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제목
알곡과 겨를 구별하라… 불과 방망이 같은 말씀의 능력

본문
예레미야 23장 23~32절

서론

말씀의 홍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야말로 ‘말씀의 홍수’ 시대입니다. 인터넷을 켜고 스마트폰을 열기만 하면 수많은 설교와 기독교 콘텐츠가 쏟아져 나옵니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접할 수 있는 복된 시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양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다 건강하고 순수한 영적 양식일까요? 물이 아무리 많아도 홍수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이 없어 고통당하는 것처럼, 오늘날 수많은 종교적 메시지 속에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레미야 23장의 배경 역시 이와 매우 유사합니다. 남유다 말기,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의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 예루살렘 거리에는 수많은 선지자가 넘쳐났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평안하다!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

눈앞에 닥친 죄악과 심판을 외면한 채, 백성들이 듣기 좋은 위로와 축복의 메시지만을 쏟아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욕망과 거짓 꿈을 예언했습니다. 이러한 영적 혼란과 타락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엄중한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참된 말씀과 거짓 예언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백히 드러내십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 귀가 열리고 오직 주님의 참된 말씀 앞에 깨어 일어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Ⅰ. 숨을 곳이 없는 하나님 (23~24절)

본문 23절과 24절에서 하나님은 먼저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언하십니다. 우리 함께 23절과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1. 천지에 충만하신 무소부재의 하나님

당시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들과 타락한 백성들은 큰 착각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 갇혀 계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성전 안에서 제사만 잘 드리면 성전 밖에서 어떤 죄를 짓고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하나님이 보지 못하시거나 묵인해 주실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역 신(Local God) 정도로 축소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가까운 데에만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이기도 하다. 나는 천지에 충만하다!” 신학적인 용어로 이를 하나님의 ‘무소부재(Omnipresence)’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가득 차 계시며 그분의 시선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2. 은밀한 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아담은 나무 뒤에 숨었지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창세기 3:8-9). 요나는 배 밑창에 숨어 다시스로 도망했지만 하나님의 손은 바다 깊은 곳까지 그를 따라가셨습니다(요나 1:3-5). 시편 기자는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신다”(시편 139:8)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며(예레미야 23:24), 그 어떤 죄와 비밀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지혜로운 길은 숨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에서 ‘은밀한 곳’은 히브리어 ‘미스타림’(מסתרים)으로, 문자적으로는 숨는 장소들, 은신처들, 비밀한 장소들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골방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음모를 꾸미고, 탐욕에 가득 찬 생각을 굴리면서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가장 은밀한 방, 심지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의 동기까지도 불꽃 같은 눈동자로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거짓과 탐욕을 품고 있었습니다. 즉 ‘은밀한 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죄를 숨겨 놓은 마음의 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편 90편 8절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라고 하셨듯, 사람은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종교라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속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진짜 동기를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은밀한 곳’은 종교적 위선 뒤에 숨은 인간의 본심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누가복음 12:2)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줍니다. 첫째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짓는 은밀한 죄, 스마트폰 모니터 뒤에 숨어서 품는 음란하고 탐욕스러운 생각들, 사람 앞에서는 거룩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남을 미워하고 비방하는 모든 행위가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둘째는 위로와 평안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홀로 눈물 흘릴 때, 아무도 내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외로워할 때, 주님은 ‘가까운 데 계실 뿐만 아니라 내가 처한 그 깊은 고난의 자리’에도 함께 계십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이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거짓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은밀한 삶까지도 거룩하게 지켜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거짓 꿈과 인간의 간교함 (25~27절)

하나님께서는 천지에 충만하신 눈으로 거짓 선지자들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하십니다. 25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1. “내가 꿈을 꾸었다”는 종교적 포장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 앞에서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반복해서 내가 꿈을 꾸었다 내가 어젯밤에 놀라운 계시의 꿈을 꾸었다고 외쳤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꿈은 신의 뜻을 전달받는 주요한 통로 중 하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 점을 악용했습니다. 자신들의 개인적인 생각, 욕망, 정치적 계산을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는 종교적인 용어로 포장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내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직통으로 계시를 주셨다”, “너에게 이런 복이 임한다고 말씀하셨다”라며 사람들의 호기심과 영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들었노라.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것을 내가 다 들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종교 사기꾼들이었습니다.

2. 마음의 간교한 것에서 나온 거짓 예언

26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예언의 실체를 밝히십니다.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여기서 ‘간교한 것’이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혹은 인간적인 탐욕과 꾀에서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이 선포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타락한 마음에서 뿜어져 나온 오염된 배설물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대해 에스겔 선지자도 동일한 영적 실태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에스겔 13:2-3)

왜 그들은 이런 거짓을 예언했을까요? 백성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죄악 속에서 살면서도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말을 하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이사야 30:10)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이 요구에 부응하여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청량음료 같은 메시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괜찮습니다. 잘될 것입니다.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문 앞에 이르렀음에도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평강을 외친 것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예레미야 6:14). 결국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을 위한 것도, 백성을 위한 것도 아닌 자신들의 안위와 인기를 구하기 위한 ‘자기 마음의 간교한 속임수’였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세의 때를 경고하며 디모데에게 전한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말세의 현상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진리에서 떠나는 영적 추락의 과정을 6단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3-4)

죄는 대개 갑자기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진리를 견디지 못하는 작은 거부에서 시작하여 결국 진리 자체를 떠나는 상태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핵심은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만드는 결과

이러한 거짓 예언의 치명적인 결과가 27절에 나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은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바알 우상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짓이 바로 그 바알 사상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은 언뜻 들으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건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 그리고 그분의 참된 본질’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그저 내 소원이나 들어주고 내 죄를 눈감아주는 우상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이라고 해서 다 우리 영혼에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지적도 없고 회개에 대한 촉구도 없으며 십자가의 고난과 헌신도 없이 그저 “복 받으라, 형통하라, 당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말하는 메시지는 백성들의 영혼을 마비시켜 결국 영적인 영양실조와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실제로는 바알을 섬기게 만드는 무서운 미혹임을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Ⅲ. 알곡과 겨를 구별하라 (28~29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참된 말씀과 거짓 메시지를 선명하게 대조하시며 참된 말씀의 본질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 28절과 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1. 겨와 알곡의 대조

하나님은 거짓 꿈과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겨와 알곡으로 비유하십니다. 겨는 무엇입니까? 겉보기에는 부피도 크고 알곡을 감싸고 있어서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알맹이가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쉽게 날아가 버리는 무가치하고 가벼운 존재이며 영양가도 전혀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꿈과 예언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들을 때는 귀가 즐겁고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지만 인생의 고난이라는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고 우리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반면에 알곡은 무엇입니까? 작고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영양분이 가득하며 심겨지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바로 이 알곡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꿈을 꾼 선지자는 겨에 불과한 자기 꿈이나 말하게 두고, 내 말을 받은 너 예레미야는 성실함으로, 정직함으로 내 말을 전하라!” 겨와 알곡은 결코 섞일 수 없으며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2. 불같고 방망이 같은 말씀의 능력 (29절)

그렇다면 알곡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구체적인 특징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29절에서 두 가지 강력한 이미지로 제시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습니다. 불은 두 가지의 역사학적 기능을 가집니다. 태우는 것(소멸)과 정화하는 것(제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에 임하면 우리 안에 있는 온갖 더러운 죄악과 위선, 정욕과 탐심을 태워버리기 시작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죄를 깨닫게 하고, 가슴을 찢는 회개의 통곡을 일으킵니다.

또한 불은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한 금을 만들어내듯, 우리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죄를 덮어두고 얼버무리지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은 수술대의 메스처럼 우리 안의 암 덩어리 같은 죄를 들추어내어 태워버리시는 거룩한 불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습니다. 여기서 바위는 완악하고 굳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의 가치관과 고집, 교만과 불순종으로 똘똘 뭉쳐진 우리의 마음은 웬만한 자극에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간의 훈계나 도덕적 가르침으로도 인간의 본질적인 완악함은 깨지지 않습니다. 오직 무엇이 이 바위를 깨뜨릴 수 있습니까? 강력한 철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방망이입니다! 완고하게 고집 피우며 “나는 죄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것이다” 하던 인생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의 말씀의 방망이에 정통으로 맞을 때 비로소 그 교만이 산산조각이 납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그 상한 심령 위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최근에 말씀의 불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완악한 고집과 자아가 말씀의 방망이에 맞아 철저히 부서져 본 적이 언제입니까? 혹시 내가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씀 앞에 순종하려는 마음보다 내 생각과 경험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원래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며, 더욱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찔러 쪼갠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어도 전혀 찔림이 없고, 회개도 없고, 결단도 없고, 변화도 없다면 문제는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무뎌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말씀 앞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고치라고 하시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려놓아야 할 죄와 습관은 무엇입니까? 내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Ⅳ. 거짓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30~32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칭하고 백성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향해 무서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30절부터 32절까지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내가 그들을 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거짓 선지자들의 죄악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죄 (30절)

30절에 보면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참된 선지자인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 중에서 짜깁기를 하거나 혹은 다른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그럴듯한 말들을 서로 베끼고 도용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은 것처럼 위장하여 백성들을 속인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유래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다른 사람의 말을 훔쳐다가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영적 절도죄’를 범한 것입니다.

2. 자기 혀를 놀려 하나님의 말씀이라 사칭하는 죄 (31절)

31절에는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혀를 놀려’라는 표현은 매우 경멸적인 어조를 담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혀를 부지런히 움직여서 종교적인 미사여구를 만들어내고는 뻔뻔하게도 끝에다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도장을 쾅 찍어버리는 행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도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행위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어인을 위조하는 국가 반역죄와 같습니다.

3.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백성을 미혹하는 죄 (32절)

32절에서 하나님은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그들의 메시지 속에는 ‘헛된 자만’이 가득했습니다. 자신들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영적 권위자가 된 양 교만해졌고 결국 백성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으십니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명칭의 부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다.” (메시지의 부재)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열매의 부재)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성전에서 화려하게 예언 활동을 했을지라도,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셨고 명령하지 않으셨기에 그들의 사역은 백성들의 영혼을 살리는 데 ‘아무런 유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영적 소경이 되어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만드는 해악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단호하게 ‘내가 그들을 치리라!’고 거듭 선포하십니다.

결론

신실한 말씀의 사람으로 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겨’와 같은 수많은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세상은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 “성공하면 안전하다”,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영적인 잠에 빠뜨립니다.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 없는 영광, 회개 없는 용서, 거듭남 없는 구원과 같은 겨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처럼 선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우리는 이제 거짓 꿈과 겨를 버리고 죄를 태우시는 불 같은 말씀과 교만을 깨뜨리시는 방망이 같은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참된 말씀은 때로 아프고 찔림을 주지만 바로 그곳에서 회개와 변화, 그리고 은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합시다. 축복의 말씀뿐 아니라 회개와 순종의 말씀까지도 성실하게 받아들이는 알곡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록된 성경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 여러분이 세상의 거짓과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고 오직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바람에 날리는 겨가 아니라 주님의 곳간에 거두어지는 복된 알곡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천지에 충만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거짓된 소리와 내 욕심을 따라 살아온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선포된 말씀이 우리 심령에 불처럼 임하여 죄악과 위선을 태워 주시고 방망이 같은 말씀으로 우리의 교만과 완악함을 깨뜨려 주옵소서. 이 마지막 시대에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셔서 거짓과 진리를 구별하게 하시고 겨와 같은 삶이 아니라 알곡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성경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