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우남 이승만, 아펜젤러 선교사
▲왼쪽부터 우남 이승만, 아펜젤러 선교사
우남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를 만났다. 불행하게도 아펜젤러는 우남이 한성감옥에 있었던 1902년 6월 11일 성서 번역 위원회(실행위원 공동회)에 참석차 목포로 가던 중 불의의 선박 충돌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안식하였다. 그러나 아펜젤러가 살아있는 동안 특별히 우남이 배재에서 공부하는 시기 우남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를 가르치고 기독교 신앙과 서구식 민주주의 사고를 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남이 감옥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서를 넣어주었다. 또 그의 석방을 위하여 애쓸 뿐만 아니라 우남의 가족까지 돌보아 준 고맙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요, 스승이었음을 남겨진 여러 문헌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아펜젤러는 자신의 일기에 우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이 글은 우남이 한성감옥에 갇힌 후에 아펜젤러가 자신의 일기장에 남긴 글이다. 제자를 생각하면서 기록한 이러한 글을 통하여 우리는 스승인 아펜젤러가 우남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리고 제자인 우남이 스승 아펜젤러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될 우남의 사상(思想)과 인격(人格)에 큰 영향을 준 우남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오늘 이승만에게 편지를 받았다. 그는 약 11개월 전에 서울에서 스크랜턴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가 체포되었다.1) 만민공동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권력자들을 공격하는 바람에 사복형사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그의 체포는 외국인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풀려 나올 무렵에는 탈옥하라는 설득을 받았으나 도망하는 데 실패하여 다시 감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성탄절에 나는 침구를 약간 보냈는데 아래와 같은 답장을 받았다.”2) <계속>

[미주]
1) 이정식의 책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에는 이 때 동행한 의사는 스크랜턴이 아니라 (1949년 Robert T. Oliver가 가진 신흥우와의 면담에 근거)하여 의사 셔먼(Harry C. Sherman)과 동행하다가 체포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2) 김석영,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 p, 172.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