종교의 형태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의 기독교를 강화시키는 이중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심지어는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대중을 대상하는 하는 부흥사들의 대중적 설교 형태는 많은 군중을 사로잡았는데, 이는 맥로플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러한 대중 설교를 잘한 사람들은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케네스 코플랜드(Kenneth Copeland), 지미 스웨거트(Jimmy Swaggart), 제리 펠웰(Jerry Falwell), 존 스토트(John Stott)와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등입니다. 이들은 한 지역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적 부흥운동을 주도한 설교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제1차 대각성 운동, 제2차 대각성운동, 뉴욕 기도 부흥, 19세기 말 성결 부흥운동, 무디의 부흥운동, 빌리 선데이의 부흥운동, 아주사 부흥, 그리고 애즈베리 부흥과 지저스 무브먼트(Jesus Movement)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보여 준 부흥의 양상과 열매는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회심케 하시며 삶의 변화를 주는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1970년 애즈베리 부흥에 대하여

현재 일어난 애즈베리 부흥은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언론 매체와 교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에게도 이 소식은 21세기에도 가능한 부흥의 모습에 흥분하기도 하고, 더러는 좀 더 지켜보자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다소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애즈베리대학은 요한 웨슬리에 의해 파송 된 애즈베리 감독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부흥운동으로 시작된 영국의 감리교회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84년 프란시스 애즈베리 감독과 토마스 코크(Thomas Coke)를 신대륙 미국에 보냅니다.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갓 일구어낸 신생국가인 미합중국의 각 지역을 순회 설교하며 부흥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애즈베리 감독입니다.

이때 일어난 텐트 모임, 순회 부흥회, 사경회, 속회 등이 지금의 미국 감리교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때 일어난 부흥의 역사들은 엄청났으며 이 부흥으로 수많은 도시와 타운, 학교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애즈베리대학은 애즈베리 감독의 초기 감리교 부흥운동이 한참 지난 1890년에 세워졌지만 여전히 그의 부흥운동을 기리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1970년 애즈베리대학 부흥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갖고 있지만, 지금 제가 인용할 자료는 대학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간직하고 있는 아카이브의 자료를 통해 당시의 부흥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수많은 뉴스와 저술들, 그리고 증언과 논문들 가운데 애즈베리대학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970년의 2월 8일 예배 후에 시작된 애즈베리대학 부흥(Asbury College Revival)은 185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애즈베리대학(Asbury College, 지금은 University)에서 시작된 1970년 부흥이 며칠 동안 계속되어 미국 전역의 대학교와 교회로 퍼졌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함께 찬양하며, 죄를 고백하며, 성경을 묵상하고, 놀라운 회개와 용서, 그리고 새롭게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들의 예배는 185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간헐적으로 몇 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미국 전역과 외국으로 퍼졌습니다.”(참조 https://www.asbury.edu/outpouring)

1970년 여름까지 부흥은 130개 이상의 다른 대학, 신학교, 성경 학교, 수십 개의 교회에 이르렀습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심지어 남미까지 퍼졌습니다. 예를 들어, 인디애나주 앤더슨에 있는 메리디안 스트리트 처치 오브 갓(Meridian Street Church of God)에서 몇몇 애즈버리대학 학생들이 간증을 했을 때, 교회는 연속해서 50일 동안 자발적인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인디애나 신문에서 오려낸 오래된 기사에 따르면 앤더슨 교회는 곧 너무 붐벼서 예배를 학교 체육관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밤에 최대 2,500명의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기를 바라며 체육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교회사가인 마크 놀(Mark Knoll) 교수는 애즈베리대학 부흥이 대규모 신 오순절 운동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시에 애즈베리대학만 이 부흥을 맛본 것이 아니고, 미국 전역에 일어난 부흥운동 현상의 동시대적 역사였다는 것이 마크 놀 교수의 평가입니다. 위의 사항이 1970년 2월 8일에 일어난 애즈베리대학 부흥의 요체입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