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언급하기에 앞서 성경이 말하는 부흥을 살펴봐야
과거 부흥을 말할 때 현재에도 동일한 부흥 일어날 수 있어17세기 청교도에 의해 ‘부흥’ 용어 처음 등장, 18세기에 대중화
부흥의 본질은 죄인을 회개케 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는 것
들어가는 말
저에게 많은 분이 애즈베리대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에 대하여 물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부흥이나 언론이 말하는 부흥이 아니라 “김종필 목사는 애즈베리의 부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좀 더 시일이 지나고 종합적으로 애즈베리 부흥 리포트를 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의 요청에 의해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제가 앉자마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애즈베리대학의 부흥을 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부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흥의 시작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그 기원이며, 이는 교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살아있는 교회를 예루살렘뿐 아니라 로마 제국 곳곳에 세우게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이 말하는 부흥이 단순히 그냥 말하는 부흥이 아니라, 구약 성경으로부터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었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그 약속대로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실제적인 부흥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무엇인지를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말씀하신 부분이 2천 년 교회사가 가운데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곧 △부흥의 정의 △성경이 말하는 부흥 △성경의 부흥 어원들 △부흥의 케이스로 살펴본 성경의 부흥 △부흥이 일어난 실례로 본 성경과 역사상 부흥 △회복, 각성 등 다양한 어원과 유사 어휘들을 통해 살펴본 성경의 부흥 △성경이 말하는 종교개혁(Reformation) △갱신운동(Renewal Movement) △성전 개혁(Temple reformation) △종말론적 사건으로서의 부흥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메시아적 예언의 성취)으로서의 부흥 △예수님의 비유와 가르침으로 나타난 비유 △사도행전 오순절 사건을 통해 나타난 부흥 △신약 성경에 나타난 부흥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부흥 등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부흥을 통해 부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신학대학원 강의 두 학기 분량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제가 성경이 말하는 부흥에 대하여 두 학기를 가르쳤어도 다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심원합니다. 제가 부흥에 대하여 대학원 수준으로 충분히 강의해야 한다면 10과목이어도 부족합니다. 그토록 부흥에 관한 강의는 방대합니다. 실제로 제가 성경이 말하는 부흥만을 강의한다 해도 4과목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부분적이지만, 그래도 핵심에 해당하는 사항을 말하고자 합니다.
부흥은 성경을 기원으로 해서 교회사 가운데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교회사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이 교회사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만들었으며, 이 부흥으로 말미암아 많은 교단이 탄생했습니다. 더불어 부흥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표현과 상황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교회사의 부흥은 △초대교회의 부흥 △중세 시대의 부흥 △부흥운동으로서의 종교개혁 △유럽의 부흥운동 △미국의 부흥운동 △20세기의 부흥운동 △캠퍼스 부흥운동 △1970년 애즈베리대학 부흥 △2023년 애즈베리 부흥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흥의 정의
웨일즈의 저명한 부흥에 관한 교회사가인 에드윈 오르(Edwin Orr)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말하고 반복해서 다시 말할 때마다 신실한 중보 기도자들의 기대와 또 다른 부흥을 준비하는 일에 재각성해주는 전례가 있음을 교회사는 보여 주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전에 일어난 부흥을 말해 줄 때마다 지금 현재에도 동일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부흥과 더불어 역사상 일어난 부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부흥은 복음주의적 각성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갖는데, 이전의 종교적 비활동 상태에 있는 회심하지 않은 비신자가 신앙의 생명으로, 그의 신앙고백과 회개로 이어짐을 의미합니다.
에드윈 오르는 복음주의적 각성과 부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1. 신적 영감, 성경의 권위와 충분성, 그리고 해석에 관한 개인의 심판의 권리와 의무
2. 3위 일체의 인격성 안에서 성부의 부성의 통일성
3. 타락을 불러일으키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
4. 성자의 성육신과 죄인을 위한 그의 속죄 사역과 그의 중보 기도와 다스림
5. 오직 믿음에 의한 죄인의 칭의
6. 죄인의 회심과 성화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7.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과 세상을 심판하심, 의인들의 영원한 축복, 사악한 자들의 영원한 심판
스티브(Mark Stibbe)에 의하면, “부흥의 목적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정을 잃어버린 어떤 시점과 장소에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던컨 캄벨(Duncan Kampbell)은 “교회는 복음전도적이지 않고도 자주 복음주의적이다!(The Church has been often been evangelical without being evangelistic!)”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잃은 자를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깨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긴박하게 필요로 하는 잃은 자를 구하기 위함이 부흥의 본질입니다.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도 있겠지만 부흥의 본질적 의미는 죄인을 회개케 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흥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청교도에 의해서였습니다. 신대륙은 근대부흥 운동의 요람지였습니다. 1662년 헨리 베인(Henry Vane)이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The Great Work of Christ in America, Magnalia Christi Americana)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급하고 비상한 부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것을 청교도인 카튼 마터( Cotten Marther, 1663~1728)가 인용하면서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가 그의 저서 ‘겸손한 시도’(An humble attempt to promote explicit agreement and visible union of God's people in extraordinary prayer for the revival of religion, 1747)에서 부흥을 성령의 ‘흘러 들어옴’(effusion) 또는 ‘부어 주심’(outpouring) 등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18세기에 대중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