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본문
요한복음 6장 66–71절
서론
1. 기적의 자리에서 떠나는 사람들
요한복음 6장은 기적과 환호로 시작했지만, 슬픈 결말로 끝납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사건 후 수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이분이라야 우리를 배불리 먹이실 메시아”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요 6:51) 그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배부름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영혼의 배고픔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은 눈앞의 떡은 이해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
그들의 반응은 지금 우리 세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많고, 예배는 풍성하지만, 말씀 앞에서는 쉽게 상처받고 떠납니다. 그들은 “기적의 예수”는 좋아했지만, “십자가의 예수”는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6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제자인가? 이해되지 않을 때 머무는 사람인가, 떠나는 사람인가?”
본론
2. 영생의 본질 ― ‘시간이 아닌 관계’로서의 생명
“영생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영생’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영생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이 바로 영생입니다.
따라서 “영생의 말씀”은 단순히 오래 사는 비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말씀,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연결시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27–28절은 말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이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즉, 영생은 하나님과의 동행 속에서 지속되는 생명입니다. 시간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 그분과 함께 걷는 삶이 영생입니다.
3.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신앙의 장애물
예수님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요 6:61) 이 ‘걸림’은 단순히 불쾌하다는 뜻이 아니라, 신앙이 무너지는 시험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요 6:53)고 하셨을 때, 그들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신성모독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즉,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비추실 때, 기록된 말씀(로고스)이 지금 내게 들리는 말씀(레마)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음성입니다. 성령이 조명할 때 그 말씀은 내 영혼에 생명력을 일으킵니다.
4. 성령이 마음을 여실 때 ― 말씀이 생명으로 들린다
부활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5) 이 구절은 성령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단지 감정을 뜨겁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닫혀 있던 마음의 눈을 여시고 말씀을 이해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말씀이 마음으로 들어오는 과정에는 세 가지 영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겸손한 마음입니다. 자기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고, “주여, 제 마음을 부드럽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때 성령은 닫힌 마음을 녹이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약 4:6)
둘째, 의존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이해된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영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 16:13)고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가 없으면, 말씀은 머리에 머물 뿐입니다.
셋째, 순종의 결심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알리라.”(요 7:17) 하셨습니다. 즉, 이해하고 나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려는 마음이 이해의 문을 엽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 됩니다.
5. 베드로의 고백 ― 이해보다 신뢰로
모두가 떠나는 그때,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나이다.”(요 6:68–69) 그의 고백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믿고 알았다’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세상은 “알면 믿겠다”고 하지만, 신앙은 “믿으면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신뢰하는 힘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어려움보다 그분의 인격을 신뢰했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떠나지 않게 했고, 후에 그는 “주의 말씀이 영생의 말씀”임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6. 믿음 없는 신앙 ― 유다의 경고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요 6:64) 그리고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그분이 가리킨 이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를 따랐지만,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믿었지만, 말씀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앙은 머리에 있었으나, 마음에는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신앙이 있습니다. 예배에는 참여하지만,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 그들은 ‘믿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을 신뢰합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신앙은 결국 흔들립니다. 그러나 말씀 위에 세워진 신앙은 폭풍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7. 영생의 말씀의 능력 ― 살리고, 변화시키고, 영원히 남는다
첫째, 살리는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 영생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다시 일으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둘째,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히 4:12) 그 말씀은 우리의 사고, 감정, 태도를 새롭게 만듭니다. 한 구절의 말씀이 인간의 인생 전체를 바꾸는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셋째, 사라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넘어 지속됩니다. 세상 말은 소리처럼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 속에 새겨집니다.
적용
8. 떠나는 시대에 머무는 결단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야 합니다.
* 말씀을 들을 시간을 구별하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하루의 일과 중 잠깐이라도 말씀을 듣고 묵상하십시오.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지탱하는 생명의 호흡이 됩니다.
* 말씀에 순종하라: 야고보서 1장 22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순종 없는 신앙은 생명이 없는 신앙입니다.
* 말씀으로 기도하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말씀을 읽고 기도로 연결하십시오. 기도는 말씀을 현실로 이끄는 통로입니다.
* 공동체로 붙들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함께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는 신앙을 지켜주는 울타리입니다.
결론
9. 떠나는 세대 속에 머무는 믿음
요한복음 6장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첫째,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는 이유로 떠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보다 순종의 영역입니다. 둘째, 말씀보다 환경을 더 신뢰하고 있지 않은가? 기적보다 말씀이 크고, 감정보다 진리가 깊습니다. 셋째, 주님께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가? 베드로처럼 실수했더라도 말씀 앞에 다시 서면, 그곳이 회복의 자리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베드로의 고백으로 답해야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마무리 기도
주님, 떠나는 시대에 저희가 말씀에 머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음을 믿습니다. 세상의 소리보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기적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가는 믿음을 주옵소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고, 겸손과 순종으로 주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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