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운동은 경건주의운동과 더불어 17, 18세기의
영적대각성운동을 일으키는 역할 감당1차 대각성운동은 근대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모델
웨일즈는 1760년부터 1860년까지 열다섯 번 주요한 부흥 발흥19세기 초중반 미국 2차 대각성운동, 북아일랜드 부흥운동,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부흥운동… ‘부흥운동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
중세 시대의 부흥이 종교개혁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교황청의 타락과 천주교회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성경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을 지킨 신앙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왈도파를 비롯해 실제적으로 유럽 각지에서 일어났던 중세 시대 부흥의 현장들을 대부분 방문 답사하여 조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대한 저의 연구 조사가 책으로 편집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흥이 하나의 뚜렷한 신앙운동으로 교회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은 신앙을 재발견한 일종의 신앙의 각성운동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전통이 아닌 성경과 교부들을 연구하면서 하박국이 언급하고, 바울이 재확인하고, 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이 확신했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 부흥을 회복할 수 있는 신앙적 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사에서는 종교개혁을 부흥운동으로 기술합니다. 천주교회로부터, 타락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그리고 성인축제일과 수많은 비성경적 교리로부터 성경과 오직 믿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부흥의 핵심이기에 종교개혁의 리포메이션(Reformation)은 부흥으로 간주합니다.
유럽과 미국의 부흥운동
부흥운동이 현대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청교도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었고 인간의 구원은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룩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철저한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은 이들이 강조한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는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 대해 여과 없이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회심 받지 못한 자에 대한 초청(A Call to the Unconverted)’에서 리차드 백스터는 “악인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하나님의 법이다”고 외쳤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한 성령의 역사에 의한 영적각성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청교도운동은 경건주의 운동과 더불어 17세기와 18세기 영적대각성운동을 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17세기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좀 더 강력한 형태의 영적각성운동의 성격을 띠며 발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지 휫필드와 하월 해리스의 웨일즈 부흥운동, 1734~1736, 1740~1742년 사이에 발흥한 1차 대각성운동은 이전의 크고 작은 부흥운동이 하나로 엮어져 폭발한 성령의 강력한 역사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 길버트 테넨트, 조지 휫필드, 프릴링휘슨 등이 중심이 된 1차 대각성운동은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어난 근대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모델이었습니다. 1차 대각성운동 때 성령의 역사를 잘 정리하여 출판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놀라운 회심의 이야기는 부흥운동의 발단, 진행, 결과들을 너무도 선명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 시대 부흥운동은 “명백한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부흥운동이었습니다.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은 웨슬리 부흥운동의 발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이후 1790년까지 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전역의 영적각성운동으로 계속되었습니다. 1730년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부터 웨슬리 부흥운동이 정리되는 1790년까지의 기간은 “넓은 안목으로 보면 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발흥한 가장 강력한 부흥운동 가운데 하나는 1745년 웨일즈 부흥운동일 것입니다. 1745년의 부흥운동이 발흥한 후 웨일즈에는 18세기 중엽부터 강력한 부흥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능력의 세례’를 받은 하웰 해리스(Howell Harris)와 다니엘 로랜드(Daniel Rowland)에 의해 1735년 웨일즈에서 발흥한 부흥운동은 참으로 큰 부흥이었고,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부흥운동 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에서는 부흥운동이 계속되었습니다. 1800~1830년까지 미국에서는 2차 대각성운동이 발흥했고, 1858년 북아일랜드에서는 놀라운 부흥운동이 발흥하여 그 이듬해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1858~1859년 사이에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서도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웨일즈는 부흥운동이 지속적으로 발흥하였던 영적각성운동의 진원지였습니다. 1760년부터 1860년까지의 기간에 웨일즈에서만 열다섯 번의 주요한 부흥이 발흥했습니다. 그후 디 엘 무디의 부흥운동, 1903~1904년의 웨일즈 부훙운동, 1905~1906년의 인도부흥운동, 1903~1907년 평양대부흥, 그리고 1908년 중국부흥운동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독교 역사 속에서 부흥은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1987년 로이드 존스는 그의 작품 ‘청교도들(The Puritans)’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교회의 진행과 발전 역사는 주로 부흥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이러한 비범하고 예외적이며 이적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의 일을 지키시고 발전시키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만으로도 그 사실을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할 수 있음을 나는 역설한다.”
1905년 프랭크 버드슬리(Frank G. Beardsley)가 자신의 저서 ‘미국 부흥의 역사(A History of American Revivals)’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부흥운동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것은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유럽은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등 셀 수도 없이 부인할 수 없는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아서 이러한 역사를 배우는 학과목이 4과목 또는 8과목으로 다루어도 다 다루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교단이 대부분 부흥운동으로 시작되었거나 아니면 새롭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웨슬리의 감리교회, 퀘이커(지금은 가장 liberal 한 교단으로 바뀜), 유럽 대륙의 재침례파와 침례교회, 모라비안 형제단, 메노나이트, 그리스도의 제자교회(Disciple of Christ), 회중교회, 미국 감리교회, 미국 침례교회, 미국 대부분의 흑인교회(미국의 모든 흑인교회는 부흥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음), C&MA(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하나님의 성회, 포스퀘어 복음교단, 웨슬리안 감리교회,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등 유럽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 중 기존 교단들 대부분이 부흥운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미국 교회만을 따로 떼어 내어서 미국의 부흥운동을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