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지매
본문
사도행전 6장 1–7절
서론
Ⅰ.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지매”(행 6:7) 초대교회 부흥의 원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선언입니다. 교회는 조직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집니다(수 1:8; 느 8:1–12; 딤후 3:16–17). “내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히 4:12),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사 55:10–11). 말씀은 스스로 자라고 성취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가 맞닥뜨린 첫 내부 위기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말씀의 원리로 풀었고, 그 결과 교회는 오히려 더 견고해졌습니다(행 12:24; 19:20). 말씀의 자리를 회복할 때 부흥은 다시 시작됩니다.
본론
Ⅱ. 말씀의 배경 ― 갈등은 성장통이다 (행 6:1)
“그때 제자가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짐으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 (사도행전 6:1) “그때”는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니라 교회의 중대한 전환점을 암시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행 2:1–4) 이후 복음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그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남자의 수가 오천이나 되었다”(행 4:4)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예루살렘 교회는 짧은 기간에 수천 명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에는 반드시 조직적 불균형과 관계의 긴장이 뒤따릅니다. 교회는 더 이상 “한 마음과 한 뜻”(행 4:32)으로만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1. 히브리파와 헬라파 ―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영적 갈등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에는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 히브리파 유대인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하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진 전통 보수파
* 헬라파 유대인들: 디아스포라 출신으로, 그리스어(헬라어)를 사용하며 헬라 문화에 익숙한 개방적 유대인
이들은 모두 예수를 주로 고백했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소통의 벽’이 존재했습니다. 구제의 분배가 히브리파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헬라파 과부들이 소외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구제는 당시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로, 생계가 막막한 과부와 고아들을 돕는 일은 교회의 정체성과도 직결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와 사랑이 흔들린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훗날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니라.” (골 3:11) 즉, 복음 안에서 민족적·언어적 차이는 더 이상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2. 갈등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도구
하나님은 교회를 훈련하실 때 시험과 갈등을 통해 진짜 공동체의 뿌리를 드러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고 말했습니다.
즉, 갈등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조와 사랑의 질서를 새롭게 정비하는 기회였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세속적 행정 기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말씀의 원칙으로 돌아갔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 (롬 15:4) 말씀은 공동체의 방향을 비추는 영적 나침반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술이나 감정은 일시적 봉합을 만들 뿐이지만, 말씀의 원칙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교회의 질서를 새롭게 세웁니다.
Ⅲ. 사도들의 분별 ―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라 (행 6:2–4)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도행전 6:2, 4) 이 구절은 초대교회의 생명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도들은 구제를 경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미 그들은 헌금과 구제의 일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습니다(행 4:34–35; 고전 16:1–2). 그러나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좋은 일을 하다가 가장 중요한 일을 잃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 교회의 근본을 놓치는 순간
여기서 ‘제쳐놓다’는 “무시하다, 뒤로 미루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사도들은 “말씀을 버린다”는 표현이 아니라, ‘말씀의 자리를 뒤로 미루는 태도’ 자체를 경계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무너지는 시작입니다. 교회가 처음 무너질 때, 우상숭배나 죄악이 먼저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이 뒤로 밀릴 때’부터 무너집니다. 예배는 여전히 열리고, 행사는 여전히 많지만, 말씀이 중심이 아니면 교회는 이미 방향을 잃은 배와 같습니다(시 119:105).
사람의 말이 앞서고, 하나님의 말씀이 뒤로 밀릴 때 예배는 감정의 무대가 되고, 설교는 교양 강연으로 바뀌며, 기도는 형식이 되고, 봉사는 자기만족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을 제쳐놓은 교회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사 29:13)
말씀이 사라지면 마음이 떠나고, 마음이 떠나면 예배는 형식만 남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이 경고가 반복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어 부끄러이 여기지 아니하며, 그들이 말씀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렘 8:9) 말씀을 제쳐놓는 순간, 지혜도, 분별도, 영적 능력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초대교회가 성장의 혼란 속에서도 “오로지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결단한 것입니다.
2.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 봉사가 중심이 될 수 없는 이유
사도들은 봉사(‘접대’)를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봉사는 교회의 열매이지, 뿌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조차 제자들에게 사역의 본질을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떡(physical need)은 중요하지만, 말씀(spiritual need)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구제, 복지, 프로그램, 문화 행사에 몰두하면서 정작 말씀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열심일 뿐입니다(롬 10:2).
3.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 교회의 생명선
‘오로지’는 “끊임없이 전념하다, 집중하다”는 뜻입니다. 즉,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단순한 사역의 일부가 아니라, 교회의 호흡으로 여겼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숨결입니다. 말씀은 교회의 혈류입니다.
숨이 끊기면 죽고, 피가 돌지 않으면 병듭니다. 기도 없는 교회는 숨이 막히고, 말씀 없는 교회는 생명이 마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성경 봉독과 권면과 가르침에 전념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딤전 4:13–16) 이 모든 말씀은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말씀과 기도는 교회의 중심축이며, 결코 제쳐놓을 수 없는 사명입니다.
Ⅳ. 일꾼의 기준 ― 성령과 지혜와 신뢰 (행 6:3–6)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
1) 성령이 충만한 사람 ―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인격: 성령 충만은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주권의 위탁입니다(엡 5:18). 성령은 연합을 낳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갈 5:22–23) 갈등 앞에서 감정이 아닌 무릎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일꾼입니다(약 4:6–8; 행 13:2–3).
2) 지혜가 충만한 사람 ―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는 분별: 지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옳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화평·관용·양순…”(약 3:17)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며”(잠 15:1) 말씀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세우는 결정을 내립니다(빌 2:3–4; 잠 3:5–7; 약 1:5).
3) 칭찬받는 사람 ― 삶으로 신뢰를 얻는 증거: 교회의 일꾼은 공동체의 인준을 받는 사람입니다.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딤전 3:7), “책망할 것이 없는 자”(딛 1:6–9) 정직·성실·말의 품격은 사역의 능력보다 더 깊이 공동체를 세웁니다(벧전 5:2–3; 고전 4:1–2).
Ⅴ. 선택과 안수 ― 다양성 속의 연합 (행 6:5–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니라.” 일곱 이름은 모두 헬라식입니다. 상처받은 헬라파를 실질적으로 배려한 결정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만나는 선택이었고, 공동체는 기쁨으로 응답했습니다(미 6:8; 롬 14:19).
* 스데반: 믿음·성령 충만(6:8–10). 그의 순교는 씨앗이 되어 복음 확장을 촉발(행 7–8장; 요 12:24).
* 빌립: 사마리아 전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행 8:4–8,26–40).
안수는 직무 위임이자 은혜의 전승입니다(딤전 4:14; 딤후 1:6).
결론
Ⅵ. 그 결과 ― 말씀이 왕성하고, 제자가 세워지고, 벽이 무너진다 (행 6:7)
* 말씀의 생명성: “왕성”은 자라다, 번성하다. 말씀은 자라는 씨입니다
* 제자 양성: 수적 증가를 넘어 삶이 바뀐 제자가 많아짐
* 장벽 돌파: “허다한 제사장”도 복종. 종교·전통·지성의 벽을 복음이 관통
사도행전의 세 선언: 6:7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12:24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19: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예루살렘 → 유대·사마리아 → 땅끝(행 1:8)은 말씀의 확장 서사입니다.
마무리 기도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지 않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일보다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봉사보다 기도의 자리를 먼저 지키게 하옵소서. 교회의 분주함 속에서 말씀의 자리를 잃지 않게 하시며, 사람의 소리보다 주의 음성을 더 깊이 듣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늘 말씀 앞에 머물게 하시고, 기도로 말씀을 붙잡는 참된 일꾼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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