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깃드는 나무

제목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방식

본문
마가복음 4장 1–9절, 14–20절

서론

Ⅰ. 결실의 계절, 그러나 빈 그물의 시간

결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가을은 한 해의 결산이자 영적 성찰의 시간입니다. 밭은 모두 동일한 햇살과 바람, 비를 받았지만 결실은 다릅니다. 어떤 밭은 금빛 곡식으로 출렁이지만, 어떤 밭은 잡초와 메마름만 남습니다. 이것은 단지 농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과 신앙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말씀의 씨를 뿌리고 가꾸었는가? 하나님은 은혜의 비를 고르게 내리시지만, 모든 인생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을 때,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 차고, 배가 잠길 만큼의 결실이 나타났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어떤 사람은 인생의 그물이 찢어지도록 열매를 얻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빈 그물을 올리는가?” 예수님은 그 해답을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속에 담으셨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밭은 사람의 마음이니라.”(막 4:14) 씨는 동일하지만, 밭이 다르면 결실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그러나 그 말씀의 생명이 내 안에 뿌리내리려면, 먼저 마음의 밭이 기경되어야 합니다.

본론

Ⅱ. 말씀은 씨, 우리의 마음은 밭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막 4:14) 즉, 씨에는 이미 생명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씨가 아니라 밭의 상태, 즉 우리의 내면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농사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경작하시는 원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밭으로 보십니다. 그분은 밭의 넓이를 보지 않으시고, 밭의 상태를 보십니다.

1) 길가 같은 마음 ― 닫힌 심령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더라.”(막 4:4) “사단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곧 빼앗나니.”(막 4:15) 길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며 밟힌 땅입니다. 단단하게 굳어 씨가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오랜 상처, 반복된 좌절, 냉소적 습관으로 인해 마음이 닫히면 말씀은 귀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오갑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대충 듣자.”, “그건 목사니까 할 수 있지.” 이 순간, 말씀의 씨는 마음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사단이 와서 빼앗아 갑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첫 결실은 마음의 개방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 3:15) 하나님은 부드러운 마음을 찾으십니다. 기도는 땅을 기경하는 쟁기요, 회개는 굳은 흙을 부드럽게 만드는 비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렘 4:3)

2) 돌밭 같은 마음 ― 감정은 있으나 뿌리는 없음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더라.”(막 4:5–6) “말씀을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 곧 넘어지는 자요”(막 4:16–17)

돌밭은 흙이 얕아 뿌리가 내릴 공간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싹이 빨리 나지만, 속은 단단한 암반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쉽게 반응하지만, 실제로는 뿌리가 없습니다. 부흥회나 수련회 때 결단했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동은 순간적이지만, 뿌리는 지속적입니다. 감정은 변화의 불씨를 주지만, 뿌리는 인내의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거한다는 것은 잠시 스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입니다. 하루 한 구절이라도 꾸준히 붙드는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에 뿌리내린 자만이 시련의 태양을 견딥니다.

3) 가시떨기 같은 마음 ― 염려와 욕심에 질식한 신앙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막 4:7)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니라.”(막 4:19) 가시는 죄라기보다 너무 많은 것입니다. 너무 많은 생각, 너무 많은 걱정, 너무 많은 계획이 하나님 말씀의 여백을 잠식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악이 아니라 분주함입니다. 분주함은 영혼의 산소를 빼앗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염려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재물은 종이어야 하는데, 주인이 되면 영혼이 질식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가시를 제거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우선순위를 회복하는 것.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4) 좋은 땅 ― 듣고, 지키고, 인내로 결실하는 마음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느니라.”(막 4:8)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좋은 밭은 처음부터 좋은 것이 아닙니다. 길가처럼 굳은 땅을 갈아엎고, 돌을 치워내며, 가시를 뽑아낸 사람의 마음이 좋은 밭입니다. 말씀을 듣고, 붙들고, 인내할 때 비로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좋은 밭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① 듣는 마음 —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태도

② 지키는 믿음 —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

③ 인내의 영성 — 보이지 않아도 기다리는 신뢰

결실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오랜 순종의 누적에서 피어납니다.

Ⅲ. 본질이 변해야 열매가 변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7) 열매는 본질의 결과입니다. 겉모습의 변화는 잠시지만, 본질이 변하면 삶 전체가 바뀝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좋은 나무’는 단순히 착한 성품이 아니라 거듭난 존재를 뜻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것이 본질의 전환, 곧 거듭남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열매의 본질도 달라집니다(요 3:5). 성령이 내주하시면, 우리의 세상적인 가치관이 하나님 중심인 성경적 가치관으로 재편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Ⅳ. 하나님은 씨를 뿌리시고, 우리는 밭을 준비한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막 4:26–27) 신앙의 성장은 신비입니다. 사람은 씨를 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3:6). 우리의 역할은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싹 — 이삭 — 충실한 곡식(막 4:28). 듣는 단계, 순종의 단계, 열매의 단계가 있습니다. 이 과정은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한 때에 추수하십니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 4:29)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말씀의 씨는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입니다.

Ⅴ. 겨자씨의 비유 ― 작은 시작, 큰 결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심길 때에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라면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되느니라.”(막 4:31–32)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크게 자라납니다. 말씀 한 구절, 기도 한 문장, 눈물 한 방울의 헌신이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역사가 됩니다. 가정의 기도가 회복되고, 교회가 살아나며, 도시의 영혼이 변화됩니다. 믿음은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작은 순종의 누적입니다. 작은 결단이 모여 큰 열매가 되고, 작은 뿌리가 모여 큰 나무를 만듭니다. 하나님은 작게 시작하지만, 결코 작게 끝내지 않으십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 산을 옮기듯(마 17:20), 작은 믿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결론

Ⅵ. 결실의 원리

결실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씨를 뿌리시고, 우리는 밭을 준비한다. 그분은 언제나 말씀의 씨를 심으십니다. 우리의 역할은 마음을 기경하고, 말씀을 붙들며,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 마음의 밭은 어떤가요? 굳은 길입니까, 얕은 돌밭입니까, 가시가 무성한 밭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부드러운 좋은 밭입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묻고 계십니다. “내가 너에게 뿌린 씨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느냐?” 그 질문 앞에, 마음을 갈아엎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결실의 계절은 반드시 옵니다. 지금은 씨 뿌리는 때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밭에서 반드시 열매를 찾으실 것입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제 마음의 길가를 부드럽게 갈아엎어 주소서. 돌처럼 단단한 자존심을 깨뜨려 주시고, 가시 같은 욕심을 뽑아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깊이 뿌리내려 인내로 열매 맺게 하소서.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말씀이 자라고 있음을 믿게 하시며,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