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선교적 시각으로 보기
성경: 누가복음 4장 18~19절 제목: ‘예수님의 포괄적인 선교’

이번에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한 저자인 누가가 기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한 권의 책만 다루기보다는 사도행전의 내용과 함께 다루고자 한다. 왜냐하면 동일한 저자가 기록했기 때문에 한 책만 다루기보다는 함께 다루면 보다 연속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포괄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묵상하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선교에 있어서도 이런 포괄적이고 연속성이 있는 자세가 늘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저자는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신 가운데서 절정을 이루게 된 것을 누가복음에서 기록하였다. 더 나아가 선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신 지상교회의 가장 최초인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과 성장과 확장 가운데서 계속 전개해 나간다는 사실을 그의 책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두 권의 책, 즉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연속적이고 총체적인 선교의 안목을 가져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점에 대해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선교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이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가운데서 계속적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이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가 무엇이며, 또한 하나님의 선교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포괄적인 안목에서 살펴볼 때, 우리는 다음 3가지 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교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온전한 복음이란 인간의 전인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선교는 반드시 지상교회와 연결되어 있으며 교회와 선교, 선교와 교회, 이 둘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하나가 되어 인간적인 모든 경계를 부수고 모든 사람에게 함께 나아간다는 점이다. 즉, 선교와 교회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단순한 말이나 어떤 구호가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한편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 곳은 반드시 선교의 확장이 있어야 함을 누가는 말해주고 있다.

셋째는 하나님의 선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성령의 사역이고 인도하심과 역사라는 점이다. 즉, 사람이나 교회나 선교단체나, 그 어느 것의 역사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단정하고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특히 선교의 관점에 대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결하여 깊이 연구하고 묵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이며, 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면에서, 그리고 균형을 잃지 않고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선교사역에 있어서 흔히 잘못될 수 있는 문제는 어느 한쪽으로만 편중된 선교, 혹은 왜곡된 선교, 그러니까 균형을 잃은 선교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동시에 연속하여 묵상하게 될 때, 보다 균형이 있고 총체적이며 다양하고 포괄적인 선교의 안목을 갖게 된다.

이처럼 개괄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다음 여기서는 먼저 누가가 지적한 대로, 그 첫 번째인 하나님의 선교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선교가 매우 포용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알 수 있다. 본문 18절과 19절을 다시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선교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목적을 어떻게 수행하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바, 그것은 포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라는 표현들은 육신적인 의미 외에도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상당히 포괄적인 뜻이다. 또한 예수님은 이처럼 영육의 문제를 안고 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선포할 신적인 위임을 받으신 분이라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가난한 자’란 단순히 경제적인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고 육체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변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선교는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선교가 된다는 말이다.

또한 ‘자유’란 단순히 육체적인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구조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선교에 있어서 ‘자유’라는 좋은 소식은 보다 폭넓은 영적인 차원을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주의 은혜의 해’는 빚이 탕감되고 땅이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서 가난 때문에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이 진정 해방되는 희년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우리는 이 땅에 죄의 노예로 묶인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선교의 희년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선교에 있어서 희년의 메시지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자유’라는 말씀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같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미래 희망적이고 정의와 공정을 나타냄을 강력히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교는 원래부터 총체적이고 포괄적이고 전인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리한다면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교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이며 전인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선교는 영적으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사탄의 속박 아래 있는 자를 풀어주시고, 또한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시고, 부자와 교만한 자의 불의와 악과 맞서 싸우시고, 잘못된 현실을 바꾸어 놓으시는 총체적인 선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누가복음에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예수님의 선교를 통해 보여주시는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그동안 균형을 잃어버리고 어느 한쪽으로만 자의적이고 편향적이고 편파적인 우리의 선교의 방향이 있었다면, 이를 즉각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선교의 바른 모습으로 속히 회복할 수 있도록 힘쓰고 기도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말씀묵상기도]

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서 개괄적인 의미를 보여주신 대로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그리고 전인적인 예수님의 선교적 안목을 우리도 갖게 하소서.

2. 오늘의 선교적 상황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우리의 선교가 어떤 면에서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고, 편파적이고 자의적인 선교의 방향을 추구해 왔는지를 깊이 자성하게 하소서. 더 나아가 예수님의 총체적이며 포괄적인 선교를 본 받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지혜를 주시옵소서.

김영휘 목사
▲김영휘 목사
김영휘 목사/선교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순회)선교사
GMS 이주민선교협의회 자문위원
청년인턴선교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