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사회는 많은 어려움에 노출돼왔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반적인 현상이다. 집값 폭등은 빈부의 격차를 더 키우고, 코로나19는 기업수지에 악영향을 끼쳐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이 줄어들고 있다. 그로 인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들은 입사 시험을 치를 기회도 얻기 어려워 일자리 구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집합 금지로 폐업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과 실업 또는 실업에 준하는 이웃들도 많이 있다. 경제 침체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제약받다 보니 각종 공연, 전시회나 영화 등 문화적으로도 정체된 듯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크리스천들은 우리나라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사명감을 가지고 나라를 위한 기도에 힘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기도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기도회가 있었고, 기도할 때마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을 때마다 나라에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가들이 공공연하게 주장해오는 내용이다. 우리 기독교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나라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많은 교회가 나라를 위해 금식하며 구국 기도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위기에서 벗어나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장년들뿐 아니라 청년과 청소년들까지도 나라를 위한 기도에 힘을 다하였다. 개척교회에서 청소년부를 섬길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온누리교회 목요 찬양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온누리교회에서 청년들의 기도와 찬양의 열기를 보고 느낀 것은 이처럼 많은 젊은이가 교회에 모여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는 한 절대로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수많은 젊은이가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지 않겠냐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회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시간은 줄어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각 교회의 예배 시간에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고, 기도회를 한다고 해도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 발언이나 반대하는 후보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선거를 해야 한다거나 자신은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데 영향을 끼쳐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교계가 선거 결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 내에 정치 관련 이슈가 중요한 사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당을 짓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하루에 과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느냐고. 우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 우리나라를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어쩌면 정치인들에게 도덕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들은 소속된 정당의 가치를 목표로 삼는 사람들 아닌가? 또 같은 뜻을 가진 집단이 모인 곳이 정당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비를 뽑는 일은 사람이 하여도 어떤 일의 결정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 있느니라”(잠 16:33)
노은영 작가(사회복지학 석사, 청소년 코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