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애즈베리대 부흥은 부흥 주역들이 즉각적 회개와 중생, 성령 세례 받도록 설교
2023년 애즈베리대 부흥은 주인공 없고 오직 찬양과 기도, 성령 임재와 죄 고백 있어

애즈베리대학
▲애즈베리대학 채플실에서는 공식적으로 지난 2월 8일부터 24일까지 16일간 24시간 예배가 드려졌다. 당시 채플실에 너무 많은 젊은이가 몰려들자, 야외에서 학생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대기했다.
1970년 애즈베리 부흥에 대하여

애즈베리 부흥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언론 매체와 교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에게도 이 소식은 21세기에도 가능한 부흥의 모습에 흥분하기도 하고, 더러는 좀 더 지켜보자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다소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애즈베리대학은 요한 웨슬리에 의해 파송된 애즈베리 감독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부흥운동으로 시작된 영국의 감리교회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84년 프란시스 애즈베리 감독과 토마스 코크(Thomas Coke)를 신대륙 미국에 보냅니다.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갓 일구어낸 신생국가인 미합중국의 각 지역을 순회 설교하며 부흥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애즈베리 감독입니다.

이때 일어난 텐트 모임, 순회 부흥회, 사경회, 속회 등이 지금의 미국 감리교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때 일어난 부흥의 역사들은 엄청났으며, 이 부흥으로 수많은 도시와 타운, 학교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애즈베리대학은 애즈베리 감독의 초기 감리교 부흥운동이 한참 지난 1890년에 세워졌지만 여전히 그의 부흥운동을 기리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1970년 애즈베리대학 부흥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갖고 있지만, 지금 제가 인용할 자료는 대학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간직하고 있는 아카이브의 자료를 통해 당시의 부흥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수많은 뉴스와 저술들, 그리고 증언과 논문들 가운데 애즈베리대학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970년의 2월 8일 예배 후에 시작된 애즈베리대학 부흥(Asbury College Revival)은 185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애즈베리대학(Asbury College, 지금은 University)에서 시작된 1970년 부흥이 며칠 동안 계속되어 미국 전역의 대학교와 교회로 퍼졌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함께 찬양하며, 죄를 고백하며, 성경을 묵상하고, 놀라운 회개와 용서, 그리고 새롭게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들의 예배는 185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간헐적으로 몇 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미국 전역과 외국으로 퍼졌습니다.”(참조 https://www.asbury.edu/outpouring)

1970년 여름까지 부흥은 130개 이상의 다른 대학, 신학교, 성경 학교, 수십 개의 교회에 이르렀습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심지어 남미까지 퍼졌습니다. 예를 들어, 인디애나주 앤더슨에 있는 메리디안 스트리트 처치 오브 갓(Meridian Street Church of God)에서 몇몇 애즈버리대학 학생이 간증했을 때, 교회는 연속해서 50일 동안 자발적인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인디애나 신문에서 오려낸 오래된 기사에 따르면 앤더슨 교회는 곧 너무 붐벼서 예배를 학교 체육관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밤에 최대 2,500명의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기를 바라며 체육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교회사가인 마크 놀(Mark Knoll) 교수는 애즈베리대학 부흥이 대규모 신 오순절 운동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시에 애즈베리대학만 이 부흥을 맛본 것이 아니고, 미국 전역에 일어난 부흥운동 현상의 동시대적 역사였다는 것이 마크 놀 교수의 평가입니다. 위의 사항이 1970년 2월 8일에 일어난 애즈베리대학 부흥의 요체입니다.

애즈베리 감독과 부흥운동의 관계

이 부흥운동은 미국 내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므로 역동적인 미국 종교 지형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교구 신부나 목사들의 전통적인 목회 방식들은 교구 신도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으나, 새로운 타입의 목회 방식들은 매력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흥사와 순회 전도자들이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며 대중적인 방식으로 전도와 설교를 하였기에 직접 회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에 나오는 기존의 교인뿐만 아니라 교회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다시 말하면 마을 사람들, 농부와 도시 거주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즉각적인 회개와 중생,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는 등 새로운 신자나 기성 교인들이 성령이 주시는 갱신의 체험을 하도록 설교하는 대각성 운동의 접근 방식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를 비롯하여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점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평가한 마크 놀(Mark Noll)은 “이들 복음 전도자들이 했던 것들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즉흥주의(immediatism)가 종국에는 기독교 사상을 형성하는 데 심오한 영향을 준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23년 애즈베리대학의 부흥

애즈베리대학의 부흥은 미국의 모든 주요 신문, 방송,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에서 대서특필했습니다. 유튜브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예배와 현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쏟아 냈고, 이 모든 것을 소화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정리한 크리스채니티 투데이의 기사는 ‘No Celebrities Except Jesus’라는 머리글로 시작합니다.(참조 https://www.christianitytoday.com/news/2023/february/asbury-revival-outpouring-protect-work-admin-volunteers.html)

예전의 부흥운동에는 부흥운동의 주역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지 휫필드, 요한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등등입니다. 이러한 주역들을 요즈음 말하는 연예인으로 빗댄 것입니다. ‘애즈베리대학 부흥에는 유명인도 없고, 탁월한 설교가도 없고,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이보다 더 놀라운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부흥이라는 역사 아래 화려한 찬양팀, 뛰어나고 놀라운 음악, 무대 장치, 심금을 울리는 설교, 그리고 그것을 생중계하는 방송 매체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1980년 채널만 틀면 화려한 언변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미국의 방송 설교자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애즈베리에는 그러한 요소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채니티 투데이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수요 예배 이후 계속 자발적 기도에 대하여 토요일에 이르기까지 애즈베리대학(Asbury University) 당국은 부흥을 위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애즈베리대학교는 성령의 부어주심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슈퍼볼이 열리기 며칠 전인 2월 첫째 주 중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관리자, 직원, 교직원, 친구, 대학 이웃이 즉석에서 혼합되어 빠르게 동원되었습니다. 그들은 휴 대강당(Hughes Auditorium) 옆에 있는 수납장에 모여 교실을 용도 변경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촉진하고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입소문이 나자 군중이 몰려들고 이것이 ‘진정한’ 부흥인지에 대한 논쟁이 온라인에서 격렬해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음식과 물, 화장실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일했습니다. 부흥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 일부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들어간 거의 보이지 않는 작업입니다.

케빈 브라운 애즈베리대학 총장은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인터뷰에서 ‘이 서비스를 즉석에서 작동시키기 위해 한 번에 10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부흥은 2월 8일 예배당 예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교단체 엔비전의 지도력 개발 코디네이터이기도 한 축구 보조 코치인 제크 미어크립스(Zach Meerkreebs)는 행동으로 사랑이 되는 것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의 본문은 로마서 12장이었습니다. 그의 설교 이후 흑인 가스펠 트리오가 마지막 노래를 불렀고 예배당은 끝났지만 18명에서 19명의 학생이 남았습니다. 몇 명은 오른쪽 벽을 따라, 몇 명은 좌석에, 몇 명은 통로 바닥에, 몇 명은 무대 아래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간절히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회개와 죄에 대한 통회를 표현하고 치유, 온전함, 평화, 정의를 위해 중보 기도했습니다.”

CNN이든 주류 방송 매체이든 어떤 신문이든 위의 내용과 매우 비슷하게 보도하고 있고, 여기에 매우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의 간증들이 인터뷰로 채워졌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계속 이어지면서 미국 전역에 이 소식이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일 저녁에는 스탠딩룸만 있었지만, 이후 애즈베리대학뿐 아니라 켄터키대학교, 컴벌랜즈대학교, 퍼듀대학교, 인디애나웨슬리안대학교, 오하이오기독교대학교, 트란실바니아대학교, 미드웨이대학교, 리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마운트버논나사렛대학교에도 애즈베리대학과 동일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들이 쏟아졌습니다. 특별하다면 매우 특별하겠지만 이전의 대각성 운동이나 대부흥운동에 견주어 보면 매우 평범한 애즈베리 부흥에 대하여 수많은 신학적 논쟁과 토론이 계속됐습니다. 그중에 가장 논점이 되는 것이 바로 다음 내용이었습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