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본문
역대상 29장 10–14절
서론
추수감사절은 단지 “한 해를 잘 먹고 잘 지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또 풍성하게 거둔 사람만 감사하는 날도 아닙니다. 오히려 병원 중환자실을 거쳐 나온 사람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듯,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은혜였구나”를 다시 깨닫는 날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일상 가운데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버티고 견뎌서, 내가 일해서 여기까지 온 거지.” 그러나 성경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
본론
오늘 본문인 역대상 29장은 이 질문에 대한 믿음의 답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감동되어 기쁨으로 드릴 때, 다윗은 곧바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대상 29:14)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고백도 같습니다. 내 삶의 시작도, 과정도, 열매도 결국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이 사실이 마음에 새겨질 때, 억지로 짜내는 감사가 아니라, 은혜를 깨달은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사가 시작됩니다.
1. 다윗 생애의 마지막, 성전 준비의 절정
역대상 29장 1절은 다윗의 삶과 사역을 정리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22장부터 시작된 성전 준비의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평생소원은 뚜렷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전쟁의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 성전을 짓지 못하리라.”(대상 22:8)
여기서 우리는 현실적인 신자의 고민을 봅니다. “나는 간절히 원했는데,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기도도 했고, 헌신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일은 네 몫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두 가지 반응이 가능합니다. 첫째, 마음이 상하고 서운해져서 주저앉는 사람, 둘째, “내가 직접 하지는 못해도,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겠다”라고 방향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두 번째 길을 택했습니다. “직접 짓지 못하면, 준비하는 사람이라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솔로몬을 위해,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찰 만큼의 준비를 해 놓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맡기셨지만(대상 22:10), 그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29:1) 이 말은 단순한 아버지의 걱정이 아닙니다. “이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하는 일입니다”라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고백이 중요합니다. “이 공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29:1)
성전은 왕이 자기 업적을 남기기 위한 건물이 아닙니다. 민족적 자존심을 드러내는 국책 사업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정치·행정 중심을 강화하기 위한 시설도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집,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심 공간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잘 짓자”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우리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자”고 호소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나는 교회를 ‘내가 다니는 종교기관’으로 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집’으로 보는가?”
2.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관점’이다
오늘 시대는 참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월급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늘 불평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만큼이라도 일할 수 있고, 벌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감사의 차이는 가진 것의 양에서 나는 차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다윗은 그 시선을 이렇게 돌려놓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11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절) 즉,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며, 그 시작과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 이 관점이 바로 감사의 영성입니다.
3. 다윗의 헌신 3단계, 사랑 → 자원함 → 기쁨
역대상 29장은 헌신이 어떻게 부담에서 기쁨으로 바뀌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대부분 사람은 “헌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깨부터 무거워집니다. “또 내놓으라는 거구나. 또 시간을 빼앗기겠구나.”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헌신은 기쁨을 빼앗는 사건이 아니라, 기쁨이 폭발하는 사건으로 등장합니다. 그 과정을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1단계 사랑의 헌신 –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므로”(29:3)
다윗의 헌신은 의무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므로…”(3절) 여기서 “사랑하므로”라는 것은 마음이 기울고, 기뻐하고, 스스로 원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수고는 노동이지만, 사랑이 있으면 수고는 기쁨이 됩니다. 다윗에게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실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단합니다. “준비한 것 외에도 내 사유한 금은을 더 드리노니…”(3절) 그리고 4절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를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오빌의 금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 왕들이 자신들의 보물창고에 따로 보관하던 최상급 금이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말하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신앙의 태도를 봅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최고를 드리겠다는 마음, “남는 것, 여분, 쓰다 남은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드리겠다는 결단, 그 자체를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리는 기쁨으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사모한다는 것은 사실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그는 왕궁보다 성막을 더 좋아했습니다. 권력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이 헌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헌신은 의무이지만, 사랑이 있는 헌신은 예배가 됩니다.
2) 2단계 자발적 헌신 – “다 즐거이 드렸고”(29:6)
다음 장면은 지도자들의 헌신입니다. “방백들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다 즐거이 드렸고.”(6절)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즐거이 드렸다”입니다. 9절의 “자원하여 드렸다”와 같은 어근입니다. 억지로, 체면 때문에, 사람 눈치 때문에 드린 것이 아닙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성령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들이 드린 규모는 엄청났습니다. 금 5천 달란트(약 170톤), 은 1만 달란트(약 340톤), 그 외에 동과 철, 보석들. 오늘 시세로 환산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십조 원 이상의 규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규모보다 마음의 상태를 더 강조합니다. “백성들도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9절) 여기서 “기뻐하였으니”는 드리고 나서 한숨 쉬며 후회하는 기쁨이 아니라, 드리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 되는 상태입니다.
왜 기뻤을까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한다는 감격, 하나님의 집을 위해 쓰임받는다는 영광, “하나님께 선물을 드린다”는 자녀의 기쁨,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헌신은 우리의 것을 빼앗기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3) 3단계 온전한 마음의 헌신 – “온전한 마음으로 드렸음이라”(29:9)
9절은 헌신의 질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온전한 마음이란 둘로 나뉘지 않은 마음, 계산과 숨겨진 의도가 섞이지 않은 마음, 하나님만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백성들이 ‘눈치’ 때문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 때문에 드렸다고 합니다.
그 기쁨은 다윗에게까지 흘러갑니다. “다윗 왕도 크게 기뻐하니라.”(9절) 백성이 하나님께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자, 그 기쁨이 지도자에게도 번지고, 공동체 전체에 하나님의 은혜의 분위기가 감돕니다. 3절의 사랑이, 6절의 자원함을 낳고, 9절의 기쁨과 온전한 마음으로 완성되는 것, 바로 이것이 성령이 역사하시는 헌신의 흐름입니다.
결론
4. 다윗의 찬양(10–14절) — 헌신의 결론은 하나님께로
이제 10–14절은 이 헌신을 바라보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1) 10절 — 사람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다
이 정도 규모의 헌신이라면 왕으로서 “여러분 정말 훌륭합니다! 우리 민족, 정말 대단합니다!”라고 백성을 치켜세우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선을 백성에게 두지 않습니다. 곧바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10절) 다윗은 알았습니다. 백성이 드린 헌신도, 사실은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헌신의 결론을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돌립니다.
2) 11절 — “모든 것이 주께 속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존귀가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11절) 다윗은 왕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참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전쟁의 승리도, 왕국의 번영도, 지금 눈앞에 쌓인 모든 재물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3) 12절 — 부와 귀, 능력과 권세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주는 만물의 주재이시니…”(12절) “부와 귀”는 단지 돈과 명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삶의 기회, 건강, 사람들의 신뢰, 위치, 영향력까지 포함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내가 이만큼 모을 수 있었던 것, 내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것, 모두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리더십의 주권도, 성공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4) 13절 — 헌신은 감사 고백을 낳는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13절) 백성의 헌신 앞에서 다윗은 감동합니다. 그러나 그 감동의 방향은 “백성이 참 대단합니다”가 아니라, “이런 백성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묵묵히 헌신하는 집사님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청소하는 성도들, 새벽마다 교회를 지키는 기도자들, 그들을 보며 “저 사람들 참 훌륭하다”를 넘어서 “하나님, 이런 동역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곳에 성숙한 감사가 자랍니다.
5) 14절 — 헌신의 절정, “우리가 받은 것을 드렸을 뿐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께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절) 다윗의 신학은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는 자격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드림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은 자랑이 될 수 없고, 무거운 짐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기쁨으로 다시 주님께 돌려드리는 마음을 주소서. “주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릴 뿐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예배와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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