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강조하다 궁극 목적 사라지고 모호해지면 안 돼
목적을 강조하다 전도 방식의 다양성 잊어서도 안 돼
효과적인 선교·전도는 ‘직접전달→간접전달→다시 직접전달’
기독교권은 간접전달 효과적이나 다시 직접전달은 필수
쾌락 추구가 가져오는 ‘헛됨’과 ‘절망’에 대한 간접전달 필요
포스트모던 사상은 인간의 쾌락 추구를 당연한 것으로 주장
기독교는 타락한 인간의 쾌락 추구의 종국이 ‘절망’ 보여줘
성육신 적용 ‘절망적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 되기 운동’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리스도 전달해야
한국교회와 한국선교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항상 지목돼 온 ‘세속화’가 실제 사역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기 위한 포럼이 열렸다. 한국선교KMQ(편집인 성남용 목사)는 지난달 신반포교회(홍문수 목사)에서 ‘세속화와 선교’를 주제로 2022한국선교KMQ포럼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물질주의, 과학주의, 쾌락문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세속화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도전 앞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사역의 본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본지는 이 포럼에서 다뤄진 주요 내용을 연재로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는 ‘쾌락 문화와 선교: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쾌락 추구가 결국 절망의 현상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해 쾌락 추구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구 교수는 총신대(B.A.), 합신대학원(M. Div.), 서울대 대학원(M.A.),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신학부(M. Phil. & Ph. D.)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장로교신학회, 한국개혁신학회,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 교수는 선교와 전도 방식에서 꼭 유념해야 할 것으로, 궁극적 목적의 동일성과 그것에 이르는 방식의 다양성을 잘 드러내는 것을 꼽았다. “다양성을 너무 강조하다가 천국 백성됨,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됨이라는 궁극적 목적이 사라지고 모호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며 “또 하나님 나라 백성됨이라는 목적을 너무 강조하다가 전도 방식의 다양성을 잊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취하지 말아야 할 선교 방식
이승구 교수는 “어느 시대이든지 그 세대가 추구하는 방식을 따라 복음을 전하여 결과적으로 복음의 변질을 일으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며 “이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다양성을 추구하다가 천국 복음의 본질이 사라지게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에서 민요섭이 신학교에 입학해 주변의 촉망을 받았으나 종래 기독교가 인간들의 비참과 고통에 무능하다며 회의하며 방황하고, 조동팔은 자기 집을 턴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등 일탈된 방법에 의지해서라도 정통 기독교의 대안을 모색하고, 그것이 바른길이라는 시사를 한다”며 “이는 복음을 전하려다가 결국 복음의 독특성을 다 버린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극적인 예로, 제사 문화와 축첩 문화에 대해 기독교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제사를 폐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당대 가문과 사회에서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받았다”라며 “물론 그들은 자신들을 버리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돌아보고 사랑을 표하는 일을 지속하려 했다”고 말했다.
조선 말기나 제국 시대 그리스도인의 ‘축첩’ 경우에서도 “복혼(중혼) 관계가 유지되는 한 교회의 온전한 회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소위 ‘작은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되 결혼 관계는 유지하지 않으면서 살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작은 집의 여인들과 자녀들은 여러 어려움이 계속되었을 것이나, 그런 어려움에 대한 고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이를 강조한 언더우드, 마펫, 베어드 등의 선교사들은 다음세대의 교회가 더 굳건한 토대에서 성경에 온전히 따라야 한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포스트모던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을 얻고자 포스트모던적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적극적인 사례도 들었다. 이 교수는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의 서사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더 나가서 이것이 노골적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생각과 같이 진리가 그저 공동체 내적인 것이고, 그러므로 모든 진리 주장은 상대적이라는 함의까지 전달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포스트모던 조건을 잘 의식하면서도 포스트모던 사상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전도와 선교 사역이라고 생각한다”며 “또 이와는 정반대로 가야 할 방향의 규범성을 너무 강조하다가 전도 방식의 다양성을 잊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모든 선교와 전도가 효과적이려면 ‘직접전달→간접전달→다시 직접전달’이 차례로 시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전달’은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사도들이 가르친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전달받는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달린 의미의 ‘생명의 전달’(삶의 전달)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의 의미를 잘 드러내면서, 각 시대는 그 시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천국 복음을 쉽게 번역해주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도들이 말한 바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작업이 우리의 목적”이라며 “그것을 위해 유진 니다는 사도들이 말한 바의 ‘역동적 등가’(dynamic equivalence)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 번역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속한 사회와 문화를 잘 알고, 성경 시대의 언어와 문화를 정확히 알아야 우리가 전하려는 것의 역동적 등가를 정확하게 찾아 사용할 수 있다”며 “두 문화와 언어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접전달’은 직접전달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때로는 그 메시지를 숨겨진 형태로 전달하여, 전달받는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그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 교수는 “마치 쓴 약을 쉽게 먹도록 하기 위해 당의정에 싸서 역겨움을 없애고 결국 필요한 약을 먹도록 하는 것처럼, 천국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항상 직접전달만 하지 않고 다른 식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이러한 간접전달을 잘한 사람으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영문학 교수이며, 영국의 변증가인 C. S. 루이스를 들었다. “그는 ‘나니아 연대기’(1949, 1954)를 통해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서사를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며 “믿으라고 하지 않고 그 왕과 함께 싸워야 한다고 권하지 않으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중에 이야기 속 소년, 소녀들과 같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결단하게 하는 매우 좋은 간접전달”이라고 말했다. C. S. 루이스는 ‘순례자의 귀향’(The Pilgrim’s Regress), ‘체드 왈시’(Chad Walsh) 등 어른들을 위한 문학 작품도 써서 기독교를 전하려고 했는데, 그런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도’로 말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키르케고르는 심미적 관점에서 인생 전체와 세계 전체를 보면서 나름의 생각을 여러 가지로 묘사했다”며 “이런 관점에서 인생을 보고 삶을 사는 것은 결국 절망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사람들이 문제를 의식하고, 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오직 그리스도임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접전달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키르케고르는 때때로 사람들이 버리도록 깨닫게 하려고 왼손으로 내민 것을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덥석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키르케고르는 ‘이제 직접전달로 나가야 한다. 나는 목사가 되리라’고 쓰기도 했다”며 “그는 공식적으로 임직한 목사가 되지 않았지만, 간접전달이라는 용어를 써서 의미 있게 사용한 간접전달의 달인으로, 최후에는 자신이 직접적 증언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시 직접전달’은 마지막에 반드시 다시 처음에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의 내용을 사도들과 같이 증언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이라며 “우리가 진리를 만들어내거나 창안하거나 심지어 발견하는 것도 말라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증언하는 그 진리를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의 삶으로 보증하는 증인이어야 한다”며 “자신의 삶의 무게가 다 담긴 증언은 직접전달인 동시에 진리의 삶을 전달하는 간접전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쾌락 문화와 선교의 방식
쾌락문화에 빠져있는 현대인들과 후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까. 이승구 교수는 “요즘은 쾌락 추구가 가져오는 ‘헛됨’과 ‘절망’을 잘 드러내는 간접전달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같은 것이 이런 간접전달의 예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만 추구하는 삶이 화려하고 멋있어 보여도 결국 절망뿐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넷플릭스의 ‘쾌락의 원리’를 예로 들어 “이 세상은 매력, 성적 취향, 쾌락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매 순간의 동의, 언제든 멈출 수 있는 합의가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며 “그 또는 그녀가 이런저런 방식의 쾌락을 추구하였으나, 결국 진정하고 영구한 쾌락을 얻을 수 없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되고, 계속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쾌락의 윤작’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중독을 가진 사람이 왜 또 다른 중독을 향해 가는 지가 잘 드러난다. 알코올중독, 성중독, 도박중독이 왜 이어져 나타나는지도 잘 알 수 있게 된다”며 “그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그대로 방치될 때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결국 이 세상에서 즉자적으로 사는 사람의 종국은 죽음과 절망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로 활용될 수도 있고, 라깡이 강조한 ‘팔루스’(phalus)에 대한 추구에서도 사실 라깡은 ‘팔루스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님에 우리는 온갖 환상을 그려 넣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며, 그 환상이 충족되는 꿈, 몽상, 소망, 염원에서 우리는 향유를 그려낸다. 하지만 이 향유는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도 이런 삶의 끝에는 공포와 자신도 놀라게 하는 공허한 절규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로 활용할 수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모두 다 절망 가운데 있음을 드러내는 ‘절망의 현상학’ 등도 동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종국적으로 분석해보면 포스트모던 사상 자체는 우리에게 이런 쾌락 추구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라며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타락한 인간의 잘못된 쾌락 추구의 하나이고, 그 종국은 결국 절망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종국적으로 주어지는 직접전달에서는 모든 인간이 그 안에 빠져있는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절망적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 되기
그는 “선교와 전도의 왕도나, 유일한 전달 방법은 있지 않다”며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성을 취하셔서 종의 형태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섬기신 주님의 성육신에 대해 감사하면서, 우리도 성육신의 원리를 적용해 ‘절망적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 되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망 속에 있으나 자신이 절망 속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면서 끊임없이 쾌락을 향해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리스도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구 교수는 “이때 모든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포스트모던적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며 “그러나 결국 복음의 본질이 상실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또 “선교와 전도의 목적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기에, 이 일에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우리 노력만으로는 한 사람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께로 나와 그를 의존하게 할 수 없으므로, 성령님을 의존하며 늘 성령님께 기도하면서 간접전달과 최종적 직접전달에 항상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